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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의한 새로운 공간 지각…그 낯섦이 전해주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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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의한 새로운 공간 지각…그 낯섦이 전해주는 '진실'

[미술 속 키워드로 읽는 삶(18)] 빛과 공간 작업/제임스 터렐

'태초의 빛'은 세상의 시작이고 생명


'SkySpace'란 비현실적 하늘과 조우


대상도 이미지도 포커스도 없는 작품


당신은 무엇을 볼 것인가? 근원적 물음


[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태어나면 가장 처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빛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열린 빛의 세계로 나오며 비로소 우리의 삶은 시작된다. 그 후로 우리의 삶은 빛과 함께 한다.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을 더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들이 평생 어둠 속에서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그 이후에 ‘빛이 있으라’고 하셨다. 빛은 시작이고 생명이다.

▲제임스터렐작스카이스페이스(Skyspace),2013,한솔뮤지엄,한국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스카이스페이스(Skyspace),2013,한솔뮤지엄,한국
▲제임스터렐작테을월로우커노우(TewlwolowKernow),2013,UK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테을월로우커노우(TewlwolowKernow),2013,UK

▲제임스터렐작수정된관점(RevisedOutlook),2005,USA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수정된관점(RevisedOutlook),2005,USA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빛과 공간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터렐의 작품은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 터렐의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에서 우리는 비현실적인 하늘을 만난다. 일상 공간이 아닌 갤러리의 흰 공간(White Cube)에 들어가면 우리는 평상시 우리의 삶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 공간 내 터렐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몸은 온통 하얀 공간으로 둘러싸인다. 그 위로 보이는 둥근 하늘. 작품은 하늘을 보는 액자 틀이 되고, 하늘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림이다. 한국과 미국, 스페인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설치된 이 작품들은 설치된 공간에 따라 그 모습도 하늘도 다르지만 우리가 느끼는 둥근 하늘은 현실의 하늘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우리의 몸이 무화(無化)되고 눈만 남아 우리의 영혼과 지각이 가득 찬 둥근 하늘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느낀다. 예술을 경험으로 보는 존 듀이(John Dewey)는 예술로서의 “경험은 개인적인 감정과 감각 안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세계와의 활발하고 민첩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최고의 경험은 자아와, 대상과 사건의 세계 사이의 완전한 상호 침투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터렐의 하늘은 우리 마음 속의 하늘이다.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지각한다. 만 시간이 넘는 비행 경력을 가진 조종사이기도 한 터렐에게 하늘은 그의 작업실이자 소재이고 캔버스다. 그는 비행을 통해 공간 감각, 하늘의 빛깔, 쏟아지는 햇빛, 기상조건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빛에 대한 인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터렐작세보석(ThreeGems)의내부와외부,2005,USA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세보석(ThreeGems)의내부와외부,2005,USA
터렐은 우리가 문화적 규범과 인간 감각의 한계 내에서 현실을 지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종종 플라톤(Plato)의 ‘동굴의 비유’를 예로 언급한다. 동굴 안에 사슬로 몸이 묶인 사람들은 동굴의 안쪽 벽만을 볼 수 있다. 동굴 밖은 태양이 비치는 빛의 세계이고, 동굴 안은 입구의 횃불이 비추는 그림자만 볼 수 있는 어둠의 세계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동굴 안에서의 삶이며, 우리는 동굴 안에 갇혀있는 죄수들이다. 플라톤이 이야기하듯 인간들은 일종의 지하에 있는 동굴에서 어두컴컴하게 살고 있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보고 듣고 깨닫는 실재는 진리가 아니고 단지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터렐 작품 속에서 하늘을 보는 구멍은 카메라의 조리개와도 같다. 우리는 그 조리개를 통하여 새벽녘의, 한 낮의, 해질녘의, 밤의 하늘을 본다. 이는 우리가 보는 그 색들과 우리가 인지하는 실재들을 어떻게 내적으로 창조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임스터렐작숨쉬는빛(BreathingLight),2013,USA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숨쉬는빛(BreathingLight),2013,USA
▲제임스터렐작확장(WideOut),1998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확장(WideOut),1998
터렐의 매체는 빛 그 자체다. “내 작품은 대상(object)도, 이미지도, 포커스도 없다. 대상도, 이미지도, 포커스도 없는데 무엇을 볼 것인가? 당신은 당신이 보는 것을 본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말없이 사고하는 경험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초창기 ‘투사 작품들(Projection Pieces)’은 방의 입구 반대편 코너에서 빛을 투사하는 것이었다. 투사된 빛은 3차원 도형의 형태를 띤다. 터렐의 ‘피상적인 공간(Shallow Space)’은 커다란 방의 뒤쪽에서부터 빛이 드러난다. 가짜 벽면은 뒤에서 빛이 밝혀져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벽 사방이 색으로 가득하고 빛을 조정함으로써 관람객은 깊이에 대한 지각에 혼돈을 느끼게 된다.

▲제임스터렐작투사작품-풀런(백색),Pullen(White),1967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투사작품-풀런(백색),Pullen(White),1967
▲제임스터렐작피상적인공간-론도블루(RondoBlue),1969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피상적인공간-론도블루(RondoBlue),1969
“나는 지각으로 빛을 파악하는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은 몇 가지 방법으로 빛을 모으거나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작품은 내가 보는 것이라기보다 당신이 보는 것에 관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내가 본 결과물이지만 말이다.” 터렐의 표현처럼 빛이 가득한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 풍부한 빛의 색감은 우리가 서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고 우리는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잊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라는 낯선 느낌은 가시질 않는다. 빛의 벽은 막혀있는 벽이 아니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의 입구이지만, 절벽과 같이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의 입구에 다다르고 나서도 우리는 공간의 깊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제임스터렐작켄지스필드-아크홉(Akhob)의내부와외부,2013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켄지스필드-아크홉(Akhob)의내부와외부,2013
독일어로 ‘겐지스필드(Ganzfeld)’는 화이트아웃(눈이나 햇빛의 난반사로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기상 상태)의 경험처럼 깊이감을 완전히 상실하는 윤곽 없는 시야의 ‘전체장 현상’을 가리킨다. 터렐은 ‘겐지스필드’에서 모서리를 채우고 바닥을 기울임으로써 빛을 조정하여 비슷한 경험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공간을 기하학적인 것 이전에 체험된 것으로 설명했다. 메를로퐁티는 눈에 의해서만 시각적 경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개입에 의해 시각적 경험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총체적인 시각의 체험이 ‘지각’이며, 우리의 시각적 경험은 어떤 분위기에 대한 체험이며 몸 전체의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눈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인 것이다. 객관적이고 기하학적이라고 여겨지는 공간은 따라서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의 장’이 된다. 터렐이 말한 것처럼 비록 그가 그 장을 만들었을지라도 그 공간에 들어가 빛을 보고 깊이를 느끼는 것은 우리다. 터렐의 작품에서 빛은 시시각각 변하는 체험의 공간이다. 빛에 의해 공간의 느낌은 항상 변화하므로 빛은 공간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빛의 효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터렐에게 빛은 공간이자 건축이고 TV의 스크린이자 카메라의 눈이다.

▲제임스터렐작스톤스카이(StoneSky),2005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스톤스카이(StoneSky),2005
▲제임스터렐작빛통치(LightReign),2003,USA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빛통치(LightReign),2003,USA
터렐의 건축은 빛을 담는 그릇이자 다른 지각의 경험을 하는 장이다. 각기 다른 곳에 설치된 실제로 동일해보는 터렐의 여러 작품들을 보고 작품이 안내해 준대로 밖으로 나가면, 우리가 들어올 때 보았던 그 익숙한 장소와 빛은 새롭게 지각된다. 동굴 밖을 나간 플라톤의 수인(囚人)들처럼,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와 매트릭스(Matrix)의 트루먼과 네오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갔던 것처럼, 우리는 터렐의 동굴을 나갔으나 어떤 공간이 실재의 공간인지 우리의 지각은 혼돈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구획된 공간과 똑 떨어지는 정답은 인생에 없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보이는 대로가 아닐지라도 매트릭스 밖에서의 삶에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동굴 밖 빛에 적응해서 진실을 목도해야만 한다는 것을.

▲제임스터렐작화살촉(Arrowhead),2009이미지 확대보기
▲제임스터렐작화살촉(Arrowhead),2009

작품 및 인터뷰 출처 http://jamesturrell.com


■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누구?


194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제임스 터렐은 포모나 대학(Pomona College)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대학 및 클레몽트 대학에서 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도부터 미국 및 전 세계에서 30차례가 넘는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건축분야에서도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빛과 공간을 주제로 건축적인 작업을 해왔으며, 1972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로덴 분화구(Roden Crater)를 구입해 빛이라는 매체를 통해 주변 하늘과 땅, 문화의 세계와 관련된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곧 공개를 앞두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독립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및 을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