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TV를 켠다. 뉴스건, 드라마건, 오락 프로그램이건 TV가 틀어져 있는 집 안의 풍경은 자연스럽다. TV 앞에 앉으면 누구든 눈앞의 화면에 정신과 관심을 빼앗긴 채, TV를 그저 쳐다보고 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건 누구를 만나는 자리에서건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쉽사리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TV는 ‘바보상자’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얻었고, 스마트폰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소통의 부재를 조장하는 장치’라는 시선을 받는다.
100년에 가까운 TV의 역사 속에서 TV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우리 곁에 항상 있었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오죽했으면 라디오를 밀어낸 영상매체의 위력에 1978년에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팝송이 큰 히트를 쳤을까.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다. 최초의 비디오 작업은 1965년 뉴욕에서 소니의 포타팩(Portapak) 비디오 카메라로 자신과 교황의 뉴욕 방문 모습을 찍어 그해 10월 카페에서 공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최초의 비디오 아티스트가 된 데에는 음악을 공부했다는 배경과도 관련이 깊은데, 이는 비디오가 시간예술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는 내가 회화, 조각의 배경을 가진 비디오 예술가들보다 시간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다. 모든 음악형태는 다른 구조와 양식을 가지고 있다. 화가가 추상적 공간을 이해할 때 나는 추상적 시간을 이해한다.” 현재 스마트 TV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리모컨으로 제한적 선택의 방송 프로그램 시간표에 따라 우리의 시간을 TV에 거의 일방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텔레비전과 달리, 녹화와 재생으로 나름대로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비디오가 백남준이 선택한 예술 매체였다.
백남준을 비롯한 초기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한 것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구와 실험정신도 물론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텔레비전에 대한 공격과 비판을 위해 역으로 텔레비전 수상기와 비디오 매체를 이용한 것이었다. “나는 기술을 철저히 증오하기 위하여 기술을 사용한다”는 백남준 자신의 말처럼 그에게 비디오는 TV의 취약성을 보안한 일종의 ‘대용 TV’였다. 백남준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한 텔레비전 비판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내재하는 독을 이용해야만 새로운 독을 피할 수 있다고 했던 파스퇴르(Pasteur)와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가 옳다면, 사이버화 된 삶 때문에 나타나는 좌절과 고통은 사이버화 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비디오테이프와 음극 브라운관을 이용한 작업들은 나에게 바로 이 점을 확인시켜 준다.”
'백남준 있음에…' 바보상자 TV가 예술적 놀이감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남준작일렉트로닉수퍼하이웨이ElectronicSuperhighway,1995
독을 이용해야만 새로운 독을 피할 수 있다는 말처럼, 백남준은 대중매체인 비디오를 이용함으로써 TV라는 우상적 매체를 비판함과 동시에 새로운 매체의 위력과 잠재력에 자극받아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연 것이다. 는 이러한 ‘대안적 TV’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빠르고 정신 오락적이며,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TV에 반대한다. 즉 관조적이며 자기반성적인 부처의 모습을 등장시켜 TV 모니터를 응시하게 함으로써, 조급하게 채널을 돌리게 되는 TV가 아닌, 명상적 비디오 아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직사각형의 길고 흰 좌대의 한쪽 끝에는 부처가, 다른 한쪽 끝에는 TV 모니터가 놓여져, 가장 정신적인 존재와 가장 물질적인 것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명상의 상징인 부처는 문명과 과학기술, 대중문화의 상징인 텔레비전 모니터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질적인 두 존재의 무게감은 저울의 양쪽 끝처럼 팽팽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부처가 바라보고 있는 TV 모니터에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부처 자신이 투영된다.
여기에서 모니터의 영상은 거울이 되지만 거울과는 달리 좌우가 바뀌지 않고 반영 대상을 똑바로 재연한다. 그리고 영상에는 약간의 시간적인 지체가 있다. 거울처럼 현재 자신의 모습이 아닌, 얼마 전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부처는 생각하는 사람의 이미지로 객체화된 자기 자신의 영상을 관찰하는데, 시간적으로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반영은 필연적으로 과거를 향해있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기술을 사용한 백남준의 작품에서 자기 반영, 자기 반성은 좌우가 바뀐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면서 잠시 전의 과거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로써 백남준의 작품에서 기술은 비판과 반성의 대상이자 명상과 관조의 도구, 나아가 자신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수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만남을 완성한 ‘TV 부처’를 1974년 이후 다양하게 창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백남준 있음에…' 바보상자 TV가 예술적 놀이감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남준작TV정원TVGarden,1974▲백남준작TV정원TVGarden,1982
백남준은 또한 예술의 이름으로 텔레비전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공격하기 보다는 비자연적인 텔레비전을 치유하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텔레비전을 유기적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기계적이고 인공적이며, 일방적이라고 여겨지는 TV를 자연으로 순화시키는 작품을 제작했다. 에서 텔레비전은 식물과 섞임으로써 인공물뿐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존재가 되었고, 영상의 기능 뿐 아니라 일종의 조형성을 지닌 조각 오브제(object)로 작용하여, 식물처럼 피조물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기술 및 텔레비전은 더 이상 자연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환경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관객은 특정한 위치와 장소에 고정되었던 텔레비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눈높이 아래에 전시된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시장에 인위적으로 만든 정원에 텔레비전을 배치함으로써, 관객은 정원에서 산소를 공급받고 식물은 관객이나 텔레비전으로부터 탄소를 공급받아 서로 상생하는 자연의 원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백남준 있음에…' 바보상자 TV가 예술적 놀이감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남준작TV물고기TVFish,1975▲백남준작TV물고기TVFish,2008
'백남준 있음에…' 바보상자 TV가 예술적 놀이감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남준작달은가장오래된텔레비전MoonIsTheOldestTelevision,1965-67
숲을 반영하고 있는 듯한 과 함께 바다를 반영하는 듯한 에서 물은 텔레비전의 촉각적인 특성을 표현한다. 또한 텔레비전 모니터와 실제 물고기를 함께 병치해 텔레비전 화면과 투시된 수족관의 시각적인 일치를 이루어, 모니터는 수족관이 되고 수족관은 모니터가 된다. 또한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Moon Is The Oldest Television)>에서 텔레비전 모니터 속에 가득 찬 둥그렇고 하얀 달의 이미지를 생산하여 인류 최초의 TV 역할을 했을 달을 비디오 작품에 담아낸다.
텔레비전은 테크놀로지의 산물이지만 그 속에 담은 둥근 보름달, 초승달은 감성의 극치다. 과학기술이 비인간적인 문명의 산물이라는 사고를 뒤엎는 것이다. 백남준은 “모든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며 인간화된 기술, 인간화된 예술을 강조하였다. 그의 인간화된 예술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고 인간화된 기술은 기술의 자연과의 조우, 그리고 인간화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위성 예술인 백남준의 1984년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TV를 상호 소통적 예술매체로 활용함으로써, 전 지구적 참여 TV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고,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통합하며, 더 나아가 예술과 삶의 통합을 시도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기술 비관론을 반박했던 백남준은 <바이 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에서는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 뿐 이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말을 비웃듯,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예술과 운동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매체들이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음악과 춤의 향연은 전 지구적인 운동의 향연과 함께 행해져야 한다”라는 취지와 함께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손에 손 잡고(Wrap around the World)>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 예술과 운동의 만남으로 참여 TV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백남준 있음에…' 바보상자 TV가 예술적 놀이감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백남준작바이바이키플링ByeByeKipling,1986▲백남준작바이바이키플링ByeByeKipling,1986▲백남준작바이바이키플링ByeByeKipling,1986
바보상자 TV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예술 매체의 일환으로 놀이감을 가지고 놀듯이 즐거이 다루었던 백남준. 백남준은 노는, 유희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그 재기발랄함과 위트,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이를 이용해 관객과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었다. 심각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의 구분이 그에게는 무의미했고, 동양과 서양, 기술과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었다. 상자 속의 바보에게 새롭게 예술혼을 불어 넣은 순간, 우리의 삶도 놀이와 기술, 예술과 자연이 하나 되는 축제의 현장으로 초대된다.
참고문헌
에디트 데커 지음, 김정용 역, 『백남준: 비디오 예술의 미학과 기술을 찾아서』, 궁리출판, 2001,
이용우,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열음사, 2000,
김홍희, 『굿모닝, 미스터 백!-해프닝, 플럭서스, 비디오 아트: 백남준』,디자인하우스, 2007,
그레고리 배트코트 편저, 채장석 역, 『비디오의 예술세계; 비디오 아트란 무엇인가』, 인간사랑, 1990,
Patricia Mellencamp, "The Old and the New: Nam June Paik", Art Journal, Vol. 54, No. 4, Video Art (Winter, 1995)
■ 작가 백남준(1932~2006)은 누구?
1932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직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 인문학부에서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배웠다. 1958년 독일에서 존 케이지(John Cage)와의 만남으로 선불교, 신음악에 대한 관심을 전위 미술로 확장하게 되었으며, 1961년 플럭서스 운동(Fluxus?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혼합매체(mixed media)를 사용하여 극단적인 반예술적 퍼포먼스를 위주로 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의 창시자인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와 첫 만남을 갖고 플럭서스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되었으며, 이후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등과 함께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일평생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독립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및 을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