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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불안한 마음의 자기 합리화 또는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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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불안한 마음의 자기 합리화 또는 정당화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37회)]

세월호 침몰 관련 사이버공간 헛소문 난무


자기 행동의 합당한 이유 찾았을 때 안도


정부 잘못된 첫 대응이 불신의 기폭제 역


지금이라도 철저히 원인 조사 진상 밝혀야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일반 승객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부터 온 국민의 눈은 침몰 현장에 고정됐고 귀는 단 한명의 실종자라도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십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한 명이라도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 온 국민을 애타게 하고 있다.

이럴 때 기다리던 소식은 들리지 않고 불행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불청객인 각종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난무하고 있다. 경찰청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이버 공간에서 총 176건의 유언비어가 유포·확산되고 있다. 이 중에는 현장의 민간잠수부인척 가장해서 “현장 책임자가 방해해서 실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도 있다.

▲지난28일오후서울중구태평로서울광장에마련된세월호침몰사고희생자합동분향소에서시민들이국화를들고대기하고있다.천안함사태나세월호침몰같은대형사고가날때마다불안한심리를교묘하게활용한유언비어가난무하고있다
▲지난28일오후서울중구태평로서울광장에마련된세월호침몰사고희생자합동분향소에서시민들이국화를들고대기하고있다.천안함사태나세월호침몰같은대형사고가날때마다불안한심리를교묘하게활용한유언비어가난무하고있다
각종 사고 현장과 다양한 상황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한 때 인도의 한 지방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여진이 일어날 까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지진의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조차 곧 자신의 지역에 이번에는 더 큰 지진이 일어나서 더 많은 희생가가 생길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삽시간에 많은 지역으로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큰 불안에 떨었다. 물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의 한 지방에서는 동남아에서 온 남자 노동자들이 일본 여자를 길에서 보기만 하면 강간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돌아 그 지방 여성들이 무서워서 길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놀란 일본 경찰당국이 그 지방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일이 단 한건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여 그렇지 않아도 애통해하는 유가족과 국민을 더 절망하게 만들까? 물론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장난삼아” 또는 “관심을 끌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10대나 20대의 미성숙한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삽시간에 확산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심리적 기제(機制)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나 느끼는 감정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을 때 안도(安堵)하는 기제가 있다. 만약 자신이 지각한 이유가 행동이나 감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낄 때는 더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정당화(正當化) 한다.
먼저 인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큰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상자를 낸 지역 주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까봐 불안해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에서 더 큰 지진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해 소식에 접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입지 않은 자신이 이유도 없이 불안해하는 것은 뭔가 합당하지 않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불안해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그런 와중에 누구 한 사람이 “우리 지역에 더 큰 지진이 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서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정당화한다. 그러면 불안하지만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해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삽시간에 그 소문을 믿고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은 조직이나 지역에서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인과 다르게 생긴 외국인을 별로 접하지 못하고 살아온 지방에 사는 여성의 경우,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를 길에서 만나는 것이 어색하고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안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다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이 합당하다는 합리화가 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로자들이 일본 여성에게 성폭행을 한다는 소문을 그대로 믿는다면 자신의 감정이 합리화되고 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마음 놓고 자신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고 유포·확산되는 과정을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감정을 느끼는 합당한 이유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너무 터무니없어 공개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감정을 합리화할 이유를 찾아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마치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유사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만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이 많으면 유언비어는 마치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확산된다.

▲지난2010년7월서울한남동다음커뮤니케이션사무실앞에서라이트코리아등보수단체회원들이'유언비어확산조장,다음(DAUM)아고라규탄집회'를갖고있다.
▲지난2010년7월서울한남동다음커뮤니케이션사무실앞에서라이트코리아등보수단체회원들이'유언비어확산조장,다음(DAUM)아고라규탄집회'를갖고있다.
불의의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느끼는 슬픔과 절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원활한 해결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희생자를 키우는 무능력한 당국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무능력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당국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원하는 만큼 원활하게 구조 활동을 못하는 당국의 속사정은 유가족들도 잘 모르는 내용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 책임자가 방해를 해서 구조작업을 할 수 없다”라는 소문은 그 진위 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유족들의 절망감을 증폭시키고 더 큰 분노로 치닫게 만든다.

유언비어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확산된다. 따라서 불필요한 유언비어가 난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의사소통과 정보의 유통이 원활해야 한다. 이번 참사에서도 처음부터 탑승자 숫자 하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감과 의구심을 만들고 관계 당국을 불신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 원인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가 구조 작업이 더디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관계 당국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유가족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 작업을 해야 한다. 동시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될 지언정 그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유가족은 물론 이 참사로 같이 슬퍼하고 불안해하는 온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결책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다시 안심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한성열고려대교수
▲한성열고려대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