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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의 변신…환상이 '스펙터클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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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의 변신…환상이 '스펙터클 현실'이 되다

[미술 속 키워드로 읽는 삶(22)] 일상의 스펙터클, 그 놀라움

매일 걷던 공원 산책로 4.4㎞를 감싼 나이론천


일본과 미국서 동시에 펼쳐지는 3100개의 우산


'랩핑 프로젝트' 통해 놀라운 신세계 '마법' 경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어느새 스펙터클이 되다


[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 매일 우리가 걷는 길, 출근하는 회사, 건너는 다리. 이런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감동을 느끼는 일은 더더욱 드문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땅과 건물들은 이미 거기에 있어왔고, 오늘도 그대로이고 내일도 그대로일 것만 같다. 이것들은 우리 주변에 별다른 감흥 없이 존재하는 환경이며, 우리는 이 환경에 그다지 큰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영화에서 우리에겐 그저 일상인 곳이 슈퍼 히어로들이 활약하는 무대가 되고, 땅이 뒤집히며, 건물들이 휘어지며, 세상이 뒤바뀌는 모습이 되면, 그 비일상적 일탈에 놀라워하며 박수를 치고 찬사를 보낸다.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길WrappedWalkWays,JacobLoosePark,KansasCity,Missouri,1977-78,Photo:WolfgangVolz,ⓒ1978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길WrappedWalkWays,JacobLoosePark,KansasCity,Missouri,1977-78,Photo:WolfgangVolz,ⓒ1978Christo
자주 가던 산책길이 어느 날 모두 노란색으로 쌓여져 있다면?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Christo & Jeanne-Claude)의 ‘포장된 길(Wrapped Walk Ways)’은 공원 산책로 4.4㎞를 나일론 천으로 감싼 프로젝트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마법사 오즈를 찾으러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걸었듯이, 노랗게 쌓여진 그 길 끝에는 무언가 판타지가 있을 듯하다. 또 어느 날 우리 동네 전체에 커다란 우산이 가득 펼쳐져 있다면? 일본의 이바라키와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동시에 펼쳐진 3100개의 파란 우산과 노란 우산들은 산과 들, 밭, 개울을 가득 점유해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환상적인 흥분을 선사한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삶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반영하는 이 우산들은 일본과 미국, 독일, 캐나다의 11개 제조업체의 부품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다국적 프로젝트인 이 작품에서 파랗고 노란 우산의 색상만큼이나 일본과 미국은 다르지만, 우산 위로 펼쳐지는 청명한 하늘과 우산이 보호해주는 그 안의 공간, 익숙한 곳들이 유쾌하고도 놀랍게 변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탄사는 같을 것이다. 머릿속 환상은 현실이 된다. 스펙터클은 이루어진다.





▲크리스토&장클로드,우산TheUmbrellas,Japan-USA,1984-91,Photo:WolfgangVolzⓒ1991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우산TheUmbrellas,Japan-USA,1984-91,Photo:WolfgangVolzⓒ1991Christo
스펙터클(spectacle)은 쇼를 의미하는 라틴어 spectaculum(스펙타쿨룸)이 기원인 프랑스어인데, 14세기 이후 “특별히 준비되고 마련된 전시”를 의미하는 영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The Society of the Spectacle)』(1967)에서 “스펙터클은 사회 전체, 사회의 부분, 통일의 도구로 나타난다. 사회의 부분으로서 그것은 특히 일체의 시선과 의식이 집중되는 영역이다. 스펙터클은 단순한 이미지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라고 쓰고 있다. ‘대지 미술가(대지미술Earth Art: 1960년대 말 영미권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미술의 한 흐름으로 지구환경 자체를 미술로 표현한 것)’인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가 펼쳐놓는 스펙터클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환경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시각적인 강렬함과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야기하는 여러 반응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예술가들은 작품이 주는 즉각적인 미적 충격 이외에 어떤 깊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듯 보인다. 크리스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예술가입니다. 용기를 가져야하죠.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어떤 작품도 소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작품이 완성되면 그것은 모두 사라지지요. 나는 전설적인 캐릭터만 작품에 부여할 뿐이고, 결국 준비 단계의 드로잉과 콜라주만 남게 되지요. 나는 계속 남게 될 작품들을 만드는 것보다 사라지게 될 것들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몇 년 간의 준비기간, 얼마인지 규모를 알 수 없을 만한 예산, 수많은 스케치와 드로잉 등의 준비 작업,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하는 많은 인원들…. 이 모든 노력이 결국 몇 장의 사진으로 남을 뿐이다. 인류의 어떠한 구조물도 결국은 소멸의 과정을 겪듯이 이들의 프로젝트는 위대한 스펙터클의 소멸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의 예술과 예술이 담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영원한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들의 프로젝트는 그러므로 ‘용기’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리의 망막에 깊은 인상만을 남긴 채, 깊은 의미부여는 일부러 회피하듯 프로젝트의 규모와 실행과정 등만 설명할 뿐,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는 거의 밝히지 않고 있다.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독일국회의사당WrappedReichstag,Berlin,1971-95Photo:WolfgangVolz,ⓒ1995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독일국회의사당WrappedReichstag,Berlin,1971-95Photo:WolfgangVolz,ⓒ1995Christo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퐁네프다리ThePontNeufWrapped,Paris,1975-85,Photo:WolfgangVolz,ⓒ1985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퐁네프다리ThePontNeufWrapped,Paris,1975-85,Photo:WolfgangVolz,ⓒ1985Christo
크리스토와 장클로드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들은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들을 ‘포장(wrapping)’하는 것이다. 독일의 국회의사당을 싸버리고, 프랑스의 퐁네프다리, 로마의 벽, 분수, 랜드마크 건물들, 미술관, 심지어 해변과 섬까지 싼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는 천(fabric)을 무척 매력적인 소재로 설명한다. 이들이 주장하길, 고대로부터 접히고, 주름지며, 흘러내리는 모양을 형성하는 천은 회화, 프레스코 벽화, 부조, 조각 등의 주요한 부분으로 표현되어 왔고, 따라서 천을 이용해 포장하는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은 옷이나 피부처럼 손상되기 쉬운 것이며, 이는 비영원성(impermanence)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1894년도에 지어져 1933년의 화재, 1945년의 큰 파괴, 1960년대의 복구 등 격동의 세월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독일의 국회 의사당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푸른 끈으로 묶인 채 은색의 천으로 감싸진 국회 의사당 건물은 위풍당당하고 강건한 모습에 화려함이 더해져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없이 잘 드러낼 뿐 아니라, 건물의 고된 역사를 어루만져 준다. 1606년도에 완공되어 파리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퐁네프다리는 기능으로서의 다리가 아니라, 오히려 감싸져 감추어져서 본연의 구조적인 모습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예술 작품이 된다. ‘포장’은 덧붙이고 과장하며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원래의 형상에 집중하게끔 하는 ‘기능제거’의 역할을 한다. 국회 의사당도, 미술관도, 다리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축물이기 보다는 그 자체의 조형성에 집중되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몇 백년 동안 사람들의 눈에 거의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퐁네프다리는 이제 새로운 포장지를 입고 스스로를 내세운다. 그 역사에 비하면 무척 짧은 예술 작품으로서 포장된 모습은 천을 벗겨내는 14일 후면 끝나지만, 무심하게 퐁네프다리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작품으로서의 그 다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유쾌한 시각적 충격을 기분 좋게 상기할 것이다.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해변WrappedCoast,OneMillionSquareFeet,LittleBay,Sydney,Australia,1968-69,Photo:HarryShunk,ⓒ1969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해변WrappedCoast,OneMillionSquareFeet,LittleBay,Sydney,Australia,1968-69,Photo:HarryShunk,ⓒ1969Christo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섬SurroundedIslands,Biscaynebay,GreaterMiami,Florida,1980-83,PhotoHarryShunk,ⓒ1969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섬SurroundedIslands,Biscaynebay,GreaterMiami,Florida,1980-83,PhotoHarryShunk,ⓒ1969Christo
전문 산악인, 건축가, 미술대학 학생들과 협업한 호주의 해변 포장 프로젝트는 10주간 지속되었으며, 마이애미의 작은 섬을 반짝이는 핫핑크색 폴리프로필렌으로 두른 프로젝트에는 환경부와 군 당국을 비롯한 많은 정부 기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연 환경을 포장하여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이들의 깜짝 프로젝트는 결코 아름다움을 위한 예술가의 오만함을 드러내거나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 해변은 흰 천으로 둘러싸여 절벽과 바위의 모습이 극적으로 표현되고, 섬은 분홍색 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짧은 기간 뒤 다시 자연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포장 프로젝트에 사용된 모든 천들은 재활용된다. 엄청난 허가와 승인, 많은 사람들의 노고, 오랜 준비 기간이 드는 프로젝트에서 결국 남는 건 관련 자료들이 아닌 스펙터클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이다. 건물들과 자연물들이 본 모습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영유했던 공간들이 바뀌었던 모습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 곳이 다시 마법사의 손끝에서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세상 모든 것에 내재해있는 스펙터클의 가능성일 것이다. 비록 단 한순간일지라도 그 경험은 우리의 눈과 뇌리에 박혀 일상과 흥분, 정지와 변화, 지루함과 놀라움을 뒤섞어버린다. 가장 평범한 것도, 가장 지루한 일상도 어느새 놀라운 스펙터클이 된다. 예술이 감싸버리면 말이다.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나무WrappedTrees,FondationBeyelerandBerowerPark,Riehen,Switzerland,1997-98,Photo:WolfgangVolz,ⓒ1998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포장된나무WrappedTrees,FondationBeyelerandBerowerPark,Riehen,Switzerland,1997-98,Photo:WolfgangVolz,ⓒ1998Christo
▲크리스토&장클로드,문TheGates,CentralPark,NewYorkCity,1979-2005,Photo:WolfgangVolz,ⓒ2005ChristoandJeanne-Claude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문TheGates,CentralPark,NewYorkCity,1979-2005,Photo:WolfgangVolz,ⓒ2005ChristoandJeanne-Claude
▲크리스토&장클로드,계곡커텐ValleyCurtain,Rifle,Colorado,1970-72,Photo:WolfgangVolzⓒ1972Christo이미지 확대보기
▲크리스토&장클로드,계곡커텐ValleyCurtain,Rifle,Colorado,1970-72,Photo:WolfgangVolzⓒ1972Chri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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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 및 이미지 출처 http://www.christojeanneclaude.net/>


■ 작가 크리스토 & 장 클로드는 누구?

불가리아 출신인 남편 크리스토와 프랑스 출신인 아내 장 클로드는 출생일이 똑같이 1935년 6월 13일이며, 크리스토는 순수 미술을, 장 클로드는 라틴어와 철학을 전공한 후, 1958년 만나 공동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건축물 및 환경을 포장하는 ‘포장 프로젝트’로 가장 잘 알려졌으며, 사물 등을 싸는 ‘패키지 프로젝트’, 기름통을 벽처럼 쌓는 ‘배럴 프로젝트’ 등 설치 및 환경 미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 & 장 클로드는 협찬 없이 이전 작품들의 원본 드로잉 판매 수익금 등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2009년도 장 클로드의 사망 후 크리스토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독립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및 을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