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16)]
오직 행복하게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될 때,행복은 그 결과로 잇따르게 되는 선물로 주어진대.
그루야, 방학 잘 보내고 있니? 정말로 무더운 여름이구나. 선생님도 휴가를 갔다 와야 하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로 휴가를 못 가고 있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루처럼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선생님도 바쁘게 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이야. 아마 그루도 얼마 남지 않은 대입 수능시험과 논술고사 준비로 바쁠 거야. 지난번에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많이 우울했지만 이제는 회복된 것 같아 기쁘구나. 방학이지만 휴가조차 가지 못 하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 가운데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선생님이 지난번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면서 삶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 기억나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그루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아마 이런 무더위에 시험 준비까지 하려 하니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해. 아마 오늘 이야기가 그루의 현재의 삶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인생의 목적으로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선생님은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을 소개하고 싶다. 프랭클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로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 수용소에 감금되었어. 강제수용소에서 부모, 아내, 형제들이 모두 죽었고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지. 그러나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났고 그 이후에 심리학 분야에서 로고테라피라는 치료법을 개발했어. 대표적인 책으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지. 이 책은 전 세계에 12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야. 그루도 나중에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행복과 다른 방향으로 행복을 생각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했지만 프랭클은 행복은 인간의 삶에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거야. 행복은 마치 파랑새와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더 멀리 날아가 버린대. 옛날에 한 병사가 있었어. 전쟁 중에 파랑새 한 마리를 본 거야. 그는 파랑새를 잡고 싶어서 쫓아갔지만 이내 파랑새는 저 멀리 도망가는 거야. 살금살금 파랑새에 접근하면 파랑새는 다시 조금 더 앞으로 날아갔지. 그렇게 그는 파랑새를 잡으러 멀리 멀리 가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해가 지기 시작했어. 그는 길을 잃어버릴까 겁이나 파랑새를 포기하고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으나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지. 그래서 앞으로도 갈 수 없었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어. 프랭클에 의하면 행복을 추구하는 일도 마치 이와 같다는 거야. 행복을 추구하는 한 행복을 잡을 수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프랭클은 행복 대신에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대. 그는 또한 인간이 추구할 수 없는 것이 행복뿐만이 아니고 성공이나 쾌락 같은 것도 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어. 그는 아마도 수용소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 같아. 그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주더구나. 그루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을 것 같아? 신체가 건강하고 정신력이 강한 사람일까? 아니면 교도관(간수)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살았을까?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고통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었대. 수용소의 생활은 엄청나게 끔찍한 고통이지. 그러나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고통의 의미를 알 수 없다면 견디기 힘들 거야. 결국 그런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하거나 가벼운 질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기도 했대. 그렇지만 프랭클은 살아남았어. 그는 매순간 삶이 던지는 고통의 의미를 찾았고 행동으로 대답했지.
그루 역시 많이 힘든 시기야. 그러나 그루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왜 이 무더운 여름에 책과 씨름해야 하는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한 포기하게 될 거야. 지난번 편지에서 인생의 의미를 명확히 생각하고 당장 기말고사 망쳤다고 실망하지 말고 인생을 멀리 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거야. 그루가 아무리 힘들지라도 무더운 여름이 그루를 더욱 지치게 한다 할지라도, 프랭클이 경험했던 수용소 생활만큼은 끔찍하지 않을 거야. 프랭클이 그의 아내와 부모, 심지어 형제까지 다 수용소에서 죽었고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고통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살았듯이, 그루도 지금의 어려움을 프랭클처럼 극복하기 바란다.
프랭클이 생각했던 행복에 대한 관점을 조금 더 깊이 따라가 보자. 옆의 도표를 보면 직접 행복을 추구하는 화살표와 행복하게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될 때 그 결과로서 행복하게 되는 화살표의 방향이 있어. 두 가지 방식 중에서 오직 행복하게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될 때 행복은 그 결과로 잇따르게 되는 선물로 주어진대. 아마 그루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 그루가 이해하기 쉽게 그루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그루는 공부의 목적을 성공 혹은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렇게 목적을 두게 되는 순간 어떤 모순에 직면하게 돼. 잘 생각해 봐. 그루는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데 사실 지금 가장 불행한 이유가 공부야. 공부 때문에 이 무더운 날씨에 고생하고 있고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통 당하고 있어. 공부가 행복은커녕 불행의 원인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지. 이렇게 되면 행복은 먼 미래에나 가능할까 현재적 삶은 공부로 인한 고통뿐이야. 그러므로 공부조차도 그 목적이 행복이나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공부가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있는 거지.
그루야,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이유가 뭐야? 왜 이렇게 공부로 고통을 당해야 하지? 그루가 더 명확한 공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봐. 아마 나에게 공부의 의미를 알려달라고 묻고 싶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선생님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스스로 발견해야 해. 한 가지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 삶의 의미 혹은 공부의 의미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해. 다시 말해 거시적인 안목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예를 들어 보자.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숭이의 혈청이 필요하대. 그래서 원숭이를 잡아서 묶어놓고 원숭이의 몸에 수백 군데 주사바늘을 꽂아. 그리고 혈청을 뽑아내지. 그런데 원숭이의 머리로 자기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그루는 왜 공부하면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주 거시적인 안목으로 대답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영화를 생각해 보자. 영화를 보면서 단지 중간에 1분 정도만 보고 영화의 전체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영화를 한 부분만 보고 전체 의미를 알 수 없듯이 우리의 인생도 다 살아보지 않는 한 인생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우리의 인생은 한 마디로 영화 상영 중이야.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전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야. 매순간 닥친 상황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거야. 그렇다면 의미물음은 그루가 던지는 것이 아니야. 삶의 의미, 공부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루가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루에게 질문을 던져. 그루는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 아니라 삶이 던진 물음에 대답해야 해. 그리고 삶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는 방법이 오직 한 가지밖에 없어. 삶이 던진 물음에는 오직 행동으로만 대답하는 거야. 바로 이것이 아마도 프랭클이 말하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여기에서 의미를 찾고 행동으로 대답했을 때 행복은 뜻밖에 선물로 주어진다는 거지.
그루야, 삶의 의미, 공부의 의미는 매순간 스스로 발견하는 거고 행동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렴. 또한 성공과 행복은 예기치 못했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며 행복의 파랑새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성공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렴. 행복의 문은 오직 밖으로만 열린다. 밀고 들어가려면 더욱 굳게 닫혀버려. 그루야, 올여름이 유난히 덥게 느껴지고 그루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통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 회피하지 마라.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 없는 믿음과 소망이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것처럼 고통 없는 기쁨도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그루야, 힘내고 다음 편지에서 만나자.
2015년 8월 5일
달빛로에서 터기쌤| 이창우(그루터기 100년 학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