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이 속담이 현대에 와서는 '잠깐 사귀어도 깊은 정을 맺을 수 있음'을 나타내거나 혹은 '남녀가 한 번만 관계를 맺어도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흔한 예로, "언니는 (하룻밤 같이 지냈다고) 벌써 (그 남자) 역성 들어? 하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랬으니까"라는 대화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18세기 이전만 해도 이 속담은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정약용은 이 속담을 한자로 '일야지숙장성혹축(一夜之宿長城或築)'이라 하며, 그 뜻은 '비록 잠시 머물지라도 마땅히 주변을 경계하여 대비해야 한다'는 유비무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장성長城'이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변했고 그에 따른 구전설화도 아주 그럴 듯하게 전해오고 있다. 회자되는 여러 유래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을 옮겨 보기로 한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는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 한 달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장에 강제로 징용되었다. 노역장에 한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에 부부에게는 청천벽력의 생이별이었다.
남편을 노역장에 보낸 후 여인은 외딴집에서 홀로 지내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금장수가 여인의 집에 찾아들었다.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어 들어왔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데, 여인은 남편이 곧 돌아올 텐데, 외간 남자를 들였다고 하면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될 터이니 아니 된다 거절했다.
그러나 소금장수는 이미 그녀가 혼자 사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겁박하며 노골적인 수작을 부렸다. 여인은 저항해 보았자 소용없음을 느끼고,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후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몸을 허락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남편과는 결혼식을 올렸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도리가 있으니, 날이 밝으면 여기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드릴 테니 노역장에 가서 남편을 만나 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전해주시고 그 증거로 글 한 장만 받아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오시는 대로 저는 당신을 지아비처럼 섬기고 하자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하였다.
사내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그날 밤 그 여인과 동침을 하고 다음날 여인이 내준 새 옷 한 벌을 봇짐에 챙겨 넣고 부지런히 노역장에 가서 남편의 면회를 신청했다. 옷을 갈아입히고 글 한 장만 받아 가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히려면 남편은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했고 옷 갈아입는 동안 남편 대신 사내가 잠시 작업장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할 수 없이 사내는 남편에게 빨리 옷을 갈아입으라며 작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나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따리를 펼치자 편지가 한 장 나왔다. "당신의 아내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꺼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해준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러니 외간남자와 잔 것을 허물치 않겠다는 각오가 서시면 옷을 입자마자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자신을 빼내 주기 위해 그런 수모를 겪은 사실을 알고 그는 신속히 아내에게 돌아왔다. 한편 교대로 들어간 사내는 남편 대신 공사장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을 하게 되었으며, 일을 하면서 늘 탄식했다고 한다. "하룻밤밖에 못 잤는데 죽을 때까지 만리장성을 쌓는구나." 여기서 나온 말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속담의 유래가 생겼다고 한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