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도리화가’가 연일 화제다.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절, 소리꾼을 꿈꾸는 진채선과 남자는 결코 내지 못하는 소리를 가진 채선을 죽음을 무릅쓰고 제자로 받아들인 신재효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도리화가.
그 당시 ‘소리꾼’은 마치 지금의 ‘스타’와도 같았다. 조선시대의 소리꾼들은 저잣거리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 해학을 담은 소리판을 벌였다.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하고, 모두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쉬운 이야기를 노래했다. 그 당시 명창대회는 지금의 아이돌 오디션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잘하는 소리꾼에게는 ‘국창’이라는 명칭이 주어질 정도로 ‘핫’했다.
판소리의 인기는 서민뿐만 아니라 양반에게까지도 퍼져갔다. 소리꾼들에겐 ‘찔끔찔금’ 받는 서민의 푼돈보다는 돈 있는 양반에게 크게 후원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소리꾼들의 주 관객층은 자연스럽게 서민에서 양반으로 옮겨갔다. 물론, 이 과정속에서 기득권층을 비판하거나 남존여비사상을 비판하는 옹고집타령이나 장끼타령보다는 양반들의 윤리관과 미 의식에 맞는 춘향가, 심청가 등이 많이 불렸고, 판소리는 점점 ‘기품이 넘치고, 심도깊은 예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핫’했던 판소리의 인기가 지금은 왜 사그라들었을까?
TV를 하루종일 틀어놔도 판소리 한자락 듣기가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다. 판소리는 기품과 무게감을 얻었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를 읽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순결과 정조, 남존여비사상과 계급의식 등이 강조되던 시절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남자를 기다리며 옥에 갖히기 보다는 권력자의 이중성을 까발리고 그것을 골려먹기까지 하는 ‘배비장전’같은 작품이 오히려 관객에게 속 시원한 쾌감을 가져다준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과 문화적 유연성을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립극장의 ‘변강쇠 점찍고 옹녀’나 정동극장의 ‘배비장전’ 등이 그 예 중 하나다.
마음 속 깊이 쌓여있는 무언가를 털어버리고 일상에 생기를 되찾고 싶다면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창작 판소리를 관람하면서 이 시대의 진채선과 신재효를 찾아보는건 어떨까.
필자 이주항은 대금연주자이자 국악교육자로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를 이수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밟으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 정악을 이수했다. 현재 해외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 연주뿐 아니라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여러 정부기관의 문화 예술전문가 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주항 ‘국악은 젊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