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리화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꼽으라면 '김세종' 역을 맡은 배우 송새벽의 북 장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판소리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신재효와 진채선을 연기한 류승룡과 배수지를 두고 소리도 아닌 북 장단이라니. 북 장단이 왜?!
간혹 판소리의 북 장단을 단순히 소리꾼의 반주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이끌어 가는 음악이 아니다. 소리꾼의 옆에는 언제나 '고수'가 있다. '고수'는 소리꾼이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면 옆에서 북 장단을 치고 추임새를 하는 연주자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알려주듯 고수가 없는 판소리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고수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고수는 사설에 맞춰 강하거나 약하게, 거칠거나 부드럽게, 높거나 낮게, 길거나 짧게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사설과 노래에 후광을 부여하고, 소리꾼과 밀고 당기고, '얼씨구~',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통해 긴 시간 혼자 극을 끌어가는 고독한 소리꾼을 격려하기도 한다.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고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명창을 뽑는 대회에서도 소리꾼들은 깊은 숙련과 오랜 경험이 있는 명 고수를 모시려고 애쓴다.
판소리의 고수를 살펴보자. 악보를 보고 꼿꼿히 연주하는 반주자들과는 달리 소리꾼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다. 그는 이미 소리꾼의 노래를 모두 알고 있다. 서양음악의 템포, 리듬, 강약, 변주 등 음악을 이끌어가는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있는 '장단'을 깔아두고 소리꾼이 신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판을 짠다.
영화 도리화가의 송새벽은 그 당시의 소리꾼이자 대단한 비평가였던 '김세종'을 연기했다. 그는 극의 주인공인 신재효와 진채선의 소리 장단을 쳤고, 그때마다 배우가 편히 소리할 수 있도록 적절히 판을 깔아주었다. 실제 고수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영화에 노래되는 그 소리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송새벽은 이론적으로 판소리를 깊게 이해하고 제대로 노래하는 소리꾼이었던 '김세종'을 보여주었다.
영화나 공연엔 이처럼 조용히 판을 이끄는 연주자나 배우가 있다.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놓은 내공은 중요한 순간 빛을 발한다. 관객으로선 그러한 연주자를 찾았을 때 마치 대단한 무언가를 찾은 듯한 포만감을 선물받는다. 이번 연말 다양한 공연을 통해서 그런 매력의 연주자들을 찾아보는건 어떨까. 이주항 '국악은 젊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