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과 이중성으로 익숙한 장면 드러내지만 낯섦 내포
김병주의 작품은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조각 작품으로 공간을 탐구한다.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지는 회화와 달리 3차원의 공간에 구현되는 조각의 특성상 조각은 기본적으로 실제 공간을 점유하는 특성을 지닌다. 김병주 작가의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작품은 단지 작품이 공간을 점유해서가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깊이 있게 연구해 도시 공간과 공간을 점유하나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시적 공간, 원근법적 시점을 탐구하는 공간 등 여러 공간을 보여준다. 대학 시절부터 건축적인 이미지에 매료되어 건축 잡지 등을 많이 봐왔다는 작가는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경계점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학부 졸업 작품으로 철망으로 캐비닛을 재현하는가 하면, 나무 박스를 만들어 물건을 넣은 다음에 접착제를 넣어 닫힌 공간을 절단해서 잘린 면을 보여주는 초창기 작업 등 김병주의 작업은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폐쇄된 공간과 노출된 공간 사이의 경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물의 골조 혹은 건축 설계도의 입면도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초기에는 색을 최대한 배제하여 주로 흰 벽인 전시 공간을 점유하는 건축적 드로잉이다. 이는 아크릴선, 털실 등 가느다란 선을 공간에 팽팽히 설치해 조각과 공간의 관계를 연구한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의 공간 드로잉이나, 하얀 입방체(white cube)라는 이데올로기 공간으로서의 갤러리 공간을 비판하기 위한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의 공간 드로잉 등 1960~1970년대 미니멀리즘 및 개념미술의 공간 드로잉과 그 연관성을 두면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의 건축물을 주제로 삼음으로써 훨씬 더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온다.
김병주의 건축적 공간 드로잉은 그 자체로 건축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조각 작품이자 보통은 채워져 있는 건물들을 비워냄으로써 전시 공간에 그려진 드로잉이기도 하다. 또한 전시장의 빛을 따라 그림자가 생겨나게 되어 또 하나의 그림자 투시도가 전시장 천장과 바닥에 생기게 된다. 3차원 공간 속의 드로잉(건축적 작업)과 2차원 벽면 및 바닥 속 드로잉(그림자)과의 맞물림으로 친근한 건축적 이미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으로 서있다. 마치 우리의 그림자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처럼 말이다.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맺히고 서로 다른 건물의 그림자들이 뒤섞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치 격자의 모눈종이에 그려진 평면도가 고층빌딩의 거대하고 복잡한 공간을 종이 한 장에 담고 있듯이 전시장 안의 모든 공간들은 경계가 허물어져 그림자로 응축되어 벽면에 그려진다.” 작가가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가 견고하고 단단하게 채워져 닫혀 있다고 일상적으로 지각하는 도시 건축물들은 작품 속에서 선으로 표현되어 열리게 된다. 이로써 밖의 공간과 안의 내부를 동시에 드러내어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러한 모호함은 그림자로 인해 또 다른 환영적 공간을 선사하는 것이다.
작품은 이렇듯 공간의 안과 밖, 실체적 작품과 허구적 그림자, 채워있는 건축물과 비어있는 외곽선 등 이중적 세계를 동시에 제시하며 확실성과 모호함을 넘나들고 있다. 따라서 김병주의 작품들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도시를 작은 건축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 속을 비워내고 관람 위치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상대적인 공간, 시점에 따라 다른 공간을 열어놓고 있다. 또한 건물의 외곽선 뿐 아니라 비계(飛階), 계단, 층계참 등 건축을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판화 속의 무한한 순환의 계단들처럼 우리의 시선을 작품 밖과 안의 공간으로 끊임없이 연결시키고 있다.
공간의 경계와 공간의 중첩됨을 탐구하던 김병주 작품의 최근작은 점차 보는 사람의 시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도시 공간,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시적 공간, 원근법적 시점을 탐구하는 공간은 거울을 이용하여 작품 외부의 관람자의 시선을 작품 내부에서 반사시킴으로써 빛의 반사를 통한 파편화된 시선과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건축물에 닿기 전에 빛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설명처럼 건축물을 주요 모티브로 하는 김병주의 작품에서 빛과 시선은 김병주의 건축적 구조물에 닿아 닫혀있는 공간을 열고 그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며 익숙하게 혹은 낯설게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려준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는 “잠재적인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충만한 실재성을 소유한다”며, 잠재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캐비닛을 시작으로 건축물 일부, 작은 건축물, 향후 도시까지 작품의 모티브를 점점 더 큰 도시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김병주의 작품은 실제 존재하는 건축물과 작품이라는 허구, 물리적 작품이라는 사물과 그림자 그리고 거울에 반사되는 빛이라는 허상, 공간의 안과 밖을 경계하는 벽과 이를 노출시키는 선 사이의 잠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살고 경험하고 느끼는 도시 공간 속 건축물들을 재현하고, 모호하게 하고 이중화하는 김병주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공간이 가진 잠재성을 본다. 그리고 그 잠재성 속에서 우리는 도시 공간이 가진 다채로운 모습을 경험하고 있다. 익숙하지만 낯선 곳에서처럼.
● 작가 김병주는 누구?
● 필자 전혜정은 누구?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