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증왕 이전의 삼국사기 기록에서 사벌주라는 명칭이 한두 번 더 나온다. 더구나 신라의 주는 애초에 군관구라는 성격도 같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진한제국 방어의 최일선이자 대외진출의 교두부인 사벌국에 맨 먼저 일찌감치 세워져서 이후의 주의 모범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시기에 사벌 일대가 신라의 직할영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벌국이 패망하고 얼마 뒤인 294년 유례 이사금 10년에 사도성(沙道城)을 쌓고 사벌주의 호민(豪民) 80여 가를 그곳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첨해 이사금 때에 설치된 사벌주는 이후에도 552년 진흥왕 13년에 상주정(上州停)이라는 지방 군단이 설치되는 등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557년 진흥왕 18년에 주 치소가 개녕 일대에 옮겨 감문주가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가 삼국 통일 후인 687년 신문왕 7년에 일선에서 다시 치소가 옮겨옴으로써 부활했다. 이와 동시에 상주성(尙州城)이 축조되었다. 사벌주는 경덕왕 때에 행정체제가 개편되면서 상주(尙州)라는 별호가 내려졌다.
사벌주에 소속된 군현은 오늘날 낙동강 상류지역인 안동시 임하면 일대를 경계로 서 쪽으로는 영주시 일부, 청송군 일부, 예천군, 문경시, 의성군, 군위군, 김천시 일부, 충북의 청원·보은·옥천·영동· 황간 일대가 관할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