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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궁녀도 승은 입으면 빈으로 신분상승…궁녀는 지밀·침방·수방·세수간·생과방·소주방·세답방 등 7가지 업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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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궁녀도 승은 입으면 빈으로 신분상승…궁녀는 지밀·침방·수방·세수간·생과방·소주방·세답방 등 7가지 업무 수행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사극 속의 궁궐 여인들
영화 '간신'. 연산군은 민가의 젊은 여성들을 꾀어 왕 전속 기생 단을 만들고 틈나면 그녀들과 놀아났다. 연산군이 기생단 흥청이랑 놀다가 결국 왕좌에서 물러났다.이미지 확대보기
영화 '간신'. 연산군은 민가의 젊은 여성들을 꾀어 왕 전속 기생 단을 만들고 틈나면 그녀들과 놀아났다. 연산군이 기생단 흥청이랑 놀다가 결국 왕좌에서 물러났다.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장희빈·숙빈 최 씨, 세 여인을 둘러싼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의 사극 드라마가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해 줍니다. 치열한 사랑과 증오, 처절한 권력다툼, 세도의 무상함 등 롤러코스터 같은 반전이 거듭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지요. 뿐만 아니라 인현왕후를 제외한 두 여인은 왕비의 꿈조차 꿀 수 없는 궁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처럼 왕의 곁에 앉게 된다는 줄거리는 여성들의 대리만족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사극에서는 세 주인공 말고도 많은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녀들은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번 쯤 살펴보는 것도, 사극을 보는 재미를 더 해줄 것입니다.

궁궐에 살거나 일하는 여자들을 통칭하여 궁녀(宮女)라 합니다. 그러나 인현왕후처럼 가례절차를 거쳐 정식왕비가 되거나, 궁궐에서 임금의 눈에 들어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후궁)는 궁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조선왕조 때 궁궐여자들 지위를 나타내는 ‘내명부’를 살펴보면, 정1품에서 종9품까지 18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1품 빈(嬪)에서 종4품 숙원(淑媛)까지는 후궁들의 품계이고, 정5품에서 종6품까지는 ‘상궁尙宮’, 나머지 7품 이하는 ‘나인’으로 불리었습니다. 내명부에 나오는 여자들은 품계가 주어지는 후궁-상궁-나인이고, 이 외에도 품계는 없지만 천비로 불리는 비자·방자·무수리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상궁 이하 천비까지의 여성들을 일반적으로 ‘궁녀’라 합니다. 희빈 장 씨와 숙빈 최 씨는 후궁으로서 최고 관직인 ‘빈(嬪)’을 받지만, 그녀들이 왕의 승은을 입기 전까지는 낮은 품계의 나인궁녀에 불과했습니다.

궁녀들의 업무는 크게 7가지로, 지밀·침방·수방·세수간·생과방·소주방·세답방입니다. 지밀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일거수일투족을 거드는 요직으로, 의식주는 물론 성생활과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도 담당합니다. 한 예로 경복궁에 가면 왕비의 전각인 ‘교태전’이 있는데, 이곳의 방 구조는 특이하게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왕과 왕비가 합방하는 날이면 가운데 넓은 공간에 왕과 왕비가 눕고, 나머지 칸에는 지밀상궁이 들어가 성행위중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합니다. 이처럼 지밀은 왕실 곁에 있기 때문에 왕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희빈도 처음 궁에 들어갔을 때 숙종의 할머니 장렬왕후를 보필하는 지밀궁녀였습니다. 숙종이 문안차 장렬왕후를 만나러 왔다가 장희빈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후궁으로 삼게 된 것이지요.

침방은 궁궐에서 사용되는 의상이나 소품들을 만드는 곳이고, 수방은 옷에 수를 놓거나 장식물을 다는 곳입니다. 세수간은 말 그대로 세숫물이나 목욕물을 데우고 궐내 청소와 변기세척을 담당하였습니다. 소주방은 수라간이라고도 부르는데, 밥과 반찬은 물론 각종 제사와 잔칫상 음식을 만들었고, 생과방은 식혜, 떡, 과일, 죽 등 식사 이외의 음료나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세답방은 세탁소 같은 곳으로 빨래, 다듬이질, 다리미질, 염색을 맡았습니다.
직급이 없는 비자, 방자, 무수리 중 일부는 열거된 7가지 업무를 돕기도 했지만, 별도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비자는 궁녀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하녀로서, 가끔씩 궁녀들의 편지나 전할 말을 사가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비자는 관비 중에서 주로 차출되었는데, 한 번 궁에 들어오면 결혼할 수도, 궁 밖에서 살수도 없었습니다.

사극 '대장금'. 주인공 이영애는 극중에서 내의원 소속의 '의녀'로서 전문 여자의사지만 품계가 없는 관비 출신이다.이미지 확대보기
사극 '대장금'. 주인공 이영애는 극중에서 내의원 소속의 '의녀'로서 전문 여자의사지만 품계가 없는 관비 출신이다.

반면 방자는 상궁들의 살림을 담당하는 가정부입니다. 이들은 평민 신분으로 상궁의 사가에서 데려오거나, 궁녀들이 추천하여 들어온 사람입니다. 이른바 준공무원으로 월급도 있고, 상궁 집 붙박이로 살거나 파출부처럼 필요할 때만 궁에 들어와 일을 거드는 시간제 방자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수리는 물을 떠 나르고 아궁이에 불 때는 일 등 궁궐 내 잡다한 일들을 하는 최하층으로, 출퇴근을 했으며 결혼도 자유였습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가 무수리였다고 하여 드라마가 더 극적이긴 하지만, 사실 숙빈 최 씨는 7살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와 침방나인으로 있다가 숙종의 눈에 띠어 후궁이 된 것입니다.

궁녀 중에서 직급이 있는 여자를 특별히 ‘여관’이라고도 합니다. 여관은 보통 어릴 때 수습나인으로 입궁하는데, 지밀나인은 4~5세, 침방과 수방은 7~8세, 나머지는 13~14세에 선발되었습니다. 생각시는 지밀과 침방, 수방의 수습나인의 별칭으로 생머리를 하고 있어 생각시라 했습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들어오기 때문에 나이 많은 상궁들에게 한 명씩 맡겨져, 대략 15년간 궁중예절과 글, 맡을 업무의 기초교육을 받게 됩니다.

수습이 끝나면 정식 나인이 되는데, 그에 앞서 관례를 먼저 올립니다. 관례는 일종의 혼례와 같은 의미로, 상대 남자가 없더라도 상징적인 결혼을 통해 성인이 되었음을 주변에 알리는 의식입니다. 이날은 본가 친척이 보내온 잔치 음식을 동료, 선후배 궁녀와 나누며 축하의 자리를 갖습니다. 관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되면 내명부의 하급품계를 받는 동시에 월봉도 주어집니다. 방도 따로 정해지는데 반드시 동료 나인 한 명과 같이 써야했습니다. 그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두 여인이 사랑을 나누는 동성애 관계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참고로 여관들은 궁에 들어오면 죽어서나 출궁할 수 있다했는데, 예외적으로 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가뭄이 심하거나 재해가 발생하면 시집가지 못한 궁녀들의 한을 풀어 준다고 궐 밖으로 내 보냈는데, 그럼에도 출궁된 궁녀가 나가서 결혼하면 벌을 받아야 했다니 다소 황당하기만 합니다.

정식나인에서 15년 정도 지나면 상궁이 됩니다. 상궁은 여관들의 대표 급으로 월봉도 많고, 별도의 단독 집과 여러 하녀를 둘 수 있습니다. 상궁 중에서 직책을 갖는 상궁들은 정5품으로, 우두머리는 700여명의 궁녀 총 책임자인 제조상궁입니다. 제조상궁 밑에 부제조상궁이 자리하는데,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막중 업무를 관장합니다. 서열3위는 지밀상궁으로 왕실가족을 지근거리에서 모셔야했기에 대명 상궁이란 별칭도 붙습니다. 그 다음 서열의 감찰 상궁은 궁녀들의 불법을 감시하고 체벌이나 유배의 형벌도 직접 내릴 수 무서운 상궁이었습니다. 보모상궁은 세자를 포함하여 왕자들의 보모 노릇을 하는 상궁이고, 시녀상궁은 서적이나 문서에 관련된 업무와 종실이나 외척의 뒤치다꺼리를 담당하는 낮은 직책의 상궁이었습니다.

한편, 사극 ‘대장금’으로 유명해진 주인공 이영애는 극중에서 내의원 소속의 ‘의녀’ 역이었습니다. 의녀는 전문 여자의사지만 품계가 없는 관비 출신이며, 내의원 외에도 궁궐 밖 제생원·혜민국·전의감·활인서 등에서 주로 여자 환자를 돌봤습니다. 이들은 의술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경찰업무도 보았고, 왕비나 후궁의 호위도 맡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하는 이런 의녀들에게 치명적인 멍에를 씌운 사람은 연산군입니다. 의녀를 ‘약방 기생’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는데, 연산군이 혜민서 소속 의녀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춤도 강요하고 나아가 겁탈까지 한 이후, 다른 관리들도 이를 따라 의녀들을 성적노리개로 삼아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연산군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민가의 젊은 여성들을 꾀어 왕 전속 기생 단을 만들고 틈나면 그녀들과 놀아났는데, 이 기생들을 이른바 ‘흥청’이라하지요. 연산군이 흥청이랑 놀다가 결국 왕좌에서 물러났다하여 ‘흥청망청’이란 말도 생겼습니다. 아무튼 의녀나 흥청은 궁궐 출입이 잦긴 해도 결혼도 자유롭고, 퇴직도 수월하여 궁녀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