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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꿈과 희망을 주자…"어린이는 우리 희망이자 미래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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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꿈과 희망을 주자…"어린이는 우리 희망이자 미래의 주인"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어린이라는 이름
선각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해 매년 5월 5일 기념하고 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선각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해 매년 5월 5일 기념하고 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어린 자식을 기르면서 공동묘지 근처에 살아보니 자식이 상여 메고 곡하는 시늉을 하고, 시장 근처로 집을 옮기니 장사치 흉내만 내더라. 세 번째 글방 곁으로 이사를 하니까 자식이 글 읽는 것을 본뜨니 비로소 모친이 안심하였다」는 2300년경의 '맹모삼천(孟母三遷)' 시기만 해도 아이들의 성장은 비교적 자유분방 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왕조의 틀이 공고화 되고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역과 복종의 대상이자, 어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그렇고 필독서인 소학·명심보감·훈몽자회 등에서도 아이들은 어른의 말에 따를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1541년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의 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父子는 天性之親이라 生而育之하고 愛而敎之하며 奉而承之하고 孝而養之하나니」 즉 '어버이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관계이므로, 어버이는 자식을 낳아 사랑으로 가르치며, 자식은 어버이 뜻을 받들어 순종하며 효도하고 봉양해야한다.' 이 구절 어디에도 아이들의 꿈이나 인성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왕족과 양반, 평민과 노예의 계급사회 속에 아이들의 삶은 그 부모가 그러하듯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밀려 들어 온 근대화는 우리의 신분사회를 허물기 시작했고, 사람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개선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종래의 아이를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국운이 쇠해가던 1908년, 최남선은 '해에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며, 나라의 융성을 위해서 문명개화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소년들의 시대적 각성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뜻과 상통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10년 나라는 일제에 빼앗기고, 허탈감과 울분은 1919년 3월 1일에 폭발합니다. 이날을 기해 민족 자각(독립)운동은 전 분야에 걸쳐 번져나가고, 어린이에 대한 계몽도 구체적으로 싹트기 시작합니다.

불과 한 달 전 일본에서 귀국한 소파 방정환이 1921년(신유년) 5월 1일 천도교 서울지부 청년회관의 단상에 섰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 조선인에게 희망은 무엇입니까? 완전한 자주국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중략). 힘의 배양을 위해 우리도 우리지만 우리 뒤를 잇는 소년소녀가 자유롭게 미래의 웅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자 꿈이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어린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꿈을 찾아 쫓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자 꿈이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어린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꿈을 찾아 쫓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그러나 이제껏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의 주인이 될 소년소녀들이 봉건사상의 구습의 틀에 얽매어 어린아이로서의 자유분방함 대신 비활동적, 비정열적, 냉담사상을 주입시켜 기형적인 인간으로 양성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나쁜 일은 아직 지각과 체력이 발달치 못했음에도 조혼(早婚)이란 민족 멸망의 악풍(惡風)을 강요하고, 장남에게 의지하는 의타 사상을 조장케 한 책임은 우리 어른들 모두에게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 따라서 이제 우리는 나이 먹은 사람을 어른이라 하면 소년은 아직 어린 사람 즉 어린이로 명명하여 그동안 가정적, 사회적, 민족적으로 학대당한 우리 어린이들에게 그들만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 구습에서 해방시켜 우리 민족의 희망이자 시대에 발맞추는 미래 역군으로 성장케 할 것입니다.(중략) 오늘 5월 1일을 기해 '소년회'를 정식 발족하는 바, 표어로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 늘 사랑하며 서로 돕는 소년'으로 정하겠습니다. 아울러 내년 1922년(임술) 5월 첫째 주 일요일을 '어린이 날'로 하여 그날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들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동지들의 전폭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방정환 선생은 독립운동의 동력을 '어린이'에게서 찾았으며, '어린이 날' 제정과 함께 어린이에 대한 권익보호와 구습타파가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날의 공표로 다음해 5월 첫 째 주 일요일(5일)에 어린이 행사를 치렀으며, 이 행사에 종교·학교·사회단체 등이 동조하여 이후 5월 5일을 정식으로 '조선 어린이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날은 1939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는데,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 5일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최초로 '어린이' 잡지를 출간한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어린이의 꿈을 키워 줄 사랑 실천운동으로 '색동회'를 조직합니다. 여기에 윤극영 등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우리나라 근대창작동요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시 많은 어린이가 부르던 몇 곡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1923년)인데, 나라 잃은 슬픔을 정감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윤극영의 '반달'(1924년)은 2절의 끝부분에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노랫말 속에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비쳐주는 뜻있는 동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 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서덕출의 '봄편지'입니다. 여기서 '조선 봄'(1926년)은 나라의 독립을 상징하며, 꼭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불어넣어준 노래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 동요를 부르며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 동요를 부르며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이 밖에도 유지영의 '고드름'(1924년), 박태준의 '오빠생각'(1925년) 등 지금까지 애창되는 수많은 동요가 이 당시 만들어지며 어린이의 꿈을 자라게 하였습니다.

1920년대 펼쳐진 어린이 계몽운동은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으며,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윤석중은 '어린이날 노래'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만들어 다시 한 번 어린이에 대한 의미를 일깨웠습니다. 참고로 윤석중은 초등학교 '졸업식 노래'도 이 당시 지었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이미지 확대보기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1957년 정부에서는 어린이의 천부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제정합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어린이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마음껏 꿈을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8년 오늘, 어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우며 미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또 다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조선시대의 자조적인 속담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돈에 의한 신분사회가 조성되며 교육의 역차별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5월 어린이 달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참에 슬기로운 어른들의 지혜가 다시 한 번 모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