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도 하락과 함께 곳곳서 이상 기류
[글로벌이코노믹=천원기 기자] ‘세월호 침몰’ 사태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 판세를 미묘하게 바꿔 놓고 있다. 무엇보다 청해진해운의 주 영업 무대인 인천광역시 시장 선거가 주목된다. 초유의 비극을 맞은 단원고등학교가 소재한 안산시 시장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과 직접 연관이 있는 인천시와 경기 안산 지역, 서울시 등은 세월호 사태로 인해 선거판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천시장 선거의 경우 당초 현 송영길 인천시장과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의 2파전이 예상됐지만 송 시장이나 안 전 장관 모두 ‘세월호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현역 후보와 도전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병수 인천시 의회 의원은 “유 전 장관은 9일로 예정된 새누리당 후보 경선을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는 안상수 전 시장과 막상막하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 전 장관은 재임시절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를 겪었고 출마를 위해 퇴임한 직후 세월호 침몰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의 안전 관리 최고책임자였던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유 전 장관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국민 안전 대책을 수립했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안전관리 시스템이 적절히 가동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반사이익이 송영길 현 시장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송 시장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유 전 장관에게 다소 밀리는 분위기였는데다 지난해 인천시가 세월호 사태의 주범인 청해진해운에게 물류대상 기업부문 특별상을 준 사실이 드러나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치적 동지이자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 모씨가 거액의 뇌물을 대우건설로부터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지난해 말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2011년 청해진 해운 소속 제주도행 ‘오하마나호’가 엔진 고장으로 인천항으로부터 900미터 떨어진 곳에서 5시간 넘게 멈춰서서 승객 600여 명이 불안에 떨어야 했던 시절의 인천시 수장도 송영길 시장이었다. 당시에도 청해진 해운은 인천시나 관계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반영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을 통해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따르면 35.5%를 기록한 송 시장은 37.6%를 올린 유 전 장관에게 밀렸다. 송 시장은 안상수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도 2.1%p가 낮았다. 지난 3월 진행된 같은 조사에서 송 시장은 두 후보보다 10%p 앞선 결과를 얻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새누리당 후보와 격차가 좁혀졌다는 분석이다.
한편 인천 지역 정치인들과 청해진 해운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인천시는 청해진 해운과 함께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 왔고 인천시 다수 학교가 청해진 해운을 이용했다. 인천시 산하기관인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서포터스는 청해진 해운을 이용해 제주까지 응원을 가는 프로그램을 2008년부터 운영 중이다.
청소년들의 제주도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특히 청해진해운이 문을 연 1999년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등 3개 항로에서 4척의 여객선을 운영해왔고 인천~제주 항로는 15년간 독점 운영했다. 인천 지역 한 정당인은 “유 전 회장이 인천 지역 국회의원들과 친분관계가 돈독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지역 정가를 떠돌고 있다”며 “세월호 사건에 대해 국회, 특히 인천 정치인들이 말을 아끼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의혹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이른바 ‘박심(朴心)’ 후보로 불리는 것도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렸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박 대통령의 권유로 출마했다’는 박심 후보들도 덩달아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4월 마지막 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2.9%로 집계됐다. 아직 당선 득표율인 51.6%보다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는 있지만 2주 동안 11.8%p나 떨어졌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지난 2일 조사에서는 40.9%까지 올랐다. 부정적 평가가 40%를 넘은 것은 작년 12월 대학가를 중심으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확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기간 새누리당 지지율도 5.2%p 하락해 43.5%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 전 장관을 비롯한 박심 후보들은 당내 경선에서 고전을 겪고 있다. 서울 시장에 출마한 김황식 후보는 잇따른 박심 발언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또 다른 박심 서상기 의원은 대구에 출마했다 권영진 전 의원에게 밀렸고, 경남지사에 출마한 박완수 전 창원시장은 홍준표 현 지사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콘크리트로 불렸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금이 갈 조짐이 보이면서 정부와 새누리당은 고민에 빠졌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 영향이 새누리당으로서 굉장히 클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위기감을 상당히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떨어지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지역이 서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였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두 후보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중앙일보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은 45.6%로 39.2% 기록한 정몽준 의원을 6.4%p 앞서고 있다. 매일경제가 진행한 여론조사에는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49.3%로 정 의원(37.0%)보다 12.3%p 앞섰다.
남경필 필승론이 대세였던 경기도지사 선거판 역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개가 자욱하다. 수원 지역 5선 의원인 새누리당 남 후보가 여러 모로 우세했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선거전이 남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10일과 11일 각각 본선 후보를 확정한다. 경기도의회 한 의원은 “워낙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민심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떠나고 있어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지율에선 아직까지 남 후보 우세다.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남 후보는 46.3% 지지율을 얻어 김 전 교육감(24.6%)보다 크게 앞섰다. 매일경제신문 조사에서도 남 후보는 10%p 이상 앞서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지율 격차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안산시는 여야의 수 싸움이 더욱 복잡해진 지역이다. 세월호 침몰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희생당하면서 표심(票心)이 얼어붙은 데다 선거운동이 성난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여야 모두 선거 대책 수립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여권 강세 지역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선거가 초박빙 접적 양산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단원구에서 활동했던 조빈주 전 단원구청장, 제종길 전 의원을 각각 전략 공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안산시 의회 한 의원은 “안산시장 선거는 보통 예측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여야가 전략 공천한 이유도 선거 분위기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