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정은지 씨는 역술개론 교양수업에서 이달 ‘16일 자정’까지 과제를 제출하기로 했다. 16일 낮3시, 별 무리 없이 과제를 진행하던 은지 씨는 교수에게 과제를 기한 내 제출 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과제 제출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깜짝 놀라 교수에게 제출 기한을 물었다. 제출기한은 전날인 15일 밤 12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교수가 말한 자정은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가는 ‘0시’를 뜻했고 은지 씨가 이해한 자정은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24시’였기 때문에 이 같은 헤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역술학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하루는 오후11시를 뜻하는 자시부터 시작된다. 자시는 오후11시(23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를 뜻하는데 자정은 그 한가운데인 밤 12시를 지칭한다. 교수는 역술학적인 입장으로 자정이 이미 자시(오후11시)를 넘어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6일의 시작점에서 날짜를 제시한 것이다.
반면 은지 씨는 자정이란 하루의 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16일 자정’은 16일 24시라고 이해했다.
위 사례처럼 자정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자정은 대략 하루나 차이가 난다. 국어사전에서 조차 ‘자정’을 다르게 정의하니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훈민정음국어사전에서는 자정을 ‘자시의 한가운데 시각, 곧 0시’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표준대사전 및 연세한국어사전에서는 ‘자시의 한가운데. 밤 열두시를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법’ 항목에 따르면 자정은 정확하게 ‘0시’를 의미한다.
시법은 크게 하루를 12시로 나눈 12지시법과 24시로 나눈 24반지시법이 있는데 12지시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시, 축시, 인시 등을 말한다.
24반지시법에서는 자시를 자초와 자정으로 나누듯 모든 12지시를 ‘초’와 ‘정’으로 양분하는데 24반지시법에서는 자정을 현행시법인 ‘0시’로 명시한다.
반면 국가 측정표준 대표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측에서는 자정을 “시간 표준법으로는 자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며 “관례적으로 쓸 뿐이지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면 0시가 되고 하루의 끝으로 보면 24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자정에 대한 기준은 없는 것일까. 법원이 자정에 대해 판결한 사례가 있다. 관례적 쓰임에서 벗어나 법을 기준으로 자정의 의미를 제시한 것이다.
지난 1978년 대법원은 예비군교육 소집일 통지서 전달과 관련한 계산방법에 대해 판결을 했다. 향토예비군설치법 시행령에는 훈련 통지서는 ‘소집일 7일 전’까지 전달하도록 돼 있다. 이 재판에서 재판장은 소집일 7일 전이라 함은 소집일 전일을 기산일로 해 거꾸로 계산해 7일이 말일이 되고 그날의 오전 0시에 7일의 기간이 만료한다고 해석했다.
교육훈련일이 77년 5월13일이었던 만큼 소집일 7일 전까지라 함은 ‘77년 5월5일 자정까지’라고 판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법원은 0시를 새날의 시작이 아닌, 전날의 마지막인 24임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이 판결에 따르면 법적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은 24시이고, 새날의 시작은 0시를 넘어선 직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매년 12월31일이 되면 서울 보신각 앞에는 새해를 알리는 타종행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다. 또 전 세계적으로도 새날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실시한다. 그리고 정각이 되면 보신각 신년 타종을 하고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한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24시 정각을 넘어선 직후에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법적으로 따져서 옳다 그르다 할 필요까지는 없다. 세상을 법보다 관례가 더 편하고 현실적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