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영구 거주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최인국 씨가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해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 드리는 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보도내용이다.
최덕신 전 장관은 국군 1군단장과 육사 교장을 거쳐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부 장관과 서독 대사를 지냈다. 박 전 대통령과 갈등을 겪은 뒤 1976년 아내 류미영 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6년 월북했다. 차남 인덕 씨 등 자녀 다섯은 남한에 놔둔 채 였다.
6·25전쟁 때 제8사단과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참전하였으며, 지리산토벌군으로 거창양민학살사건에 관여되었다. 1953년 휴전협정 때 국군소장으로 UN군사령관 클라크(Clark,M.W.)장군을 보좌해 휴전협정 조인에 관여했다.
1956년 육군중장 예편 후 주베트남공사, 5·16군사정변 후 1961년 10월부터 1963년 3월까지 외무부장관을 지냈다.
제7대 천도교 교령을 오래 맡아 민족종교의 위상을 높여나갔다. 1969년 국토통일원 고문, 이듬해 새인간연합회 총재, 1971년 종교협의회 회장과 한중문화친선협회 회장 그리고 3·1국민회 회장, 1973년 유신학술원 회장과 국제라이온스309A지구 총재 그리고 반공연맹 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 뒤 천도교계에서 실권이 박탈된 뒤 박정희 정부와의 불화로 197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덕신 경력은 다음과 같다.
육군중장 예편, 주월남 공사, 대사
외무부장관(1961.10.11-1963.3.15)
주독일 대사, 한중일보 사장(1972) 등 역임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