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는 1950년 8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간의 합의에 따라 공식화되었으며, 미군 사단의 부족병력을 보충하여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6·25전쟁 초기 미군의 심각한 병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카투사 제도였다. 1950년 8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미 제8군은 미 지상군 전투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군 병력으로 증원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는 한반도에 도착하는 주일미군사단이 평시 감소편성으로 병력이 부족한데다 전투손실로 인한 병력 보충이 시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 본토에서 보충병이 도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카투사 모집은 1950년 8월 15일을 전후해 주로 피난민들이 몰려 있던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징집 형태로 이루어졌다. 모집된 카투사는 한반도에 파견되었거나 파견될 예정인 미군부대에 배속되었다.
카투사에 합격하려면 토익 780점 이상이면 그 다음은 추첨으로, 운이 좋아야 붙을수 있다. 카투사는 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병장 기준 약 40만원 입니다.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