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자신이나 가족에게 죽음이 닥치는 것을 최고의 불행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든지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또한 운명이다. 인간은 나의 죽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먼저 겪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며 심지어는 같이 죽고 싶을 정도의 찐한 슬픔을 갖는 사람들이다. 다른 경우는 상대방의 죽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나는 저런 식으로는 죽지 않을 거라며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후자는 겉으로는 애도하는 척만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한 차원 진보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자신도 같이 죽으면 돌아가신 영혼이 슬퍼할까바 죽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신과 함께' 중 '죄와 벌편'에서는 사후세계와 심판, 그리고 환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보다는 환생을 하려면 죄를 짖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를 다분히 담고 있다.
이처럼 사후세계와 환생을 다룬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환생보다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많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을 것이다.
원작과 다르게 주인공은 남을 구하다 의롭게 죽은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하고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강조한다고 해서 신파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이 세계적으로도 좋은 수출 실적을 올린 것을 보면 평론가들의 비평은 감수할만하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린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을 생각할 만큼 불우한 환경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불치병과 선천성 장애로 어린 형제를 돌보지 못하고 누워만 지냈다. 동생 역시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었다.
이후 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는 심한 자책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세상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가족들의 생활비를 보낸다. 15년 가까이 죄책감으로 살면서 소방관 생활을 하던 어느날 위기에 처한 어린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죽어서 사후세계로 가는 심판대에 선다.
엠비씨 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주인공의 죄책감과 뉘우침에 관하여 좋은 평가를 한다. 현실에서는 보험금을 타내거나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각박한 세상에 어머니에 대해서 한순간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에 자책하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설정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는 온갖 나쁜 생각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마음에 품은 나쁜 생각만으로 괴로워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선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감동이다.
영화는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지도 못하고 짐만 되는데도 어머니 존재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자체를 실행하지는 못 했지만 그 생각 자체로 자식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닌지 보여진다. 자식이 나쁜 생각한 것만으로도 집을 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사후세계나 영혼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갈라놓았을 때 살아있는 사람들이 망자를 못 잊어서 만든 사랑의 결과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처럼 그 어려운 환생 과정을 거쳐 죽은 사람을 다시 불러오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따라가든, 어떤 방식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은 것이 인간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지 나의 영생이나 안녕을 위한 심판이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있는 자들이 죽음이 두려워서 만든 결과보다는 감동을 준다는 것이 영화가 주는 약간 거리가 먼 나만의 메타포 아닐까?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