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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 대전망]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과 그 너머, '팬데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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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 대전망]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과 그 너머, '팬데믹세'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19’가 새삼스레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이 질병과 스트레스로 인해 후성유전학적 노화의 가속을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세계적으로 6억 1,000만 명, 한국에서만 2,300만 명 이상의 인체에 침투한 신종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는 감염자 수의 측면에서 20세기 최악의 팬데믹이었던 1918년 인플루엔자(일명 스페인독감)를 능가하며 인류사적 괴물로 남게 되었다.

한국은 초기에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철저한 역학조사를 앞세운 이른바 ‘K-방역’을 통해 코로나19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통제했지만, 대규모 백신접종 이후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으로 전환한 결과 세계 최다 수준의 일일 확진자를 쏟아 내며 ‘감염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코로나19를 가벼운 독감 정도로 여기며 성급하게 ‘엔데믹 시대’를 선언했고, 국가 주도의 방역정책도 길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코로나19 유행의 향방과 그 너머를 전망하는 것은 긴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백신의 공방, 승자는?


감염병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백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조차 한때 비관적인 견해를 내비쳤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되어 중국 우한에서 최초 감염 보고가 이루어진 지 약 1년 만에 전 세계적인 접종이 개시되었다. 특히 처음으로 등장한 mRNA 백신은 표적 바이러스의 염기서열만 알면 신속한 제조가 가능하고 감염 예방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감염병에 대한 인류의 방어 능력이 한 단계 향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높은 접종률을 달성하며 유행 종식의 기대감이 커졌지만, 오히려 더 큰 유행의 파고가 반복해서 들이닥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백신접종 후 반년 이내에 감염 예방 효과가 반감되었다. 둘째, 방역 규제가 철폐되거나 느슨해졌다. 셋째, 감염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인은 각각 추가 접종과 규제 강화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변이체가 속속 출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 침입에 필요한 스파이크 단백질 내 수용체 결합 부위(Receptor -Binding Domain, RBD)에 집중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감염력이 강해지고 기존 백신이 잘 듣지 않게 되었다. 이에 오미크론을 표적으로 하는 개량 백신이 각국에서 승인되었거나 승인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변이체와 백신의 공방은 향후 몇 년간 계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는 자연 감염을 통해서도 면역의 질과 지속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므로 몇 개월 단위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친 집단면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더욱이 코로나19는 변이를 거듭하면서 기존의 백신이 제공하는 면역을 회피하거나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을 갖게 될 공산이 크며, 감염성이 높으면서도 또 다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수준의 치명률(각각 ∼10%, ∼35%)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가 면역을 가진 집단에 퍼지면 점차 독성이 약해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러한 변화는 몇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당장 감기 수준의 병원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이 자체도 독성의 약화라는 방향성을 띠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엔데믹, 그러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엔데믹(endemic, 풍토병)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낮은 치명률과 높은 접종률을 근거로 이미 엔데믹 시대에 돌입했음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엔데믹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무엇보다 유행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고 사회 전반이 영향을 받는 지금은 여전히 에피데믹(epidemic, 유행병) 시기에 속한다. 감염자 수를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새로운 변이가 계속 등장할 것이고, 엔데믹 시기로 이행하기까지 최소 수년간의 중간기를 거치게 되는데, 그 기간에 인구 대부분이 감염될 것이다. 아무리 치명률이 낮아도 감염률이 높으면 사망자, 중증 환자, 후유증 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엔데믹 시기가 도래했다고 해서 코로나19가 감기나 계절성 인플루엔자 수준의 감염병이 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엔데믹 시기의 감염률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평균 면역 지속기간인데, 이 수치가 작을수록 감염자 비율이 높아진다. 백신의 효과 지속기간을 3∼4개월로 간주할 때, 엔데믹 상황에서는 감염자 수가 항상 인구의 2∼8%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계절성 인플루엔자의 4∼16배 수준이며, 고령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사망자 수는 많아진다. 한국 사회는 2024∼2025년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하고 2035년경에는 노령화지수(14세 이하 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가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비상사태’ 속에서 사회를 통제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소모할 수도 없으므로 결국 엔데믹화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를 줄이고 면역 지속기간을 늘리기 위해 공공의료의 확충과 범용 백신의 개발을 비롯한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종식은 없다


집단면역 운운하며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대했던 유행 초기와 달리 이제 우리는 종식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체험하고 체념하고 있다. 엔데믹 시기가 올지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인류와 함께할 기나긴 세월의 시작에 불과하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감염병이 근절된 사례는 두창(천연두)이 유일하며, 위세가 크게 꺾인 홍역과 소아마비조차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고 있다. 2002년 11월에 처음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사스는 이듬해 7월에 유행이 종식되었지만, 이러한 감염의 종식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스코로나바이러스(SARS-CoV)는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더욱 강력한 형태(버전 2)로 돌아와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 유행의 종식은 생물학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주로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로 인식되어 왔다. 1918년 인플루엔자는 발생 이후 관련 유행이 최소 수년에 걸쳐 나타났지만, 단 세 번의 파고를 남긴 1918∼1919년의 팬데믹으로 기억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은 오늘날 해마다 수십만에서 백만에 이르는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있지만, 팬데믹이라는 인식조차 없다. 2020년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보다 결핵 사망자가 더 많았지만, 결핵 문제는 기삿거리도 되지 못했다. 이처럼 감염병은 사회적 관심과 이해에 따라 망각, 즉 ‘종식’되며, 주 감염자가 사회적 약자나 면역 취약계층일 때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도 이러한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크지만, 엔데믹 시대에 연착륙하려면 사회적 ‘종식’은 없어야 할 것이다.

‘팬데믹세’의 감염병


문제는 코로나19뿐만이 아니다. ‘세계 3대 감염병’(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21세기에 들어서만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메르스, 코로나19 등 새로운 감염병이 3∼7년 간격으로 출현하여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10∼40년 주기로 발생하기 때문에 당장 2023년에 팬데믹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다. 원숭이두창처럼 기존의 감염병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기도 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다양한 모기 매개 감염병이 고위도 지역으로 북상하기도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최소한으로 억제된 시나리오(RCP 2.6)에서조차 2070년까지 바이러스의 새로운 종간 전파가 포유류 사이에서 4,000회 이상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그랬듯이 박쥐 등의 야생동물에서 비롯된 신종 감염병이 인간에게 침투하여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겨진다. 이처럼 야생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로 옮는 일(zoonotic spillover)이 빈번해질수록 인류가 새로운 팬데믹에 직면할 위험성도 자연히 높아진다. 우리는 어느덧 미증유의 ‘팬데믹세’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질병 감시와 공중보건 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개별 감염병에서 지구환경 전체로 시야를 확장하여 본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감염병과 기후변화에 대한 각국의 대응 태세와 국제 공조가 허술한 현실을 보건대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규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