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마음 산책(310)] 입양과 변하는 가족문화

네덜란드 공영방송 NPO의 유명 라디오 진행자가 된 미샤 블록(50). 그녀의 한국명은 박근희다. 두 살에 한국을 떠나며 처음 탄 비행기에서 긴장한 나머지 바지에 실수를 했던 그 아이는 이제 50세가 되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결국 친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친어머니를 만난 그 순간이 “다시 태어난 순간”이라고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53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동은 16만9859명이다. 비공식 통계를 포함하면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실로 엄청난 숫자다. 한국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낸 나라는 중국·러시아·에티오피아·과테말라·콜롬비아·우크라이나뿐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국가가 개발도상국이나 분쟁 지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씁쓸한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수치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매년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어 갔다. 2007년 2344명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에 있지만 2020년까지도 연간 334명의 아이들이 해외 가정으로 떠났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절대빈곤 시대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회복지체계가 미비했던 상황에서 미혼모나 저소득층 가정에 입양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아동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됐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해외 입양을 "좋은 일"로 포장하며 적극 장려했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 잘사는 나라의 좋은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해외 입양이라는 한국적 현상의 뿌리 깊은 원인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문턱을 두드리던 2007년에도 2344명이 공식적으로 해외로 입양되었다.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과제는 어느 사회나 문화의 근본적 요소다. 그래서 더 근본적인 문화적 토대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인류학자 프랜시스 슈(Francis Hsu)는 한 문화의 근본 특성이 가족관계, 특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2자 관계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자(父子) 관계'가 가족의 중심축을 이룬다.
이는 서구 문화권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는 '부부(夫婦) 관계'가 가족의 핵심이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부부 중심의 핵가족 문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우선시된다. 반면 동아시아의 부자 중심 문화에서는 집단과 가문의 이익이 개인의 선택보다 우위에 놓인다.
부자 중심 문화의 핵심은 '연속성'이다. 이 연속성은 혈연을 통한 가문의 계승을 잇는 중요한 가치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혈통은 가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위로는 조상(祖上)과 아래로는 영원히 이어지는 자손(子孫)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혈연으로 이어지는 ‘순혈(純血)주의’가 중요해진다. 연속성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자원의 대물림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아들은 그 반대로 아버지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는 가치가 중요시된다.
아버지의 역할은 아들을 생산해 '대(代)'를 잇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래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에서는 내세(來世)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뚜렷한 현세 중심적인 사생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다. 아무리 고되고 궁색한 삶이라도 이승에서 살아있는 것이 더 낫다는 이 속담의 깊은 의미에는 저승을 두렵고 알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저승이지만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지는 알고 있었다. “죽어서 조상 뵐 낯이 없다”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죽어서 조상은 만날 것을 알고 있고 또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부자 중심 문화, 즉 가족과 가문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동은 자신의 명예나 평판에 그치지 않고 조상 전체의 명예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죽어서 조상 뵐 낯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행위가 조상에게까지 누를 끼치고, 조상 앞에 당당하지 못하다는 깊은 죄책감 혹은 부끄러움을 뜻한다. “죽어서 조상 뵐 낯이 없다”는 가장 큰 잘못은 한국 전통사회에서 특히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것, 즉 아들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자손을 두지 못해 가문의 계승이 끊기는 상황이 가장 큰 부끄러움, 책임을 저버린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대에서 가능한 한 아들을 낳아야 하지만, 이 아들은 반드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래서 정실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는 경우 밖에서 낳아 가지고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이어야 한다. 아니면 가난한 여인이나 과부를 ‘씨받이’로 두어서라도 아들을 생산해야 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아버지의 ‘씨’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의 피여야만 순수한 혈통을 이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여기에서 ‘순혈’이 강조되고, ‘혼혈(混血)’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자신의 대에서 다른 사람의 씨를 받아들여 ‘혼혈’이 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것이다.
단지 경제적으로 자식을 키울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생긴다. 이런 문화적 속성에서 입양은 ‘혼혈’로 가는 지름길이다. 혈통(血統)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 입양을 하더라도 가능한 한 이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입양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순간부터 부인은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행동한다. 배가 부를 때쯤이면 배에 복대를 둘러서 임신한 것처럼 꾸미기까지 한다.
부자 중심 문화의 연속성 문화에서는 이처럼 입양 자체를 경원시했다.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관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입양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에 대한 가치관이 변할 필요가 있다. 아이는 한 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함께 고려해야 할 존재다. 특히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몹시 낮다. 2025년 1분기 합계출생률은 0.82명으로 가임여성 1명이 평생 한 명의 자녀도 낳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떤 상황에서 태어나든 관계없이 모두 기뻐하고 축하해줄 국가적인 대사(大事)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빨리 변해야 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상적인 상황에서 축복 속에 태어나지 않는 아기가 있을 수 있고, 또 친부모가 키울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한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입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입양이 가족의 새로운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입양 가족/입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다”의 의견이 71%나 되고, “한국에서 입양아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절반 이상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
“낳은 정 기른 정”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비록 낳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직접 키우며 생기는 정서적 유대와 애정도 낳은 정 못지않게 깊을 수 있다. 급하게 세계화되는 상황에서 국제결혼을 하는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국제결혼 건수는 약 2만759건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제는 ‘순혈’이니 ‘혼혈’이니 하는 구분조차 불필요한 세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문화는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에서 제일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문화도 변해야만 하고, 또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25년 현재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이나 크고 작은 조직이나 심지어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순혈주의 문화를 택한 것은 그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효율적이었다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도 효율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