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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위기 극복"...기우제, 사회적 결속 강화하는 장치로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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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313)] 가뭄과 기우제: 종교적 의례의 심리학적 의미
지난 8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대관령산신당·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강릉단오제보존회가 기우제(祈雨祭)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8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대관령산신당·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강릉단오제보존회가 기우제(祈雨祭)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강릉에 제발 비를 뿌려 주소서.”

강릉단오제보존회가 최근 강릉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계속 되자 대관령산신당·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기우제(祈雨祭)를 봉행했다는 소식을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들은 “가뭄 해갈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대관령 산신과 대관령 국사 성황신에게 가뭄 해갈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밝혔다. 무녀와 집사들이 전통 복식을 입고 제단에 제물을 올리고 밤·대추·떡 등 제물을 올린 뒤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축문(祝文)을 낭독했다.

기우제가 끝나고는 굿이 펼쳐졌다. 굿을 주관한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은 “매년 단오굿 등으로 시민 안녕과 풍어·풍년을 기원했지만 올해는 유난히 덥고 가물어 물 부족이 우려된다”면서 “시민이 마음껏 물을 쓰기 어려울까 걱정돼 천지신명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올해에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기에 기우제를 지냈지만 매년 단오굿 등을 시행해 왔다는 것이다. 하긴 강릉단오제는 이미 2005년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우제와 관련해 널리 회자되는 것은 ‘인디언 기우제’다. 인디언 기우제는 미국 원주민들이 가뭄이나 가축·농작물에 필요한 비를 기원할 때 행하던 전통적인 의식이다. 기우제는 자연과 영적 존재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의례다. 특히 미국 남서부의 호피(Hopi) 인디언은 매년 여름 비를 기원하는 “레인 댄스(rain dance)”를 실행했다. 이들은 전통 의상을 착용하고 춤을 추며, 자연의 영혼에게 비를 청했다. 그런데 이들의 기우제가 유명한 것은 이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하기 때문이다.
농경문화에서 가뭄은 단순히 비가 오지 않는 자연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농업 생산 기반을 뒤흔들고, 공동체 생존을 위협하는 총체적 위기다. 오랜 기간을 농경문화로 살아온 한반도에도 가뭄은 반복적으로 찾아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한 염원을 드러냈다. 그 대표적인 전통이 바로 기우제다. 기우제는 비를 청하는 종교적 의례다. 이번 기우제가 봉행된 대관령국사성황사는 대관령 국사서낭(성황)을 모신 신당이고, 대관령산신당은 그야말로 산신을 모신 신당이다. 대관령 국사서낭은 대관령 산신과 함께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진다. 이 사실만으로도 기우제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우제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기우제에 종교적 차원만 있다면 21세기에 기우제를 드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에 누가 대관령 신당에 모신 산신과 국사서낭이 비를 오게 해준다고 믿고 있을까? 기우제까지 봉행하는 그 절박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산신이 비를 내려준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에도 기우제를 드릴까? 그 이면에는 공동체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사회적·심리적 장치가 숨어있다.

종교적 색채를 띤 현대의 기우제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비가 내리는 결과가 아니라 의례를 통해 공동체가 하나로 묶이는 과정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산신당이나 성황당에 모여 기도하는 순간, 사람들은 “우리는 함께 위기를 견딜 수 있다”는 집합적 신념을 확인한다. 종교적 의례는 곧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번 기우제에도 제단 앞에서 제관들이 축문을 읽자 모여든 시민들도 고개를 숙이고 합장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기우제가 공동체에서 하는 기능을 알 수 있다.

기능주의 인류학자인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종교와 주술의 기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심리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농경사회에서 가뭄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었고, 기우제는 이 불확실성을 상징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우제를 통해 비록 물리적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더라도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적 위안은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기우제를 지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신분과 계급을 넘어선 공동체적 결속을 느끼며 사회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시가 속해 있는 강원도지사가 직접 방송에 나와 “이 방송을 들으시는 국민 여러분께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면서요. 이 강릉시에 마실 수 있는 생수를 보내주시면 그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라고 전 국민을 향해 생수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 호소에 호응이라도 하듯 한 기업체에서 강릉시에 생수 100만 병을 기부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는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세워졌다. 기상 예보는 정밀해졌고, 가뭄과 홍수를 예측하는 기술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무리 과학적 지식을 쌓아도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은 여전히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기후 위기, 감당할 수 없는 개인적 상실, 불확실한 사회·경제적 상황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무언가 초월적인 힘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현대인들도 무속이나 전통 의례와 같은 문화적 장치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미신이라고 천대받던 무속(巫俗)이나 다양한 점술(占術)이 오히려 더욱 횡행하고 있다. 이 사실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단순히 비합리적 신앙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한계 앞에서 불안을 다스리려는 심리적 필요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록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 해도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 기우제는 더 이상 ‘비를 내리게 하는 과학적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공동체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문화적·심리적 의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가진 복합적 신앙 전통인 유교적 제례, 불교적 기도, 무속적 굿 등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현대인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마주할 때 초월적 의례에 기대려는 종교성이 살아있음을 방증한다.

기우제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종교적 행위의 효과는 초자연적 결과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의례의 실질적 기능은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며, 심리적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한국의 기우제든, 호피 인디언의 '레인 댄스'든 그 본질은 같다. 인간은 언제나 불확실한 자연 속에서 살아왔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의례를 만들어왔다. 특히 호피 인디언처럼 “비가 올 때까지” 지속하는 의례는 집단의 끈기와 결속을 극대화하며, 기우제가 가진 보편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

21세기 강릉에서 봉행된 기우제는 우리에게 ‘과학과 종교는 과연 대립적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둘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과학은 객관적 문제 해결의 도구고, 종교는 주관적 불안 관리의 도구다. 가뭄을 해결하는 것은 과학이지만 가뭄으로 인한 불안을 달래는 것은 종교의 몫이다.

현대인들이 명상을 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들이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문제를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 힘과 자원을 제공한다. 기우제로 표현된 종교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개발한 지혜의 산물이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그 본질적 기능은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아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지혜를 이해하고,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통해 현재를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