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마음산책(318)] 집단사고와 '악마의 변호인'
이미지 확대보기집단사고는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화합과 만장일치 달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훼손되는 사고방식이다. 조화와 일치의 분위기가 오히려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하는 심리적 함정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집단의 응집력이 지나치게 강할 때, 구성원들이 비판적 사고를 억누르고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게 된다. 겉으로는 단합과 화합의 분위기가 감돌지만, 그 내부에서는 비판적 사유가 억제되고 질문이 사라진다. 집단은 오히려 "우리 모두가 옳다"는 확신 속에서 잘못된 길로 향하게 된다.
피그스만 침공: 비판 없는 합의가 낳은 참사
재니스가 이 개념을 구체화하게 된 계기는 1961년의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 사건이었다. 케네디(John F. Kennedy) 미 대통령 행정부는 쿠바의 반(反)카스트로 세력을 지원해 쿠바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승인했다. 당시 여러 전문가들이 "현실성이 낮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영재 군단'이라 불리던 최고 엘리트 참모진은 그 경고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고, 만장일치로 카스트로(Fidel Castro) 정권 전복 작전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회의록을 보면, 반대 의견은 거의 제시조차 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모두가 '대통령의 판단을 신뢰한다'는 분위기였고, 내부의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팀워크를 해치는 행위로 여겨졌다. 회의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그 평화는 비판의 부재로 이루어진 허상(虛像)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작전은 단 사흘 만에 실패했고, 미국은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다.
재니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비판 없는 합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밝히기 위해 10년간의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피그스만 침공, 진주만 공습,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 확대 등의 사례를 분석하며 공통적으로 작동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집단사고'로 정의했다.
그는 집단사고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집단 내에서 반대 의견이 억압되고, 리더에 대한 충성심이 비판을 마비시킨다.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며, 집단은 외부의 비판적 시각을 차단한다. 의사결정 과정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한다.
한국 정치의 현실: 집단사고에 취약한 구조
오늘날 한국 정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재니스가 경고한 집단사고의 징후가 놀라울 만큼 유사하게 나타난다. 첫째, 당내 비판의 부재(不在)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도부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비판은 '충성심 부족'으로 해석되고, 반대는 '배신'으로 낙인찍힌다. 내부의 토론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충성과 경쟁뿐이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관점이 배제되고, 정책의 질은 낮아진다.
둘째, 정치 팬덤의 강화다.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형성되면서 그를 비판하는 것은 곧 '적대행위'로 간주된다. 이 현상은 재니스가 말한 '도덕적 확신(moral infallibility)'의 현대적 형태다. 진영의 옳음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고착되고, 반대 진영은 '악'으로 단순화된다.
유대인의 지혜: "모든 재판관이 유죄를 선고하면, 피고는 무죄로 한다"
재니스가 '집단사고'라는 이론으로 밝힌 위험을 유대인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경험의 지혜'로 알고 있었다. 유대의 최고 종교·사법 기구인 산헤드린(Sanhedrin)에서 실제로 적용된 원칙이 있다. 재판관 전원이 모두 한목소리로 유죄를 주장하는 경우, 그 결정은 오히려 부결시킨다는 것이다. 이 규칙은 특히 사형 사건을 다루는 모든 유대인 법정의 기본 원칙으로 적용되었다. 그 이유는 피고인을 변호할 단 한 명의 법관의 목소리도 없다는 것은 절차의 심각한 결함으로 간주했고, 또 모든 법관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만장일치를 위험한 상태로 본다. 왜냐하면 만장일치는 사회의 건전한 논쟁과 반대 의견의 부재를 의미하는 신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단순한 법률적 절차가 아니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었다. 불편한 의견, 소수의 반대가 존재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유대인들의 지혜와 재니스의 연구는 같은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는 '합의'가 아니라 '비판'을 통해 성장한다
피그스만 침공 이후 1년 뒤,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가 발생했을 때 케네디는 이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회의에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공식적으로 두어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게 했다.
악마의 변호인은 원래 가톨릭 교회의 공식 직책으로서 성인(聖人) 추대 과정에서 후보자의 자격에 대해 의도적으로 비판적인 의견이나 의혹 등을 제기하여 검증을 철저히 하던 직책을 의미한다. 이 직책을 둔 이유는 교회가 성인으로 추대하는 결정이 감정이나 편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장 엄격하고 혹독한 검증을 통과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에도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토론에서 '악마의 변호인'은 자신의 실제 견해와 상관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이나 제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에 서서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 문제점이나 숨겨진 오류를 밝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문화와 집단사고의 함정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수결'이 아니라 '비판의 안전성'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현실은 여전히 조화와 충성을 미덕으로 삼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부의 이견(異見)을 불편해하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한다. 한국 정당은 내부 결속을 중시하여 '단일대오(單一隊伍)'를 강조하며, 이는 산헤드린이 경계했던 만장일치의 압력을 만들어낸다. 당내에서 주류 의견이나 리더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하는 의원이나 당원은 '해당 행위자' 또는 '내부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형식은 살아있지만 사고(思考)는 전체주의적 이분법으로 변해 간다. 결국 나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하는 '아군(我軍)'과 무조건 반대하는 '적군(敵軍)'만 남는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권위주의와 지시적 리더십이 강한 특성이 있다. 가부장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가장(家長)의 결정과 그에 복종하는 것이 곧 가족의 평화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족 구성원이 각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집은 '콩가루 집안'으로 간주된다. 이런 특성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어느 집단이나 우두머리가 결정하고 다른 집단원은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눈치가 발달한 문화이기 때문에 윗사람이나 선배 등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분위기도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높은 응집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비판을 회피하려고 한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의도적으로 이견을 내는 '악마의 변호인'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회의나 정책 결정 시, 반대 의견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은 오류를 예방하는 장치다. 둘째, 리더의 겸손한 중립성이 필요하다. 리더가 처음부터 자신의 입장을 확정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시민의 인지적 성숙이 필요하다. 시민들 역시 자신의 정치적 울타리 밖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내가 속한 집단의 결정이 정말 합리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지적인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옳다"보다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인식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심리적 기반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타인의 관점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민주적 사고의 핵심이다.
이미지 확대보기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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