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미지 확대보기오늘의 20대는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발바닥에 불나듯 뛰어다녀야' 겨우 성인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 고도 성장기의 수혜자인 부모 세대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그런대로 취업문이 넓은 시절 직장을 잡은 행운의 세대였다. 신자유주의의 파고와 고용 없는 성장을 거쳐 테크노 자본주의의 출현 앞에 선 20대는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불운의 세대다. 덕분에 '생애주기의 탈(脫)표준화'를 겪고 있는 20대는 동일 연령층 내부의 계층적 격차가 매우 크다는 아픔과 함께 '세습 중산층 사회' 속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지나 사회 양극화가 공고해지면서 등장한 한국 사회 20대론은 출발부터 비관적이고 자조하는 분위기를 띠고 나타났다. 20대를 둘러싼 부정적 분위기를 선도한 책으로는 우석훈·박권일(2007)의 '88만원 세대'를 들 수 있다. ‘88만원 비정규직’은 당시 20대의 고통과 고충을 상징적으로 포착한 개념으로 지금도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SNS상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금수저·흙수저론,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朝鮮)을 합친), ‘가진 것 없는 젊은 세대가 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란 뜻의 '죽창',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아주 적은 보수로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뜻’의 '열정 페이',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평가를 풍자’한 표현으로 '노오력' 등의 신조어가 SNS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담론이 주를 이루었던 한국과 달리 서구의 20대 논의는 관점이 더 다채롭고 내용 또한 풍성하며, 미래를 책임질 이 세대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셸 쉐르는, 이들이야말로 한 손에 또 하나의 뇌(스마트폰에 대한 은유)를 들고 있는 세대로 두 개의 뇌를 얼마나 멋지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금 20대론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젠더 갈등의 증폭과 소위 ‘이대남의 보수화’가 자리하고 있다. 20대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우려는 더 일찍 시작됐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2013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출판하면서 민족을 향한 충정보다 개인의 주머니 사정을 더 신경 쓰고, 학벌주의의 폐해에 분노하기보다 서열화된 대학 순위를 적극 수용하는가 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날로 먹으려 하는’ 공정성 침해라 항의하는 이들 20대야말로 개념도 없고 의식도 없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냐고 일갈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20대 자신은 스스로를 보수로 범주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고령층의 보수화 성향과 확실히 선을 긋는다. 이들은 지지 정당 자체가 없는 무당파(無黨派), 아니면 특정 이념에 충성하거나 발목 잡히지 않는 탈이념파(脫理念派)로 자리매김되는 것을 선호한다.
분명 기성세대와 결을 달리하고 있는 20대는 집단 내부의 계층 격차와 함께 이질성이 매우 큰 세대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즐겨 듣는 음악 장르도 다양하고, 즐겨 보는 영화 취향 또한 다양한 데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입장 또한 다채로워 20대를 하나로 묶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분위기 탓에 분명 불안과 혼돈을 느끼기도 하지만 20대 특유의 도전 정신과 희망을 잃지 않은 세대였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요 기성세대의 권위로부터 가능한 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동시에 부모 세대의 관습이나 관행을 전격 거부하진 못하는 조심스러운 세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대 생애주기 과업 중 스트레스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취업 준비가 95.9%, 다음은 첫 직장 생활이 84.3%로 뒤를 이었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79.2%로, 첫 성관계(56.6%)나 배우자 선택(54.8%)보다 확연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다.
20대를 향한 인정과 존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20대에 덧씌워진 근거 없는 고정관념과 부정적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20대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요, 계산적인 데다 오프라인 소통을 불편해하고 온라인 소통을 선호하리라는 선입견이 퍼져 있다. 그러나 20대 디지털 네이티브 입장에서는 평생 고용이 사라진 시대 자기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20대도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이루어지면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 오프라인 소통 선호도가 75%로 온라인 소통 25%보다 높았다는 사실 등이 사회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들 20대를 향해 “미성숙하다”거나 “책임감이 없다”거나 “정말 답이 없다”고 비난하기보다는 탐색의 시기에 과도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방황의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도록 따스한 격려와 진정성 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 일이다. 젠더 갈등 및 이대남의 보수화를 향한 우려 또한 이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고 이들의 기대와 요구를 충실히 수용해나갈 때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서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할 것이 분명하다.
함인희<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에머리대학교 박사. '앨리 혹실드', '인간행위와 사회구조'(저서),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 '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공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