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일상의 탈출을 위한 상징적 제의

글로벌이코노믹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일상의 탈출을 위한 상징적 제의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대한무용협회(조남규 상명대 교수) 주최, 서울무용제 조직위원회 주관의 제46회 서울무용제 경연작 C2Dance(예술감독 최상철)의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가 11월 28일(금) 오후 8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경연대상부문 대상과 안무상을 수상하며 동시대적 현상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작품의 우수성을 알렸다. 킹스미스의 워킹 패드가 두드러지게 시선을 끌면서 시작된 공연은 움직임의 확장으로 사유의 공간을 넓혔다.

인간의 삶이란 컨베이어 벨트 위의 짐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쉼 없이 돌아가며 때론 짐들은 튀어 오르기도 하고, 엇나게 돌아가기도 하지만 주체 동력은 어긋남을 용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인간은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이상은 언제나 타인의 기준으로 설계된다. '모델하우스'는 완벽 이미지 속의 결핍, 욕망, 반복적 선택을 드러낸다. 그 안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자신인지 알지 못한 채 서로를 복제하고 닮아간다.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위한 몸은 자신을 소비하고, 감정은 기능으로 변한다. 빛과 질서,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남겨진 것은 무명의 움직임,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모델하우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허상 위에 세워져 있음을 대면하게 한다. 인간은 완벽해지려 애쓰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의 그림자만 남긴다. 허물어진 이상 위로 해는 다시 떠오르고 완벽을 꿈꾸던 인간은 조용히 다시 빛을 맞이한다. 허상일지라도, 다시 빛을 향해 걷는다.

조용한 공기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 정돈된 미소, 완벽히 꾸며진 자세, 안정된 숨. 그 질서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다. 일상은 흠 없이 매끈하고 빛은 늘 같은 각도로 스며들지만, 그 안을 채운 온기는 어딘가 비어 있다. 익숙함이 과도하게 유지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완벽함이 연출된 장면임을 눈치챈다. '모델하우스'의 시간은 우리가 믿어온 완벽함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그 미세한 틈이 벌어지는 지점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몸은 표현 수단이 아니라 욕망이 구조화되는 현장이다. 눈부신 욕망의 내부, 문 뒤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흉내 내며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소유하려는 몸의 훈련이 반복된다. 동작이 정확해질수록 감정은 멀어지고, 감각은 자극으로 환원되며 관계는 거래로 치환된다. 그 매끄러운 동선이 잠시 흔들리는 순간, 균형을 잃은 호흡과 미세한 떨림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통제 이전의 신체다. “완벽해 보이는 삶”이라는 허상 속에서 몸은 가장 은밀한 고백을 시작한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안무가는 현대 도시의 신체가 어떻게 시스템 속에 길드는지를 밀도 높게 포착한다. 차갑고 단단한 표면 위, 모든 감정은 기능처럼 구조화되고 움직임은 효율을 향해 정제된다. 질서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된 동작이 남긴 피로와 말해지지 않은 침묵이 층위처럼 쌓여 있다.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로 번지는 잿빛의 균열은 붕괴라기보다 미세한 저항의 징후이며, 그 위로 떠오르는 새로운 아침 해는 갱신이 아닌 또 다른 반복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모델하우스'는 사회적 규범과 권력 구조를 해부하는 비평적 장치이며, 억압된 진실을 굴절시켜 드러내는 프리즘에 가깝다. 시각적으로 철저히 정돈된 무대 위에서 신체는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편되는 과정으로 존재하며, 그 움직임은 사회가 규정한 ‘역할’과 ‘공간’이 어떻게 몸에 내면화되는지를 드러낸다. 신체의 반복과 변주는 개인적 행위조차 제도와 규범의 산물임을 환기하며, 자기 몸 또한 그 구조 안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때 안무는 표현의 차원을 넘어, 규율과 반복을 통해 구성된 신체의 정치성을 가시화하는 수행적 언어로 작동한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미세하게 어긋나는 리듬과 호흡은 통제된 질서가 결코 완결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징후로 기능한다. 작품은 명확한 해답이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관객을 해석의 장으로 호출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영원해 보이는 질서 속에서, 인간의 몸은 필연적으로 균열을 발생시키는 존재가 아닌가.”

'모델하우스'에서 발견되는 상징성을 찾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우선 워킹패드ᄂᆖᆫ ‘설계된 삶의 레일’의 상징,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삶의 궤도, 정해진 속도에 맞춰 달려야만 하는 체계를 상징한다. 멈추지 않는 시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삶, 나를 소모하는 일상의 반복, 균일한 움직임만 허용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완벽한 삶’의 뒤편에서 인간이 어떻게 시스템 안에서 복제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톰브라운 회색 정장은 ‘표준화된 개인’의 상징이다. 첫 장면의 정장은 완벽함·질서·성공·이미지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규격화를 표현한다. 모두 똑같이 보이는 외형, 감정·취향이 지워진 개인, 비교와 평가로 재단되는 존재를 상징한다. 이 의상은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동질성을 강요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신체를 하나의 코드화된 기호로 환원시킨다. 시작부터 인간을 하나의 ‘제도화된 몸’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각적 신호이자 관객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
김정훈(안무가)이미지 확대보기
김정훈(안무가)

복제되는 움직임은 ‘동일함의 폭력’을 드러낸다, 워킹 패드 위에서 모두 같은 속도, 같은 방향,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신체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에 순응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이는 맞춰야 하는 기준, 반복적 수행, 자신의 욕망보다 외부의 기대가 우선되는 상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동기화된 움직임은 차이를 제거하고 통제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논리를 신체 차원에서 가시화한다. 개성과 욕망이 지워지고, ‘통일된 이미지’로 통합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컬러풀 군무는 ‘정체성의 회복과 충돌’을 상징한다. 2·3장의 다채로운 의상은 억눌렸던 감정과 각자의 정체성이 되살아나는 지점을 가시화한다. 서로 다른 색은 서로 다른 삶의 결을 드러내며, 균일함에서 벗어난 인간의 복원과 동시에 혼란, 충돌, 자유의 에너지를 품는다. 이 장면에서 무대는 조화로운 통합이 아니라 차이가 공존하며 긴장을 만들어내는 장으로 전환된다. 시스템 밖으로 나온 인간의 생생한 움직임이자, 가장 인간다운 순간을 연출해 낸다.

집단 대 개인은 ‘이상과 현실의 틈새’을 상징한다. 신체들은 하나가 되었다가 분리되며, 집단과 개인의 경계는 끊임없이 재조정된다. 집단의 규율과 개인의 공허, 완벽을 요구하는 집단의 압력 속에서 희미해지는 개인의 존재가 대비된다. 이 반복적인 결합과 해체의 구조는 소속에 대한 욕망과 소외의 공포가 동시에 작동하는 인간의 이중적 상태를 드러낸다. ‘완벽한 모델하우스’라는 허상 아래 가려진 인간의 불안과 결핍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징성을 지닌다.

김정훈 안무의 '모델하우스'는 워킹 패드 이용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현대인이 추구하는 꿈들의 허무를 드러내고 개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선한 본성을 채굴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안무를 뒷받침하는 최종원·사채인·김동현·권기현·하연수·정다빈·유태준·조준서·김준태·이은영·유지민·강다은·주한 유의 현란한 무용 기교와 두드러진 음악과 조명의 힘은 작품의 완성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김정훈의 본격 능력 발휘는 지금부터 가동을 선언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영상=잔나비와묘한계책 송우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