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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angSang & Vision 국제무용페스티벌, 시적 수사로 구성된 SM현대무용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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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angSang & Vision 국제무용페스티벌, 시적 수사로 구성된 SM현대무용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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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안무의 '잔상'
12월 9일(화) 19:30 백암아트홀(강남구 삼성동)에서 국제무용예술센터 주최·주관, 상명대·한국미래춤협회·대한무용협회·한국현대무용협회·전문무용수지원센터 후원의 2025 SangSang & Vision 국제무용페스티벌이 펼쳐졌다. 공연은 신인데뷔전(1팀 1명): 최유나, 안무가전(8팀 10명의 안무가): 이인숙, 진 상, 황박함·호가혜, 이성민, 리양쯔·당순령, 전부희, 장인지, 황희상이 자신들의 상상력, 구성력, 연기력으로 절제된 시적 사유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 국제무용페스티벌은 중국 팀과의 교류를 중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 무용수가 출연한 작품은 4작품(이인숙 안무의 '그리움에 대하여', 진 상 안무의 '오래된 우산, 새로운 이야기', 황박함·호가혜 안무의 'T & F', 리양쯔·당순령 안무의 'Freedom') 이며, 중국 안무가의 작품은 3작품('오래된 우산, 새로운 이야기', 'T & F', 'Freedom')이다. 전통과 추억, 우정과 인간 본질에 대한 움직임의 전개는 중국의 전통에서 현재에 이른다.

한국 SM현대무용단은 중국팀과 숫자적 균형을 맞추며 열연한 이성민 안무의 'One Way', 전부희 안무의 'Quiet Resistance'(조용한 저항), 장인지 안무의 '주의'(注意), 황희상 안무의 '빛의 윤'은 개성미 넘치는 현대무용의 빛나는 결을 다듬어 내었다. 한국 현댜무용 작품들은 차별화되는 구성과 안무력으로 진리를 찾아가며 자신의 주장을 담고,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유쾌한 상상과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순환을 탐구한다.

신인데뷔전에 안무·출연한 최유나는 '잔상'으로 이 작품은 사라진 불꽃 이후에도 감각과 기억 속에 지속되는 잔상을 무용적 언어로 치밀하게 번역해낸다. 핑거라이트와 음악은 소품과 배경을 넘어, 시청각적 잔광을 통해 잔상이 지닌 각인과 확장의 힘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기·승·전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잔상이 생성되고 지속되며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드러내어, 사라짐이 곧 끝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결말을 비워둔 선택은 관객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며, 잔상이 현재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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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안무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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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안무의 '그리움에 대하여'
진 상 안무의 '오래된 우산, 새로운 이야기'이미지 확대보기
진 상 안무의 '오래된 우산, 새로운 이야기'
황박함·호가혜 공동안무의 'T & F'이미지 확대보기
황박함·호가혜 공동안무의 'T &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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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안무의 'One Way'

'그리움에 대하여'(안무: 이인숙, 청주대 예술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고향과 어머니라는 원초적 기억을 매개로, 인류 보편의 감정을 세 편의 춤(‘임수’, ‘꿈속의 어머니’, ‘고향’)으로 풀어낸 정서적 옴니버스이다. 각 장면은 중국 각 민족무의 고유한 움직임과 중국 강남의 전통 민속 음악과 내몽고 지역의 민족 음악 어법을 통해 다른 색의 그리움을 드러내면서도, 하나의 공명으로 수렴된다. 긴 부채와 서예적 동작, 몽고 스타일의 역동성, 회고적 서정은 그리움이 개인의 기억을 넘어 문화적 층위를 횡단한다. 안무가는 그리움을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지속의 힘으로 제시한다. 작품은 상실과 회귀의 정서를 넘어, 이질적 문화와 시대를 잇는 보편적 감정의 언어로서 춤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오래된 우산, 새로운 이야기'(안무: 진 상, 2025 IDAA 무용콩쿠르 일반부 금상 수상자)는 유지 우산을 시간의 저장고로 삼아 과거와 현재의 정서를 한 무대 위에서 교차시키는 감각적인 작품이다. 고전무용의 의경(意境)과 현대무용의 신체적 긴장감을 대비시키면서도 융합해 가는 구성은 전통이 현대 감각으로 재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전 구간 관대주(关大洲)의 ‘모상화개(陌上花开)’가 사용된다. 우산을 펴고, 두드리고, 던지는 행위는 인간관계의 거리와 도시의 소음을 구체적인 신체 언어로 환원하며 관객의 일상적 감각을 자극한다. 진 상의 안무는 오래된 물건 하나로 시대를 초월한 감정의 보편성을 길어 올리며, 향수와 소외가 공존하는 오늘의 풍경을 섬세하게 비춘다.

'T & F'(안무: 황박함·호가혜-상명대 무용학과 석사과정)는 MBTI의 Thinking(T)과 Feeling(F)을 주제로 사고 성향을 선택과 공존의 문제로 확장해 무대 위에 설득력 있게 옮겨 놓은 작품이다. 사각 의자와 요가볼이라는 상징적 오브제는 이성과 감성의 구조와 유동성을 명확히 대비시키며, 두 무용수의 유사하면서도 다른 움직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직선과 곡선, 안정과 흔들림이 반복적으로 충돌하고 교차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이 갈등 속에서도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체감하게 한다. 두 사람은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다르게 생각하는 몸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체적 합의로 제시한다.

'One Way'(안무: 이성민, SM현대현대무용단 상임이사)는 신앙적 서사를 내장감각에서 출발한 움직임으로 풀어내며, 삶의 방향성을 신체 내부의 각성으로 제시한다. 즉흥성과 정적의 공백을 적극 활용한 안무는 몸이 먼저 반응하고 사유가 뒤따르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좁은 길’을 통과하는 내면의 결단을 생생히 드러낸다. 음악의 층위 변화에 따라 혼돈에서 성찰, 그리고 기도에 이르는 흐름은 서정과 긴장을 균형 있게 엮어 관객의 정서적 동행을 이끈다. 이성민의 'One Way'는 절제된 밀도로 빛과 자유의 메시지를 각인시키며, 무대 이후에도 스스로의 길을 성찰하게 만드는 울림을 남긴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해답을 조용하지만 강렬히 보여준다.

'Freedom'(안무: 리양쯔-2025 IDAA 국제무용대회 금상 수상자, 당순령-상명대 무용학과 박사과정)은 형태 없는 자유를 ‘문’이라는 명확한 경계 장치로 가시화하며, 억압과 해방의 전이를 신체 언어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현대무용의 긴장된 몸과 교주(胶州) 양거(秧歌)의 개방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움직임이 충돌하고 스며드는 과정은, 사회적 규율과 본질적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적 투쟁을 드러낸다. 문을 넘는 순간 형성되는 동작과 음악의 급격한 전환은 시간과 정체성이 뒤집히는 해방의 쾌감을 극적으로 증폭시킨다. 리양쯔와 당순령의 안무는 자유를 추상적 개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몸이 회복하는 생명력 그 자체로 체감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Quiet Resistance'(조용한 저항, 안무: 전부희 상명대 외래강사)는 외침과 과시 대신 침묵과 지속을 선택함으로써, 저항이 반드시 소음 속에서만 성립하는 것은 아님을 사유하게 한다. 고요한 정지에서 출발해 중심의 미세한 파동이 확장되는 움직임은 큰 동작보다는 호흡, 무게 이동, 절제된 움직임을 통해 축적된 에너지와 흔들림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내는 내적 균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절제된 호흡과 무게 이동 위에 얹힌 조용한 저항의 정서를 담은 가사 No Surprises의 무심한 서정은 무감각한 사회 속 개인의 고독한 태도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킨다. 전부희의 안무는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 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밀도로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리양쯔·당순령 공동안무의 'Freedom'이미지 확대보기
리양쯔·당순령 공동안무의 'Freedom'
전부희 안무의 'Quiet Resistance(조용한 저항)'이미지 확대보기
전부희 안무의 'Quiet Resistance(조용한 저항)'
장인지 안무의 '주의(注意)'이미지 확대보기
장인지 안무의 '주의(注意)'
황희상 안무의 '빛의 윤'이미지 확대보기
황희상 안무의 '빛의 윤'

'주의'(注意, 안무: 장인지 외래강사)는 외부의 감시와 내부의 자기검열이 교차하는 지점을 신체적 긴장으로 밀도 있게 포착하며, ‘경계’라는 개념을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한다. 라바콘과 발레 튜튜, 슬립 원피스로 이어지는 오브제와 의상의 전환은 보호와 억압, 형식과 내면 사이의 진폭을 명확한 이미지로 구축한다. 사이렌과 타악의 압박에서 바흐의 서정으로 이동하는 음악 구조는 소음의 세계를 통과해 자기 중심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견인하며, 관객 또한 내면의 경계와 자기검열을 체감하게 만든다. 장인지의 안무는 주의가 통제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을 보살피는 감각일 수 있음을 몸으로 탐색하며, 검열 너머의 자유 가능성을 조용히 제시한다.

'빛의 윤'(안무: 황희상 상명대 초빙교수)은 순환(輪)과 윤기(潤)를 아우르는 개념을 통해, 빛이 소멸이 아닌 끊임없는 재생의 상태로 존재함을 사유하게 만든다. 눈을 가린 채 시작되는 느리고 정적인 움직임은 빛을 인지하지 못한 인간의 원초적 방황에서 해탈에 이르는 내적 여정을 절제된 밀도로 드러낸다. 바흐의 반복 속 변주는 해탈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부각한다. 음악의 전환과 더불어 반사판의 확장은 빛 그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식의 깊이를 결정함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안무자는 음악과 소품이 맞물리는 무대구성을 연출한다. 황희상의 안무는 반복과 변주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빛의 감각을 몸에 스며들게 하며, 순환 속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고요하게 비춘다.

2025 SangSang & Vision 국제무용페스티벌은 한국과 중국 무용의 다채로운 교류를 중심으로, 신진과 기성 안무가들의 상상력과 기술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이었다. 중국 팀과의 협업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개인과 문화적 기억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시적이고 정서적인 공명을 선사했고, SM현대무용단의 작품들은 내면적 성찰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현대무용적 언어로 빛났다. 또한 이번 페스티벌은 음악, 조명, 오브제와 같은 무대적 요소가 안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감각과 사유가 동시에 확장되는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했다.

최유나의 '잔상'은 지속되는 감각과 기억을, 이인숙과 진 상의 작품은 그리움과 시대를 초월한 감정을 세묘하였다. 황박함·호가혜의 'T & F', 이성민의 'One Way', 리양쯔·당순령의 'Freedom', 전부희의 'Quiet Resistance', 장인지의 '주의', 황희상의 '빛의 윤' 등의 한국 작품들은 각기 다른 주제와 움직임을 통해 사고, 신념, 자유, 저항, 자기검열, 순환이라는 인간적 사유를 고유한 신체 언어로 펼쳤다. 이번 페스티벌은 음악, 소품, 조명과 결합한 정교한 안무적 구성을 통해 감각과 사유의 순환 속에서 존재와 자유, 재생의 가능성을 체감하게 한 뜻깊은 무대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한 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