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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벼락거지와 캉티용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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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벼락거지와 캉티용 효과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의 아버지 하면 으레 영국의 애덤 스미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스미스는 1776년에 '국부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의 원제목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이를 줄여 흔히 '국부론'으로 부른다. '국부론'은 무엇이 국가의 부를 형성하는가를 집중 다루고 있다. 노동의 분업과 생산성 그리고 자유 시장 등을 소재로 국부의 원천을 규명하고 있다. 자유 경쟁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분업의 발전이 생산력을 상승시켜 모든 사람의 복지를 증대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주된 주장이었다.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도 여기서 처음 언급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국부론'을 근대 경제학의 지평을 연 최초의 경제학 책으로 알아왔다.

여기에 반전이 생겼다.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먼저 씌어진 경제학 책이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캉티용의 '일반 상업론'이다. 프랑스어판 원제목은 Essai sur la Nature du Commerce en Général(상업의 일반적 본질에 관한 에세이)이다. 출간 연도는 1730년께다.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약 40년 먼저 나온 경제학 책이다. 저자는 리샤르 캉티용(Richard Cantillon)이다.

캉티용은 1680년께 아일랜드의 케리주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프랑스로 건너가 은행가·상인으로 성공했다. 1711년께 스페인에서 영국 군대의 급양 총감인 제임스 브리지스 밑에서 일하며 금융과 회계 기술을 익혔다. 1710년대 후반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Mississippi Bubble) 사건이 터졌을 때 존 로(John Law)의 투기적 계획의 허점을 간파하고 선제 투자·매도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1734년 영국 런던 자택에서 강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방화·살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저서 '일반 상업론'은 사후인 1755년에 출판됐다. 저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상태에서 유고 형태로 발간된 것이다. 그 바람에 책을 쓰게 된 동기나 선행 연구 그리고 참고 문헌 등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의 학문적 가치를 뒤늦게 발견한 이가 바로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다. 제번스는 근대 경제학의 과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한계효용 이론(Marginal Utility Theory)을 처음 주창한 인물로 유명하다. 한계효용 이론은 재화의 가치가 투입된 노동량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마지막 한 단위의 만족도'(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은 고전파 경제학의 리카도 노동가치설을 넘어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도 신고전파 경제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기초가 되었다. 기술 발전으로 자원 이용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해당 자원의 총소비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1835년 출생인 제번스는 캉티용이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우연히 '일반 상업론'을 접했다. 제번스는 이 책에서 경제적인 많은 영감과 교훈을 얻었다. 제번스의 많은 이론들이 바로 캉티용의 '일반 상업론'에서 연유한 셈이다. 제번스는 캉티용의 '일반 상업론'을 "경제학의 요람"이라고 평가했다. 캉티용의 '일반 상업론'은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먼저 나왔다. 후대 경제학자에게 미친 영향도 결코 작지 않다.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라면 캉티용은 큰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쯤으로 추앙받아야 한다는 것이 제번스의 주장이다.

캉티용의 저서 '일반 상업론'에 나오는 이른바 캉티용 효과는 오늘날 화폐금융 이론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캉티용 효과(Cantillon Effect)란 화폐 공급이 늘어날 때 돈이 유입되는 순서에 따라 경제주체별로 부의 재분배가 불평등하게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새로 풀린 통화(돈)가 경제 전반에 균등하게 퍼지지 않고, 돈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혜택이 돌아간다는 통화 증발의 차등적 확산 원리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그 돈은 먼저 금융기관이나 자산가들에게 흘러간다. 이들은 저금리로 빌린 돈으로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선점한다. 결과적으로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기 전에 자산 가격이 먼저 폭등한다. 돈이 실물경제 하단, 즉 임금노동자에게까지 도달했을 때는 이미 물가와 자산 가격이 모두 오른 상태이므로, 화폐가치 하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이 입게 된다는 이론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신조어 '벼락거지'는 캉티용 효과의 경제학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벼락거지란 본인의 소득은 그대로인데,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빈곤해진 무주택자나 자산 미보유자를 일컫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의 유동성 공급, 즉 양적 완화 탓에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집, 주식 그리고 비트코인 같은 자산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가난해진 계층을 흔히 벼락거지라고 부른다. 캉티용 효과 가설에 따르면 유동성이 크게 늘어날 때 그 돈을 먼저 장악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될 수 있다. 화폐 발행의 수혜를 입은 상위 계층은 자산을 불리지만 그 화폐와 거리가 먼 저소득 노동자들은 자산 인플레이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결국은 벼락거지로 전락한다. 캉티용 효과는 화폐 팽창이 어떻게 부의 불평등을 합법적으로 심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이론이다. 벼락거지는 그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박탈감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에서 많은 돈이 풀리고 있다.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가 각자도생의 무한 경쟁에 나서면서 통화량을 마구 늘리고 있다. 늘어나는 국가부채도 통화량을 더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38조5000억 달러 선을 넘었다. 이런 속도라면 40조 달러 돌파도 멀지 않았다. 40조 달러라는 돈은 달러당 1500원의 환율을 적용하면 우리돈으로 무려 6경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 728조 원(2026년 본예산 기준)의 43.6배에 이른다. 미국 뿐 아니라 프랑스·영국·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국가부채 폭증 속에 경쟁하듯 돈을 풀고 있다.

통화량의 폭발 증가는 모든 금융 상품과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에브리싱 랠리'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뉴욕 주식시장에서 나스닥·다우지수가 치솟고, 코스닥·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는 기저에는 유동성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금값·은값의 폭등도 예사롭지 않다. 문제는 이 유동성 잔치가 언젠가는 인플레이션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벼락거지가 양산될 수 있다. 캉티용은 이미 사망했지만 캉티용 효과는 여전히 살아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