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스승 국수호의 춤은 동작보다 정신이 먼저 선다. 움직임은 결과이고, 그 이전에 몸을 세우는 태도와 내면의 집중이 중심이 된다. 그래서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안에는 강한 긴장과 깊이가 존재한다. 그 안에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 존재한다. 고요 속에서 움직임이 발생하는 구조로서 큰 동작이나 과장된 표현보다 멈춤에 가까운 상태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움직임이 핵심이다. 미세한 떨림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결을 드러내며, 춤을 하나의 사유로 완성시킨다.
아울러 절제 속의 강렬함이 있어 과시적 표현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에너지를 만든다. 격정은 밖으로 터지지 않고 안에서 응축되어 존재한다. 국수호 춤의 또 다른 특징은 장단과 몸의 일체감이다.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장단이 되는 구조로서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장단이 형성된다. 이때 춤은 더 이상 외부 리듬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시간과 호흡을 생성하는 하나의 생명처럼 자율적으로 흐른다.
이번 공연은 재현을 너머 몸에 각인된 전통의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풀어내는 상급 무대이다. 노해진은 비급(祕笈)을 다루듯 중량감 있게 차별화되는 내공을 쌓아왔다. ‘입춤’(立舞), ‘남도살풀이’, ‘아가’(雅歌)를 개인 공연의 얼굴로 삼고, 무동(舞童, 정지욱), 하슬라 정백(河瑟羅 精魄, 이동하), 화랭이춤(唱夫舞, 유재성)이 공연의 조화를 이룬다. 각 작품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며, 노해진의 깊이 있는 춤사위가 만들어 내는 전통의 현재적 울림을 밀도 있게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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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노해진은 “새로움은 근본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춤을 오늘의 숨으로 다시 꺼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맥(脈)-몸에 새겨진 춤'은 전통춤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금의 몸으로 전통을 다시 세우는 무대가 된다. 노해진의 개인 공연은 차별화된 전통춤의 품격을 소지한다. 오랜 수련과 치열한 사유에서 비롯된 예술적 깊이가 무대 전반에 스며들어, 관객에게 전통춤의 새로운 가치와 미학을 선명하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입춤’(立舞, 국수호류, 출연: 노해진, 초연 1986년): 춤 입문자들이 첫발을 떼는 춤이다. 전통춤의 기본으로서 손사위, 발디딤새, 가락을 잡는 멋, 연륜 속에 쌓인 숨의 호흡이 춤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굿거리, 자진모리, 굿거리로 장단이 변하며 춤을 춘다. 특별한 형식이나 꾸밈이 없이 서로의 꾸밈을 넣어 전통춤의 새것이 만들어지며, 부채를 들거나 소고를 넣기도 한다. 국수호류 ‘입춤’은 1964년 국수호가 전라도 명무 정형인 선생에게 배운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무동’(舞童, 출연: 정지욱): ‘무동’은 김홍도 그림 속의 춤추는 아이가 동인(動因)이다. 그 춤추는 아이를 2012년 무대에 처음 춤으로 올리면서 작명되었다. 삼현육각 타령장단에 맞춰 무동은 살아나와 무대를 가르고 자진모리장단에 온 사방에 홍과 멋을 떨어뜨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동살푸리에 흥을 실어낸 작품은 그 춤을 추는 사람이 온몸으로 무대에 홍을 퍼지른다. 진지함과 기량이 어우러진 몸짓은 전통의 흥과 생동하는 에너지를 한껏 체감하게 한다.
‘남도 살풀이’(출연: 노해진): 정중동의 내면적 몸 다스림이 특징을 이루며 시나위 가락에 맞춰 호흡을 꺾고, 다듬고, 머금으며 춤 집을 만들어 낸다. 입소리인 구음이 곁들여져 인간 심연의 바다에 물결이 일 듯, 악가무(樂歌舞) 일체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긴 명주 수건에 손놀림은 한국 춤의 백치미를 형상화 시킨다. ‘남도살풀이’는 국수호가 고등학교 때부터 익혔던 정형인 선생의 춤가락과 서울의 박금술 선생의 춤 동작 사사에서 완성된‘살풀이춤’의 본이다.
‘하슬라 정백’(河瑟羅 精魄, 출연: 이동하): 하슬라는 옛 고구려 강릉 땅, 하늘과 바다가 이어지고, 순수하고 정제된 사람들, 동해의 파도와 태백산의 산등성을 넘나든 삶의 결이 스며 있다. 짊어지고, 이고 삶을 이어온 영혼들의 정한이 쌓인 풍경이다. 혼백을 부르는 정선아리랑에 맞추어, 하슬라인들의 삶이 스미고 순환의 여정을 보허자 춤으로 엮어낸다. 그 움직임은 바람과 물결의 호흡을 닮아, 인간과 자연, 시간과 기억이 하나로 화해하는 서정적 장면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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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아가’(雅歌, 출연: 노해진): 인간의 헤어짐과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김죽파류의 가야금에 독특한 선율을 따라 춤의 언어적 표현과 흥의 깊이를 잘 나타낸 작품이다. 한국적인 선과 우아함, 발 디딤새가 강조된 섬세한 춤으로 무용가의 높은 감성 기교, 가야금과 몸의 선율이 일치되어야 하는 작품으로 안무 되었고,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바탕으로 춤을 지었다. 절제된 몸짓 속에 스며든 깊은 정서는 관객의 내면을 잔잔히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화랭이 춤’(唱夫舞, 출연: 유재성): 경기 도당굿을 총괄하는 남자 무당을 화랭이라 한다. 생로병사의 순환을 축원, 축수하면서 청신, 가래조, 축귀에 이르는 의례의 흐름을 엮어내며 신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다. 국태민안 기원의 큰굿에서부터 마을의 안녕과 복덕을 비는 축원굿까지 도당굿은 호방한 남성적 기운으로 일관된다. 굿판의 정기와 리듬을 바탕으로 국수호가 빚어낸 이 춤은 화랭이의 다층적 존재성과 장단의 결을 미학적으로 응축한 무대로 승화된다.
‘바라 승무’(박금슬류, 출연: 노해진): 박금슬 선생이 1944년 백담사 오세암 천월스님으로부터 사사받아 추던 것을 1967년 국수호가 전수받아 전승하고 있다. 박금슬의 ‘바라승무’는 승무를 추고 난 후 법고를 연주하는 대신 바라를 들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영산회상으로 시작하는 음악적 구성 또한 춤 의식의 격을 한층 드높이는 미학적 요소이다. 바라의 울림과 장중한 선율은 수행적 깊이를 더하며, 춤과 의식이 하나로 합일되는 숭고한 경지를 드러낸다.
노해진의 춤은 한국 전통무용의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 깊은 호흡 위에 현대적 해석을 얹은 감정 중심의 한국무용을 추구한다. 노해진은 한을 풀어내는 서정적인 표현이나 수행적이고 절제된 미학을 표현하거나 전통 어법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해석에서도 선의 아름다움 추구와 전통의 감성을 몸에 담아 표현한다. '맥(脈)-몸에 새겨진 춤'은 음악과 함께 쌓이는 감정의 흐름으로 노해진의 춤의 ‘느림의 미학’을 새롭게 새우는 시발점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