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안정 ‘겉보기 여유’ 속 정유 구조·수입 편중이 최대 변수로 부상
이미지 확대보기관련 업계와 복수의 전문가들은 6일 현재 재 비축유 규모만 놓고 보면 안정권에 들어와 있지만, 실제 수급 대응 능력은 원유의 종류, 정유 설비 구조, 수입선 편중 등 복합적인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보다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0일분 비축, 의미와 한계…실제 활용 가능성은 별개
한국석유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6년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총 석유 비축량은 정부·민간을 합쳐 200일 이상 사용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이미지 확대보기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이론적 소비 기준’에 따른 것으로, 방출 절차, 저장 위치, 수송 인프라 등의 제약으로 인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물량과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축유는 원유 종류별로 구성돼 있으며, 국내 정유사 설비와의 적합성에 따라 실제 투입 가능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정유 산업은 중질유 처리 중심으로 고도화된 구조를 갖고 있어, 비축된 원유가 설비에 최적화되지 않을 경우 정제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축량이 많다고 해서 공급 충격을 완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IEA 공조 가능성 높아…과거와 같은 ‘국제 공동 방출’ 시나리오
과거 사례를 보면 한국의 비축유 방출은 대부분 국제 공조 체계 속에서 이뤄졌다. 2011년 리비아 사태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IEA 회원국들과 함께 공동 방출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중동 정세 역시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단독 대응보다는 IEA 중심의 공동 방출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정부도 이에 대비해 비축유 방출 계획을 세분화하고, 필요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하도록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
다만 국제 공조 방식은 각국의 이해관계와 시장 상황에 따라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 있어, 국내 수급 안정성을 전적으로 외부 협력에 의존하는 구조 역시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된다.
여전히 높은 중동 의존도…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해 왔지만, 2026년 현재도 중동 의존도는 여전히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수입 비중이 아니라, 국내 정유 산업 구조가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탈황 설비, 잔사유 분해 시설 등 고도화 설비는 중질유 처리에 강점을 가지지만, 미국이나 브라질 등에서 생산되는 경질유는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활용에 일정한 제약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비중동 원유 도입을 확대하더라도 실제 정유 공정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적 병목’이 발생한다. 최근 중동 국가로부터 긴급 도입 물량 확보가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산업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변화는 설비가 좌우…정유 산업 전환 요구 커져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를 수입선 확대가 아니라 ‘정유 시스템 전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정유 산업은 중질유 및 고황 원유 처리에 최적화된 고도화 설비 구조를 갖고 있어 수입 다변화 정책은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설비를 전면 교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경질유 처리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탈탄소 흐름과 함께 경질유와 저황 원유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유 산업의 유연성 확보는 중장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단기 대응은 비축유, 장기 해법은 구조 개편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과 긴급 도입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 역시 해외 생산 원유 확보, 공동 비축 확대, 수입선 다변화 등을 병행하고 있지만, 정유 설비 개선과 산업 구조 전환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중동 리스크가 일시적 변수가 아닌 상시적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아가는 가운데, 한국 에너지 정책은 이제 ‘비축량 확대’에서 ‘활용 가능성 극대화’로 초점을 옮겨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