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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안무의 '귀향',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근원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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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안무의 '귀향',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근원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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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안무의 '귀향'
4월 23일(목)부터 26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김종덕)의 무용극 '귀향'(歸鄉)이 네 차례 공연되었다. '귀향'은 사적인 기억의 결을 공적 정서의 지평으로 확장한다. 안무가는 서사를 몸의 호흡과 정서의 진폭으로 ‘침전’시킨다. 바람과 나무와 소리가 가미되며 사이로 느린 빛이 흐르면 무대는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감각의 장(場)이 된다. ‘귀향’에 이르는 길은 인간 정서의 원형인 어머니라는 근원에 대한 미학적 사유로 이끈다.

'귀향'의 동인(動因)은 “새벽녘의 정갈한 흙을 밟으며 엎드려 아프게 살아 있는 풀잎”을 기억하는 김성옥의 시 ‘귀향’에서 출발한다. 봄의 기억을 타고 무용극 '귀향'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절한 기억과 동경, 인생의 화양연화를 세묘한다. 시간의 끝에 선 어머니(장현수)와 아들(이석준)은 숨결과 걸음으로 마주한다. 장윤나(젊은 날의 초상) 같은 국립무용단 무용수들 특유의 호흡과 시적 움직임과 협업 예술가들의 담백한 상상력으로 작품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귀향'은 실향한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헌무이다. 무대는 대나무밭의 현자(賢者)처럼 뜻은 깊고, 춤은 들꽃의 만개처럼 화사하다. 과도한 치장이나 지나친 과장 없이 고전적 정서를 담아내기에 흡족하다. 작품은 3장 구조를 취하지만, 그 구분은 선형적 시간의 흐름이라기보다 중첩된 기억의 층위에 가깝다. 모자(母子)라는 익숙한 서사는 삶과 이별, 상처와 그리움을 지나 회복과 위로에 닿는다. 킨 여정의 끝에 누구라도 '나의 이야기'가 되어 자신의 기억과 만난다.

1장 : ‘저무는 꽃잎’은 소멸의 정조를 통해 생의 전일성을 역설한다. 만개와 낙화가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장면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은 정지와 흐름 사이를 부유하며 ‘정중동’의 미학을 구현한다. 느리게 번지는 팔의 곡선, 바람에 실린 듯한 보법은 한국 춤 고유의 호흡을 환기하며, 삶의 유한성을 과장 없이 응시하게 한다. 꽃잎이 흩날리는 이미지는 존재가 시간 속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꽃잎은 바람을 타고 내리다 사라지고 마지막 꽃잎 하나만 남는다.
2장 ‘귀향’은 모자 관계를 축으로 감정의 밀도를 심화시킨다. 안무는 신체적 무게와 정서적 중력을 동시에 견인한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업고 요양원으로 향하는 아들의 동작은 죄책, 사랑, 회한을 교차한다. 주역의 동선은 외연적 서사를 구축하고, 군무는 내면의 파동을 시각화한다. 동일한 리듬 안에서 분화되는 움직임의 층위는 ‘나’의 서사가 ‘우리’의 정서로 이행되는 과정을 제시한다. 몰려오는 일상에 쓰러진 아들을 위로하듯 어미의 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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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꿈이런가’에서 시간은 더욱 유동화된다. 회상과 망각, 현재와 과거가 교직 된다. 첫사랑의 듀엣에서 발레 동작과 현대무용 어휘가 도입된다. 이질적 요소들이 수용되고, 그리움이 재배열되며, 기억의 파편들이 감각적 연속체로 봉합된다. 어미는 사랑하고 성실했던 인간으로 시간의 심연을 통과해 온 존재로 재현된다. 인생을 정리하는 어미는 삶을 돌아본다. 못다 한 첫사랑의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어미는 자신을 다독이고, 남겨진 아들을 그리워한다.

김종덕의 안무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원리는 ‘밀고 당김’의 역학이다. 강과 약,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리듬은 한국 장단의 구조를 연상시키며, 직선적 추진이 아닌 곡선적 순환을 지향한다. 이러한 운동성은 단순한 형식적 특징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몸은 외부로 발산하기보다 내면을 감싸안고, 감정은 폭발하기보다 서서히 스며든다. 이 절제된 에너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소비’하게 하기보다, ‘체류’하게 만든다.

'귀향'의 미학을 지탱하는 무대구성은 중요한 축이다.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청록의 프레임과 공중 조형물은 시간의 층위이다. 그 위에 얹히는 빛과 영상, 오브제들은 기억의 파편을 시각적으로 조직한다. 장독대와 꽃잎, 잔향처럼 남는 조명의 궤적은 한국적 정서를 과잉 없이 환기하며, 관객의 감각을 서서히 잠식한다. 음악은 전통 리듬을 기반으로 현대적 사운드가 입혀진다. 특정 장면에서는 음악은 정서의 여백을 확장하고, 춤과 음악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무용수들의 연기력은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고양한다. 장현수(어머니)는 치매 노인의 불안한 내면을 섬세하게 형상화하고, 기억의 붕괴를 신체적 떨림과 공허한 시선으로 가시화한다. 이석준(아들)은 역동적인 신체성과 내면의 균열을 병치시키며, 동시대적 인물의 심상을 입체적으로 구축한다. 장윤나(젊은 날의 초상)는 탁월한 기량으로 완성도 높은 표현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기의 농축된 층위 위에 군무가 중첩되며, 무대는 거대한 정서적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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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김종덕은 한국 춤의 원리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맥락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춤의 본질을 우주의 기(氣)로 파악한다. 그는 유연한 곡선으로 포용하는 움직임으로 신체 언어를 구축한다. ‘춘향전’의 ‘사랑가’ 동작은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변주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과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전통과 현재를 잇는 유동적 미학의 장을 형성한다.그는 “한국 춤의 원리와 정서를 현재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동시대 예술로 존립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힌다.

시간성을 획득한 무대, 한국적 미감이 응집된 총체적 공간은 시간의 층위로 작동한다. 청동빛 프레임은 과거의 기억을 반영하는 거울처럼 자리하고, 공중에 부유한 벽체는 현실과 분리된 시간의 결을 형성한다. 비워진 하부 공간은 서술되지 않은 정서와 언어화되지 않은 시간을 내포한다. 그 위로 꽃잎과 장독대, 빛의 흔적이 유영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직조해 낸다. 이 모든 장면은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순간 속에서 감각의 심연을 환기하는 시적 공간이 된다.

'귀향'은 ‘돌아감’에 관한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자각, 그런데도 되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충동에 대한 성찰이다. 작품이 끝난 뒤 무대 위에 남는 것은 특정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각자의 기억 속에 잠재해 있던 어떤 장면들이다. 이때 관객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미 자신의 기억을 통과해 온 또 하나의 ‘귀향’을 경험한 주체로 서게 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 제공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