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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AI 판단력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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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AI 판단력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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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다른 애들은 다 쓰는데, 우리 애만 안 쓰면 뒤처지는 거 아닐까"

이 문장을 한 번이라도 떠올린 적 있는 부모라면, 아이의 AI(인공지능) 사용을 허용할 지 말 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육의 판단이 아니라 불안감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안이 판단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결정은 아이가 아닌 주변을 향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아이에게도 조용히 전달된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베커프리드먼경제연구소(Becker Friedman Institute for Economics)가 2025년 발표한 워킹 페이퍼 〈AI 도입의 사회적 역학(Social Dynamics of AI Adoption)〉은 미국·캐나다·영국의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또래 아이들의 AI 사용 비율이 20%에서 80%로 높아지자 부모가 자녀를 위해 프리미엄 AI 구독에 비용을 내겠다는 의향이 60% 이상 높아졌다.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으려는 사회의 압박이 결정을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연구팀이 확인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연구팀은 한 집단의 부모에게는 AI의 단기 학습 효과를 강조하는 정보를, 다른 집단에는 AI가 학생의 수리적 추론 능력을 장기으로는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정보까지 추가로 알려줬다. 위험 정보를 접한 집단에서 AI에 대한 우려는 의미 있게 높아졌다. 그러나 AI 구독 수요는 달라지지 않았다.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뻗는다. 연구팀은 이것을 '쥐 달리기(Rat Race)'역학이라고 불렀다. 아이의 장기 성장보다는 지금 당장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집단적 불안이 개별 부모의 판단을 압도한다는 뜻이다.

이 불안은 가정 안에서 부모와 아이 사이를 벌려 놓는다. 이탈리아 팔레르모대학교 심리교육과학·인간운동학부(Department of Psychology, Educational Science and Human Movement, University ofPalermo) 연구팀이 2025년 한 연구를 통해 13세에서 17세 청소년 170명과 그 부모 175명을 함께 분석한 결과, 청소년은 부모에 비해 AI의 데이터 보안·정보 정확성·조언 능력에 대한 신뢰가 통계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부모는 AI를 경계하고, 아이는 AI를 훨씬 더 믿는 편이다. 같은 가정 안에서 AI를 향한 두 개의 극단이 공존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세대 간 신뢰 격차가 청소년을 상당한 취약성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보다 안전하게 탐색하려면, 부모와의 정서의 안전 기반이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강조한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능동의 중재와 정서의 지지가 함께 이뤄질 때, 디지털 소양이 더욱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무조건 차단도, 불안에 밀린 허용도, 무관심한 방치도 결국 아이를 AI 앞에 혼자 세운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세 가지 방식의 공통점은 하나이다. 부모의 판단이 빠져 있다는 것. 불안은 판단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아이는 부모의 결정 안에서 판단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불안이 내린 결정에는 그 흔적이 없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부모에게 '결정 이유 말하기'를 제안한다. AI 사용을 허용하든 제한하든, 그 순간 결정의 이유를 아이에게 짧게라도 밝히는 것이다. "이 과제는 네가 먼저 스스로 방향을 잡아봐야 하는 것이라 AI는 나중에 쓰자"고 하거나, "이 부분은 개념 확인이 목적이니 AI에게 물어봐도 돼"처럼. 허용의 내용이 아니라 허용의 근거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는 그 말에서AI가 무엇인 지가 아니라, AI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를 배운다. 불안에서 나온 결정과 생각에서 나온 결정은 아이에게 전달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부모가 AI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확신이 없으면 없다고 말하는 것도 판단이다. "나도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보려고"라는 한 마디가, 침묵 속의 허용이나 감정의 차단보다 훨씬 강한 교육이 된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AI를 대하는 가장 정직한 태도로 새겨진다.

불안은 전염된다. 그러나 생각하는 태도도 전염된다. 아이는 부모가 AI를 두려워하는 지, 맹신하는 지, 아니면 따져 보는 지를 말이 아니라 부모의 결정 방식에서 읽는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를 AI 앞에 무방비로 세운다면, 부모의 판단은 아이에게 AI 앞에서 어떻게 설 것인지를 가르친다. AI 시대에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은 완벽한 규칙이 아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