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위판장은 비고 방어 어장은 북상…기후변화가 다시 짜는 한국 수산업 지도
이미지 확대보기바다는 같은 자리에 있지만 물고기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9일 국립수산과학원 장기 관측자료와 해양수산부, NOAA(미국 해양대기청), FAO(유엔식량농업기구) 자료, 국제 학술지 연구를 토대로 한반도 해역에서 진행 중인 생태계 대이동의 경로를 추적했다.
사라진 어종의 행방과 새롭게 나타난 종들의 확산, 그리고 바다의 미래를 6회에 걸쳐 기록한다.
강원도 동해안 위판장에는 예전만큼 오징어가 쌓이지 않는다.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던 채낚기 어선의 불빛은 줄었고, 오징어 덕장과 가공업체가 기대던 계절의 리듬도 달라졌다.
오징어가 줄자 항구의 시간이 바뀌었다
동해안 어촌에서 오징어는 하나의 어종을 넘어선 생활 기반이었다.
여름과 가을에는 채낚기 어선이 출항했고, 항구 주변 음식점과 숙박업, 가공공장, 냉동창고가 함께 움직였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해에는 위판장과 시장 골목에 사람과 돈이 몰렸다. 어획 부진이 이어지면 항구의 밤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통계는 현장의 체감을 뒷받침한다. 2024년 전국 연근해 오징어 생산량은 1만3568톤으로 전년보다 42% 줄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04년 21만3000톤과 비교하면 약 20만톤이 사라진 셈이다. 2025년에는 생산량이 3만1006톤으로 전년보다 128.5% 늘었지만, 최근 5년 평균 3만8278톤에는 여전히 18.9% 모자랐다.
오징어 감소는 어민 소득만 흔들지 않는다. 채낚기 어선이 줄면 항구의 얼음 판매량과 유류 사용량이 줄고, 운송 물량과 가공 일감도 감소한다. 건조 오징어와 반건조 오징어를 팔던 지역 상권도 영향을 받는다.
이미지 확대보기국립수산과학원은 오징어 자원 변동의 배경으로 수온 변화와 어장 형성 변화, 자원량 감소, 주변국 조업 압력 등을 함께 살핀다.
오징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분류되지만 수온이 계속 높아지면 어군이 분산되거나 더 북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수온, 먹이, 산란장, 해류, 조업 압력이 함께 맞아야 어장이 형성된다.
명태의 빈자리, 수입 수산물이 채웠다
명태는 한국인의 식탁을 오랫동안 지켜온 생선이었다. 동태탕과 북어국, 황태, 코다리, 명란까지 명태는 가정식과 외식업, 가공산업을 함께 떠받쳤다.
그러나 한국 연근해 명태 어획량은 사실상 통계적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국내 소비는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등 북태평양 북부 해역에서 생산된 수입 명태에 의존하고 있다.
명태의 사례는 기후변화가 식량안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드러낸다.
이미지 확대보기소비는 그대로인데 국내 자원이 사라지면 공급망은 해외 어장과 국제 가격, 환율, 물류 여건에 더 민감해진다. 특정 국가의 어획 상황이나 국제 규제 변화가 국내 식탁 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양어업 통계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2025년 원양어업 생산량은 38만3000톤으로 전년보다 20.2% 감소했다.
주요 원양 품목 가운데 명태는 2만9199톤, 오징어류는 5만2122톤으로 집계됐다. 해양수산부는 대중성 어종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제수산기구 보존조치 이행과 과학적 기여 확대, 해외어장 개발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복처럼 보이는 숫자, 커지는 기후 리스크
2025년 국내 수산물 생산량은 393만4971톤으로 전년보다 8.7% 늘었다. 생산금액도 10조2366억원으로 1.4% 증가했다. 연근해어업 생산량은 97만7648톤으로 전년보다 16.3% 증가했고, 생산금액은 4조5656억원으로 9.4% 늘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회복세다.
그러나 2025년의 증가는 장기 회복이라기보다 전년의 극심한 부진에 따른 반등 성격이 강하다. 2024년 연근해 생산량은 84만1000톤으로 전년보다 11.6% 줄어 1971년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2025년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온과 동해 남부 고등어 어장 형성으로 생산량이 늘었다.
오징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2025년 오징어 생산량은 3만1006톤으로 전년보다 128.5% 늘었지만, 비교 대상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던 2024년이다.
2025년 생산량은 최근 5년 평균 3만8278톤에도 미치지 못했고, 2004년 21만3000톤과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이다.
2025년 연근해 주요 어종별로는 고등어가 20만2554톤으로 전년보다 62.1% 증가했고, 멸치는 15만9톤으로 25.0% 늘었다. 반면 전갱이류는 2만489톤으로 49.0% 감소했고, 삼치류는 3만4767톤으로 8.6% 줄었다. 같은 바다 안에서도 어종별 흐름은 엇갈렸다.
잡는 어업이 출렁이는 동안 양식업의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2025년 해면양식업 생산량은 253만톤으로 전년보다 12%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양식업의 성장이 기후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미역과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수온 변화에 민감하고, 종자 이식기 고수온이 길어지면 어린 개체가 제대로 활착하지 못해 대규모 고사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전남 완도·고흥 일대에서는 미역 양식장 고사 피해가 보고되면서 고수온과 이상 해양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양식 중인 미역 상당수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고, 현장에서는 종자 단계의 미역이 높은 수온 탓에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미지 확대보기생산량 통계만 보면 해면양식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수온 변화와 해양환경 변동성이 생산 안정성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어민들에게 더 큰 문제는 예측 가능성이다. 과거에는 계절이 오면 어느 어장에서 어떤 어종이 잡힐지 경험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고수온과 저수온, 해양열파, 태풍, 적조, 해류 변화가 겹치면서 조업 판단이 더 어려워졌다. 어장이 멀어지면 연료비가 늘고, 조업일수가 줄면 고정비 부담도 커진다.
양식장 역시 종자 이식 시기와 수온 관리, 질병 대응, 폐사 위험을 함께 떠안아야 한다.
FAO는 2024년 세계 수산양식 현황 보고서에서 2022년 세계 수산·양식 생산량이 2억2320만톤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양식 생산이 처음으로 어로어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세계 수산물 공급의 중심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수산업도 같은 흐름 속에서 기후 리스크를 함께 떠안고 있다.
뜨거운 바다는 어촌의 비용을 키운다
국립수산과학원 정선해양조사 관측 결과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58년 동안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약 1.6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표층수온 상승폭은 0.76℃였다. 한국 해역의 상승 속도가 전 지구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른 셈이다. 2024년 한국 해역 연평균 표층수온은 18.74℃로 57년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수온은 어촌의 비용을 직접 밀어 올린다. 어선어업에서는 어장이 멀어질수록 유류비와 조업 시간이 늘어난다. 양식업에서는 산소 공급 장치, 차광막, 수류 개선 장비, 질병 관리 비용이 추가된다. 폐사가 발생하면 종자 구입비와 사료비, 인건비가 한꺼번에 손실로 바뀐다.
2026년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 영향 브리핑북은 연근해 어업생산량 감소와 조업 안정성 저하를 주요 변화로 제시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 과도한 어획, 조업 해역 축소, 어업 인력 감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주요 어종의 어획량과 어장 형성 시기, 공간 분포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고수온 특보는 역대 최장기간 유지된 것으로 정리됐다.
어촌의 고령화와 기후변화가 겹쳤다
바다가 달라지는 속도보다 어촌이 적응하는 속도는 느리다. 한국 어촌은 이미 인구 감소와 고령화, 선원 부족, 어선 노후화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어종 변화와 어장 이동이 겹치면서 부담은 커진다.
젊은 인력이 부족한 어촌에서는 새로운 어종을 찾아 어구를 바꾸고, 유통망을 새로 만들고, 가공 방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방어와 삼치, 참다랑어 같은 어종이 늘어도 모든 지역이 곧바로 수혜를 얻지는 못한다. 횟감 시장, 냉장·냉동 물류, 위판 체계, 소비자 선호, 가공 기술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강원도 겨울 바다를 대표하던 명태의 빈자리는 아직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주문진과 속초, 고성의 오징어 산업도 과거의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제주와 남해, 동해 남부 일부 지역은 방어와 고등어, 삼치, 참다랑어 같은 어종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식탁도 바다를 따라 이동한다
소비자의 식탁도 바뀌고 있다. 명태와 오징어는 가격 변동이 커졌고, 방어와 참다랑어, 삼치, 전갱이 같은 난류성 어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겨울철 방어는 이미 전국적인 횟감 시장의 대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망은 계절성 어종을 빠르게 상품화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그러나 새로운 어종의 증가는 곧바로 식량안보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획량이 늘어난 어종이 있어도 자원 관리가 뒤따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바다가 달라질 때 어획 강도까지 함께 조절하지 못하면 자원 회복의 기회는 빠르게 사라진다.
국제사회도 같은 문제를 보고 있다.
FAO와 WMO는 2026년 공동보고서에서 극한 고온이 농업과 축산, 수산, 산림에 동시에 압력을 가하며 식량안보와 생계에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산업의 기후 적응은 환경정책의 영역을 넘어 식량정책과 지역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이동하고 있다.
바뀐 바다에 맞춘 수산정책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는 2024년 12월 수산·양식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을 수립했고, 2025년에는 전국 연안 지자체를 6개 권역으로 나눠 현장 중심 후속대책을 논의했다.
전남, 제주, 충남·전북, 강원·경북·울산, 경기·인천, 부산·경남 권역별로 어업 현장의 의견을 모아 신규사업과 정책 과제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정책의 방향은 장기 관측과 예측 강화, 어종 변화에 맞춘 유통·가공 기반 구축, 양식업 기후 대응 능력 확대, 자원 관리 강화로 모아진다. 어민이 출항 전에 수온과 어장 위치, 고수온 위험을 더 정확히 확인하고, 새로 늘어나는 어종을 지역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고수온에 강한 품종 개발과 스마트양식, 순환여과식 양식, 재해보험 개선도 함께 요구된다.
이미지 확대보기2025년 자료에서 고등어 생산량은 크게 늘었다. 오징어도 역대 최저였던 2024년보다 회복했다.
그러나 전갱이와 삼치, 청어, 붉은대게는 줄었다. 같은 바다 안에서도 어종별 움직임은 다르다. 수산업은 이제 평균값보다 변동성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한반도 바다의 변화는 이미 어촌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명태가 사라진 자리는 수입 수산물이 채웠고, 오징어가 줄어든 항구는 새로운 어종을 찾고 있다. 방어와 고등어가 늘어난 지역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고수온에 시달리는 양식장은 생존을 위한 기술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바다의 온도 변화는 어종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위판장의 매출과 어선의 출항일수, 양식장의 폐사율, 가공공장의 일감, 소비자의 식탁 가격으로 이어진다. 과학자들이 관측한 수온 1℃의 변화는 어촌에서는 생계의 변화로 나타난다.
앞으로 한국 수산업의 경쟁력은 더 많이 잡는 능력보다 더 빨리 읽고, 더 정확히 예측하고, 더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바다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 어촌도 과거의 방식에 머물 수 없다.
한반도 바다는 이미 새로운 생산 지도를 그리고 있다. 명태와 오징어가 떠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방어와 참다랑어가 올라온 바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수온 시대의 양식업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가 다음 과제로 남아 있다.
다음 회에서는 2050년 한국 바다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해양생태계 전망을 바탕으로 한반도 바다의 미래를 추적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