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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과제를 쓰는 시대…학점은 아직 학생을 증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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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과제를 쓰는 시대…학점은 아직 학생을 증명하나

조재원 UNIST 교수, 필명 ‘강하단’으로 신간 《구글이 꿈꾸는 대학》 출간
학점·시험 대신 질문과 실패 기록하는 블록체인 기반 ‘학교 토큰’ 대안 제시
주입식 ‘학교 시즌 1’ 종말… AI를 동료 삼아 새 방정식 짜는 ‘시즌 2’ 열어야
AI 시대 대학 평가 변화를 형상화한 생성형 이미지. 대학 교육은 정답 암기보다 질문 설계와 정보 검증, 협업 과정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넓어지고 있다. 자료=AI생성이미지 확대보기
AI 시대 대학 평가 변화를 형상화한 생성형 이미지. 대학 교육은 정답 암기보다 질문 설계와 정보 검증, 협업 과정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넓어지고 있다. 자료=AI생성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리포트 초안을 단 1초 만에 작성하고, 복잡한 코딩 과제를 해결하며, 어려운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까지 막힘없이 제시하는 시대다. 지식의 독점권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시험 점수와 학점이라는 관행적인 자대로 학생을 재단해 온 대학의 해묵은 평가 시스템이 거센 지각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단순히 교과서를 외워 정답을 써내는 능력은 이제 아무런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 학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질문을 던졌는지, AI가 도출한 결괏값의 오류를 어떻게 추적하고 검증했는지, 수많은 실패 끝에 어떤 대안을 설계했는지 등 ‘사고의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숙제가 대학 앞에 떨어졌다.

이 같은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UNIST(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조재원 교수가 과학예술 작가 ‘강하단’이라는 필명으로 신간 《구글이 꿈꾸는 대학: 학교 토큰이 땡땡땡》(23일 출간)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간의 지식을 대신 생산하는 환경에서 학교의 본질적 기능이 ‘정답의 이식’에서 ‘새로운 지식의 생성’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조재원 교수가 과학예술 작가 ‘강하단’이라는 필명으로 펴낸 신간 《구글이 꿈꾸는 대학: 학교 토큰이 땡땡땡》 표지. 사진=UNIST 대외협력팀이미지 확대보기
UNIST(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조재원 교수가 과학예술 작가 ‘강하단’이라는 필명으로 펴낸 신간 《구글이 꿈꾸는 대학: 학교 토큰이 땡땡땡》 표지. 사진=UNIST 대외협력팀


‘학교 시즌 1’의 파산 선고… 대안으로 부상한 ‘학교 시즌 2’와 ‘큰 귀와 눈’


저자는 기후위기, 저출산, 소득 불균형처럼 정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다차원적 난제들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단선적 점수 경쟁과 한 줄 세우기에 매몰된 현재의 교육 체계를 ‘학교 시즌 1’로 규정하며 과감한 결별을 선언한다.

조 교수가 그리는 대안은 학생과 교수, 그리고 AI가 대등한 파트너로서 협업하며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학교 시즌 2’ 생태계다. 여기서 AI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여섯 번째 감각’이자 함께 배우는 동료로 재해석된다.

구분학교 시즌 1 (과거 체제)학교 시즌 2 (미래 체제)
교육 목적기존 정답과 지식의 주입 및 암기현실을 바꿀 새로운 지식과 방정식 창출
평가 방식단판성 시험 결과, 숫자로 환산된 학점질문·토론·실패 과정의 다차원적 기록
핵심 도구교과서, 강의실 표준 교육과정디지털 기록 장치 및 블록체인 기반 토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일회성 시험 성적 대신 학생의 호기심, 토론 과정, 실험적 실패의 궤적을 촘촘히 담아내는 디지털 기록 장치 ‘큰 귀와 눈’이다. 단 한 줄의 학점이 학생의 가능성을 압축해 버린다면, 이 장치는 학생이 지식을 탐구하며 남긴 정교한 흔적을 보존한다.

학점 없는 대학의 실험, ‘학교 토큰’은 새로운 교육 언어가 될까


UNIST(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조재원 교수. 사진=UNIST 대외협력팀 이미지 확대보기
UNIST(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조재원 교수. 사진=UNIST 대외협력팀

책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학교 토큰’이다. 이는 학생이 수행한 질문, 동료와의 협업, 재해석의 가치를 증명하는 새로운 교육적 기호다. 성적표의 숫자를 지우는 대신, 학생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냈는지를 다차원적으로 입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상상은 신선하지만 냉정한 현실적 과제도 안고 있다. 학생의 실패와 질문까지 디지털 데이터로 남기는 방식은 성장의 역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또 다른 형태의 촘촘한 감시망이나 새로운 스펙 장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이나 대학원 등 주류 사회가 학점이라는 편리한 기준 대신 이 '토큰 기록'을 얼마나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래 사회에서 진짜 중요한 역량은 주어진 방정식을 남들보다 빠르게 푸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설명할 ‘새로운 방정식’ 자체를 만드는 일이다. 조 교수는 교육이 계급 상승의 수단이나 성적 압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호기심에 기반한 ‘놀이’가 될 때 진짜 배움이 살아난다고 역설한다.

과학인문학과 환경윤리를 다각도로 연구해 온 조재원 교수의 이번 화두는 단순한 출간 소식을 넘어, 기후변화와 스마트 제조 등 급격한 산업 전환의 압박을 받는 울산과 대한민국 대학 사회 전체를 향한 무거운 질문이다.

AI가 정답을 복제하는 시대, 대학의 진짜 역할은 학생이 무엇을 묻고 어떻게 의심하는지 그 주체적 사고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