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윤혜정 안무의 '무감서기'는 서울굿의 의례적 원형을 상처와 기억을 딛고 다시 삶의 힘을 회복하는 현대적 치유의 춤으로 전환한다. 오방색으로 이어지는 다섯 빛깔의 눈물은 서로 다른 감정의 층위을 하나의 서사적 결로 엮어내며, 무용수의 몸짓은 개인의 내밀한 고통을 공동체적 해방의 몸짓으로 확장된다. 이 작품에서 ‘복’은 초월적 은총이 아니라 스스로 상처를 직면하고 삶을 추슬러가는 과정에서 획득되는 내면의 힘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무감서기'는 서울굿의 신앙적 원리와 공동체 기능을 바탕으로, 굿의 형식을 오늘의 신체언어와 예술적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전통의 현재성을 환기한다. 무당과 신, 인간과 초월적 세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의례적 구조는 춤을 삶의 질서와 감정을 다시 조율하는 집단적 행위로 확장한다. '무감서기'는 굿이 지닌 치유와 화해, 생명 회복의 원리를 동시대의 무대 위에 되살려내며, 전통 의례가 오늘의 삶에도 유효한 정신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복은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설 때 도달하는 자기 회복의 상태로 제시된다. 오방색의 질서와 다섯 빛깔 눈물의 흐름은 고통에서 성찰로, 성찰에서 정화로 나아가는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작품은 굿의 외형적 의례성을 넘어 인간 스스로 삶의 균형을 되찾는 과정을 담아내며, 치유란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과 화해하여 새로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있음을 일깨운다.
움직임은 곡선과 사선, 낙하와 상승이 교차하는 유기적 흐름을 형성한다. 바닥에 누운 신체에서부터 팔을 길게 뻗어 올리는 동작, 몸통을 깊이 굽혔다가 다시 일으키는 동작,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 공간을 가르는 동작까지 신체의 중심축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특히 팔과 다리의 긴 선은 몸의 경계를 넘어 무대 공간까지 확장되며, 천과 의상의 유동성이 그 움직임을 증폭시킨다. 몸은 공간을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확장과 수축의 운동체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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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율동은 개별 무용수의 독립적인 동작보다 반복과 변주, 군무의 중첩을 통해 강하게 드러난다. 푸른 의상의 무용수들이 사선으로 길게 배열되어 동일 동작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면서 시각적인 파동을 만든다. 반면 검은 의상의 군무에서는 낮게 웅크린 신체와 솟구치는 팔, 서로 얽히고 겹치는 신체가 밀집된 군집을 이루어 수축과 팽창의 리듬을 만든다. 개체의 움직임이 집단의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순간, 춤은 개인의 표현을 넘어 하나의 생명체처럼 호흡한다.
이하느리의 음악은 독자적인 시간성과 질감의 소리 구조로서 몸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무대적 질서를 형성한다. 전통 굿의 음악적 어법을 에너지의 축적과 이완, 선율의 결, 호흡의 변화 등을 현대적인 음향 감각으로 치환함으로써 움직임과 소리가 서로의 의미를 갱신하는 유기적 관계를 구축한다. ‘선율’이라는 낯선 요소를 과감하게 끌어들인 시도는 음악과 몸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춤의 리듬이 음악을 밀고 당기며 생동하는 감각체로 완성된다.
김율희의 소리는 인간의 상처와 기억을 어루만지며 낮고 깊은 울림으로 작품의 정서적 심도를 확장한다. 오방색 눈물이라는 상징과 결합한 소리는 위로와 애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외부에서 건네는 치유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호흡처럼 다가온다. 절제된 음성과 여백의 미학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허물고,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해방의 공간을 열어준다.
작품의 리듬감은 정지와 폭발, 느림과 급격한 전환 사이의 대비에서 발생한다. 바닥에 누워 있거나 웅크린 장면에 곧이어 팔을 치켜들거나 몸을 솟구치고 천을 휘날리는 동작이 잠재 에너지를 한순간에 분출시킨다. 결론부에 여러 색의 천이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은 앞서 축적된 움직임의 에너지가 집단적 절정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리듬은 음악적 박자, 신체의 무게, 호흡, 공간의 이동, 의상의 흔들림이 함께 만드는 시청각적 리듬으로 확장된다. 장철수의 영상미디어는 초반 ‘흑의 눈물’을 여는 무녀의 모습을 영화적 미감으로 시작하며 협업하었다.
민천홍의 의상은 오방색과 전통 복식의 조형 원리를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작품의 의례성과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응축한다. 치마와 원피스 중심의 실루엣에 장삼과 철릭, 색동의 층위를 중첩한 구성은 성별과 전통적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며, 인간의 보편적 삶과 생명의 순환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오방색의 색채가 장면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면서 의상은 다섯 눈물의 서사와 복의 의미를 몸 위에 새기는 상징적 조형 언어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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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소품은 굿의 전통적 도구를 기억과 감정을 움직이는 현대적 의례의 매개물로 전환한다. 한지로 만드는 설경(雪景) 특유의 반복과 대칭을 연상시키는 조형, 방울의 울림, 너슬과 지팡이의 움직임은 정체된 감각을 깨우고 무용수의 신체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미세한 진동과 궤적을 만들어낸다. 이들 소품은 몸과 기억, 소리와 공간을 연결하면서 응축된 감정을 풀어내고 새로운 생의 흐름을 열어주는 ‘움직이는 의례의 도구’로 기능한다.
무대의 검은 공간은 무용수의 신체와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푸른색은 깊은 밤과 명상의 정서를, 노랑은 생명과 상승의 에너지를, 붉은색은 열정과 긴장, 흰색은 정화와 초월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강한 역광과 바닥의 반사광은 무용수의 실루엣을 또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내며, 실제 신체와 그림자가 서로 다른 시간성을 갖는 듯한 착시를 만든다. 의상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움직임의 속도와 방향을 시각화하는 또 하나의 신체가 된다.
'무감서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동작의 기교보다 몸과 천, 빛과 색, 개인과 집단이 서로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운동의 미학이다. 낮게 가라앉은 몸이 다시 일어서고, 한 사람의 팔이 여러 사람의 팔로 번지며, 작은 천의 흔들림이 거대한 파동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움직임의 축적은 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체로 변화시키며, 춤은 그 안에서 정지와 움직임, 질서와 혼돈, 개체와 집단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시각적·신체적 시(詩)로 완성된다.
윤혜정은 서울굿의 의례적 원형을 동시대의 신체언어와 공간 구성, 군무의 조형성으로 치환, 새로운 춤 질서를 구축하였다. 곡선과 사선, 낙하와 상승, 수축과 팽창의 움직임을 반복과 변주, 개인과 집단의 교차로 조직하여 ‘눈물’과 ‘복’을 신체의 서사로 전환하여 윤혜정 특유의 구성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무감서기'는 치밀하게 짜인 눈물의 다섯 과정을 지나 치유의 즉흥성이 강조되는 무감을 위한 해방 과정으로 흐르는 서사의 컨템퍼러리적 작품성이 돋보인다.
윤혜정 안무의 '무감서기'는 전통과 현대, 의례와 공연, 개인의 상처와 공동체적 신명을 하나의 호흡으로 엮어내면서, 전통의 정신을 오늘의 몸으로 번역하고, 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조직하는 안무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굿의 원형적 리듬과 현대적 신체언어를 절묘하게 교차시키며, 정형화된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조형적 감각을 선보인다. 윤혜정은 서울굿의 본질을 집단적 신체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안무의 깊이를 드러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