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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AI 시대의 일기, 첫 줄만은 아이가 쓰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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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AI 시대의 일기, 첫 줄만은 아이가 쓰게 하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EBS 연구위원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EBS 연구위원
일기는 하루를 적는 글이지만, 며칠 뒤 그 하루를 떠올리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 단서를 남이 써 주면, 나중에 떠오르는 것은 내가 겪은 하루가 아니라 남이 쓴 문장일 수 있다.

AI가 쓴 요약문이 어른의 기억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 연구가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와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로 구성된 연구팀이 2026년 10월에발표한 논문이다. 연구팀은 먼저 자동차가 보행자를 치는 25초짜리 애니메이션 두 편을 오픈에이아이(OpenAI)의 챗지피티(ChatGPT)와 제미나이(Gemini)에게 다섯 번씩 요약하게 했다. 짧고 단순한 영상인데도 요약문 스무 편 모두에서 틀리거나 빠뜨린 대목이 나왔다. 이어 미국 성인 360명에게 사고 목격자 역할을 맡기고 그 영상을 보여 주었다. 영상 속 교차로에는 '정지'나 '양보' 표지판 가운데 하나가 서 있었다.하루나 이틀 뒤에는 챗지피티가 쓰고 연구팀이 조금 손본 요약문을 읽게 했는데, 다른 내용은 같고 표지판만 영상과 같게 또는 다르게 적혀 있었다. 답할 때는 요약문이 아니라 영상을 떠올리라고 안내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최종 분석 대상 328명 가운데 영상과 같은 표지판을 읽은 사람은 83.6%가 표지판을 맞혔지만, 다른 표지판을 읽은 사람은 44.8%만 맞혔다.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차이다. 그렇다고영상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요약문에 없던 질문인 사고가 낮에 났는지 밤에 났는지는 96.6%가 맞혔다. 요약문을 AI가 썼다고 들었든 사람이 썼다고 들었든, 평소 AI를 얼마나 믿고 자주 쓰든 뚜렷한 차이는찾지 못했다. 연구팀은 AI를 의심하는 사람도 잘못된 요약문에 휘둘릴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이 결과를 풀어 주는 심리학 개념이 있다. 마시아 존슨(Marcia K. Johnson) 등이 1993년에 정리한 '출처감시(source monitoring)'다. 이 틀에 따르면 기억에는 '직접 본 것'이라는 꼬리표가 따로 붙어 있지 않다. 사람은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장면이 얼마나 생생한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같은 단서로 출처를 가늠한다. 이 가늠은 완벽하지 않아서, 본 것과 듣거나 읽은 것이 뒤섞이기도 한다. 필자는 표지판을 잘못 고른참가자들의 머릿속에서 글로 읽은 표지판이 눈으로 본 표지판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본다.
AI가 대신 써 준 일기를 아이가 읽는 순간, 그 일기는 하루가 끝난 뒤 받아 든 요약문이 된다. 이를테면모래놀이만 하고 그네는 타지 않은 날, AI가 일기에 '그네를 탔다'고 적었다고 해 보자. 며칠 뒤 아이가 "나 그네 탔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겪은 기억일까, 읽은 기억일까. 어른도 헷갈리는 일을 아이에게만쉽다고 할 수는 없다.

AI가 정확하게만 써 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AI는 짧은 영상 하나를 정리하면서도 틀린다. 더 큰 어려움은 그 틀린 곳을 누가 찾아내느냐다. 아이의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은 아이밖에없다. 부모도 그 하루를 다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바로잡아야 할 아이가 AI의 글부터 읽으면, 그 기억이먼저 흔들릴 수 있다. 고칠 사람이 고칠 힘부터 잃는 셈이다.

그래서 일기는 '눈 한 줄'로 시작하게 하자. AI의 글을 보기 전에, 오늘 자기 눈으로 본 것 한 줄을 먼저쓰게 하는 것이다. 의심하는 마음만으로 기억을 지키기 어렵다면, 읽는 순서라도 바꿔야 한다. 글이 길어지면 문장 끝에 어디서 온 기억인지 표시하게 하자. 직접 본 것은 '눈', 들은 것은 '귀', 읽은 것은 '글'이다. 부모는 고쳐 주지 말고 “이건 눈이야, 글이야?” 하고 한 번만 물어 주면 된다. 며칠 뒤 다시 펼친 일기에서, 아이가 겪은 하루와 남이 써 준 하루가 갈린다.

아직 글쓰기가 서툰 저학년이라면 말로 해도 된다. 하루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늘 네 눈으로 본 것 하나만 먼저 말해 줄래?" 하고 물어보자. 본 것 하나를 먼저 꺼낸 아이는 하루의 첫 줄을 자기 입으로 정한다.

AI 시대의 일기에서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매끄럽게 썼느냐보다 그 하루의 첫 줄을 누가 썼느냐다. 매끄러운 문장은 이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하루를 본 목격자는 아이 하나뿐이다. 그 증언이 남의 문장에 덮이면, 어른이 대신 되살려 줄 수 없다.
서툰 첫 줄이라도 그것은 그 하루를 겪은 단 한 사람의 증언이다. 아이의 하루는 아이가 첫 줄을 쓸 때비로소 아이의 하루로 남는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