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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학자 마르셀 마르땡 90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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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학자 마르셀 마르땡 90세로 별세

영화평론가 마르셀 마르땡.
영화평론가 마르셀 마르땡.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프랑스 영화 평론가이자 이론가이며,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의 명예회장인 마르셀 마르땡(Marcel Martin)이 지난 주말 90세(1926년 10월 12일~ 2016년 6월 4일)의 나이로 별세, 10일(현지시각) 기념식을 가졌다. 장석용 국제영화비평가연맹 전 회장이 프랑스 영화평론가 협회장을 지낸 장 로이의 소식을 인용해 글로벌이코노믹에 마르셀 마르땡의 히스토리를 알려왔다.

마르셀 마르땡은 1926년 10월 12일 낭시에서 출생했다. 마르셀 마르땡은 예술, 철학, 영화를 공부했으며 곧 전후 프랑스에서 인기있는 교육 운동과 연계된 출판물들이 발전하도록 영화비평으로 돌아섰다. 1956년부터 그는 영화 클럽 연맹이 간행한 월간지 "Cinema, 시네마"에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시네마, Cinema"를 떠난 편집장 중의 한 명이었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일을 한 잡지사 "Ecran, 에끄랑"을 설립했다. "Ecran, 에끄랑"이 사라진 뒤, "시네마, Cinema"가 공산주의적 비평에 지면을 할애했지만 그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La Revue du Cinema, 라 레뷰 뒤 시네마"에 참여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두드러진 호기심은 칸 영화제에서 최초의 병렬 섹션인 "비평가 주간"의 선정위원회에서 최초의 비평가들 중의 한 명으로 만들었다. 그가 PCF(French Communist Party), 프랑스 공산당 회원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는 또한 잡지 "Lettres Francaises", "Regards", "Revolution"에도 기여했다.

1955년 마르땡은 심지어 초창기 기호학자들 보다 앞서 영화언어를 분석하고 이론에 있어서 관심사를 발전시켰다. 그의 저서 "Le Langage cinematographique, 영화언어"(드 세르프 출판사 간)는 러시아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됐다. 그가 쟁취한 명성은 캐나다 몬트리올,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대학, 동경의 세이신(Seishin)으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초대장을 보내올 정도였다.

마르셀 마르땡은 영화 제작자들(감독)의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로버트 플래허티( Robert Flaherty,영화전집에서,1965), 장 비고(Jean Vigo, 같은 전집에서, 1966),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세거스 출판사, 1966)에 관해 글을 썼다. 그는 또한 영화의 풍경에 대한 글을 썼다. : "Le Cinema sovietique par ceux qui l'ont fait"(소련 시네마, 그것을 만든 사람들, 1966),"Le Cinema francais depuis la guerre"(전후의 프랑스 시네마, 1984), "Le Cinema sovietique de Khrouchtvev a Gorbatchev"(흐루쇼프에서 고르바초프까지의 소련 시네마, 1993).

마르셀 마르땡은 영화 형식에 대한 대단한 감수성을 띤 영화평론가였다. 그는 1972년부터 1987까지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의 사무총장이었으며,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4년 임기의 마지막에, 그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