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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참좋은 여행사 헝가리 유람선 참사 한국인 19명 실종 다뉴브 강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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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참좋은 여행사 헝가리 유람선 참사 한국인 19명 실종 다뉴브 강 어떤 곳?

헝가리 유람선 참사가 일어난 다뉴브 강.이미지 확대보기
헝가리 유람선 참사가 일어난 다뉴브 강.
참좋은 여행사 헝가리 유람선 참사가 일어난 다뉴브 강은 유럽을 동쪽으로 흐르는 유럽 제2의 강이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검은 숲(슈바르츠발트)에서 브레크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함으로써 형성된 강이다.

동쪽으로 흘러 독일 남부를 횡단한 뒤 오스트리아 북부와 헝가리를 지나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경계를 거쳐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루마니아 남동부를 가로지르고 흑해로 들어간다.

지류가 300개나 된다.
유럽 중부와 동부의 주요 통로로 특히 19세기 증기선 발명과 함께 그 중요성이 커졌다.

1856년 파리 선언으로 자유통항이 확립됐으며 1919년 베르사유이 조약에 의해 국제 하천이 됐다.

길이 2858km, 유역 넓이가 81만 6951km다.

다뉴브 강의 또 다른 이름은 두나브 Dunav(불가리아), 도나우 Donau(독일), 두너 Duna(헝가리), 두너레아 Dunărea(루마니아), 도나이 Donai(러시아), 옛 이름 다누비우스 Danubius 등이다

헝가리는 유럽 내륙국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다.
서쪽과 북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북쪽으로는 슬로바키아, 북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루마니아, 남쪽으로는 세르비아, 남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의 일원이다.

유럽연합의 정회원국이다. 헝가리의 주민은 거의 대부분 우랄족에 속하는 헝가리인이다.

헝가리의 국토는 헝가리 평원이라 불리는 광대한 평원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에 점령되었다.

헝가리인이 10세기 말 헝가리 왕국을 수립하여, 14세기부터 15세기경에는 주변의 여러 왕국과 동군 연합을 맺고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을 때까지 중앙 유럽의 강국이었다.

헝가리는 15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1526년에 헝가리는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에 패배하여,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였다. 1541년에 부다가 함락되어, 그 결과 동남부와 중부의 3분의 2를 오스만 제국(오스만 제국령 헝가리), 북서부의 3분의 1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에 의하여 분할 지배되어(왕령 헝가리), 양 제국이 충돌하여 만나는 최전선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군사적으로 후퇴하자, 1699년에 체결된 카를로비츠 조약에 따라 헝가리 및 헝가리 국왕령의 크로아티아와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었다.

헝가리는 나치 독일의 후원하에 1930년대 말, 뮌헨 협정과 빈 중재,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 등으로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였으나, 전쟁의 국면은 서서히 열세가 되어, 1944년에는 호르티는 추축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하였으나, 나치 독일군의 판처파우스트 작전, 화살십자당에 의한 쿠데타로 저지되어, 1945년 5월 8일의 패전까지 추축국으로서 전쟁을 치렀다. 1945년 5월 8일의 패전에 의해 소비에트연방에 점령된 헝가리에서는 공산화가 추진되었다. 1946년 2월 1일에 군주제가 폐지되고, 헝가리 왕국은 명실공히 붕괴하였다. 소비에트연방 점령하의 헝가리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 공화국(제2공화국)이 성립했다. 1989년 10월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청산하고 사회자유주의로 선회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35년부터 기원전 9년 사이에 도나우 강 서안 지역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기원전 9년부터 4세기 말엽까지, 로마 제국의 속주 판노니아가 훗날 헝가리의 영토가 되는 지역을 포함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4세기 후반에는 훈족이 침입, 서기 433년에 서로마 제국으로부터 판노니아의 지배를 인정받고, 훈족에 의하여 판노니아를 주요영토(일부는 현재의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포함)로 하는 독립국가가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전승에 의하면[출처 필요] 헝가리는 896년, 현재의 체코 및 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대모라바 왕국(Great Moravia)을 멸망시키고 판노니아 평원(헝가리 분지)를 차지한 마자르인들과 이들을 이끌고 들어온 아르파드에 의해 건국되었다.

마자르 대공 게저의 아들이었던 이슈트반 1세는 헝가리인 내부의 이교도인 부족장과의 싸움에서 이겨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행정 조직을 정비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 오토 2세의 후원으로 헝가리 왕국을 건국(1000년)하고 국왕의 지위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헝가리는 중앙유럽에 위치한 가톨릭 국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102년에는 크로아티아와의 동군연합(同君聯合, 크로아티아-헝가리 동군연합)을 이루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다. 12세기 후반 농업, 공업(수공업), 상업의 발전으로 세속 영주층의 권력이 커졌다. 토커이, 에게르 등의 와인 산지는 이 무렵 개척지에 들어온 프랑스인들에게 의해 확립된 것이다. 벨러 4세의 치하(1235년~70년)이던 1241년~1242년, 몽골의 침입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몽골군이 갑작스럽게 물러간 후 벨러 4세는 방위를 위해 봉건영주에게 석조 성을 쌓는 것을 허용했다. 벨러 4세 자신이 왕궁지 에스테르곰을 대주교에게 양도하고, 부더 남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성벽을 쌓아 왕궁(부다 성)을 짓고 이 곳을 부더라고 명명했다. 그때까지 부더는 오부더(구(舊) 부더)였다. 1301년 언드라시 3세가 사망하자 아르파드 왕가는 단절되었고, 여러 가문들이 헝가리의 왕위를 소유하려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야노시 왕가의 마차시 1세의 절대주의 통치 하(1458년~90년)에서 헝가리는 영토를 확장하고 르네상스 문화를 도입해 영화를 누리는 헝가리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그렇지만 그 영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도자 죄르지의 농민 전쟁(1514년), 중간 귀족과 대 귀족의 항쟁 등이 이어지며 나라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서방으로의 팽창 정책을 추진하던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왕국의 충돌이 불가피하였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러요시 2세가 지휘하던 헝가리 왕국군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쉴레이만 대제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에게 완패하고, 국왕 자신도 전사하였다.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헝가리는 오스만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를 오스만 제국에게 할양하였다. 오스만 제국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진격하여 빈을 공격했고, 1541년에는 부더를 점령했다. 이로써, 헝가리는 약 150년간 합스부르크 왕가가 직접 통치하는 도나우 강 서쪽의 로열 헝가리(합스부르크 헝가리)와 오스만 왕가가 직접 통치하는 부다를 포함한 구 헝가리 왕국의 중앙부인 오스만 헝가리, 오스만 아래서 큰 자치를 누리는 트란실바니아를 통치한 터키 보호령의 헝가리 왕국(1570년부터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3분된다. 헝가리의 황금기는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16세기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나머지 땅마저 지배하게 되어 끝이 났다.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땅을 전부 차지했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