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 생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아일랜드 계통이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었다.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1915~2002)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1917~2010)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래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바이든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으며, 1950년대에 불황이 오자 고향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델라웨어 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바인든은 델라웨어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Archmere Academy)로 진학했다. 재학 중 미식축구를 즐겨했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했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미식축구팀인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Delaware Fightin' Blue Hens)에서 뛰었다.
전공은 정치학으로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아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도 무난한 졸업보다는 표절의혹 등으로 구설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1966년에 로스쿨 재학 중에 네일리어 헌터(Neilia Hunter)를 만나 결혼하고 2남 1녀를 두었다.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천식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J. 보그스(J. Caleb Boggs)였다. 그러자 그의 후계를 두고 공화당에 분열이 생겼고 당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한 번만 더 출마하라고 보그스를 설득했다. 당시 갓 서른에 가까웠던 바이든은 보그스를 이겼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18일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간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네일리어와 장녀인 나오미가 사망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영어 교사 질 제이콥스(Jill Tracy Jacobs, 1951~)와 재혼했다.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민주당에서 중진으로 경력을 쌓았는데 1988년에 목 통증이 심해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바 있다. 뇌동맥류가 파열된 탓에 사경을 헤맸지만 7개월 만에 재활에 성공해 복귀했다.
1988년에는 당시 역대 두 번째로 젊은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젊은 이미지로 베이비 붐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영국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녹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경선을 도중 포기했다.
이후 2008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코소보 문제에 특히 많이 관여했다. 코소보 문제 당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2003년 조지 워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다시 출마하였으나 조기에 탈락할 조짐을 보이자 결국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5위로 참패한 후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중도 성향 백인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버락 오바마는 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바이든은 이를 수락했다. 결국 오바마의 승리와 함께 부통령이 되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탈출을 위해 발의한 미국 경기 회복 및 재투자 법이 상원에서 초당적 협력을 통해 통과할 수 있도록 부통령 겸 상원 의장으로 공화당 의원 3명을 포섭하는 데 성공하면서 중도적 협상가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2012년 오바마는 다시 조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재선에 성공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딕 체니가 실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대통령 업무에 개입한 데 반해 바이든은 참모로서 부통령 역할을 더 강조하는 편이었다. 다만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생각보다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아무래도 상원의원 재임 당시 외교위원회에서의 활동이 길고 또 상대적으로 돋보였고 2007년 회기부터 외교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주요인으로 보인다. 방공식별구역 문제 등으로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된 가운데 방한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미국은 한국에 베팅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렸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아베는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바이든 부통령과 백악관은 일본에 대해 실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과 여론
바이든은 의도치 않게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앞당긴 정치인이었다. 한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자신이 동성결혼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이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반대 여론을 의식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통령 바이든이 찬성 선언을 하는 바람에 오바마도 어쩔 수없이 찬성 선언을 하게 되었다. 당시 재선을 앞두고 있던 오바마는,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기에는 아직 여론이 따라주지 않다고 판단해 동성결혼은 시기상조로 여겼었다. 그래서 동성 결혼 합법화 대신 시민결합과 미군 내부의 ‘Don't ask, don't tell’ 정책 폐지로 재선 공약을 준비하려 했으나 부통령인 바이든이 생방송에서 동성결혼 찬성 의견을 표출하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밀게 되었다. 이 인터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은 바이든 대신 힐러리 클린턴을 부통령 후보로 내새우는 걸 고려하고 캠페인 미팅에 바이든이 잠시 배제되는 등 바이든의 찬성 의견은 바이든 본인의 정치인 생명과 오바마와의 관계를 걸어야 했을 정도로 대담한 결정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버싱(busing)을 반대한 것뿐만 아니라 인종 분리주의자 상원의원들과 협력하면서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 경력 때문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2개의 이슈에 관해서 토론이 이어졌는데 2020년 대선 1차 토론 당시 현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에게 엄청난 공격에 시달린 바가 있다. 이로 인해 아무래도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 받는 것은 어렵지 않나 하는 전망이 있었을 정도다. 바이든은 버싱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아닌 연방정부가 버싱을 실시하는 걸 반대했다고 항변했으나, 해리스는 일부 지방정부가 분리주의자들을 감싸줬기에 연방정부가 나서는 게 맞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이든은 해리스 본인도 검사 시절 흑인 남성들을 편향적으로 처벌했다며 반격했으나 전체적으로 해리스에게 맥을 못추는 모습을 보였으며, 모두가 발언하려고 싸우는 토론에서 유일하게 제한시간 운운하며 본인 말을 끊어버렸다. 발언 도중에 "Anyway, my time is up. I'm sorry,"라며 말을 그만뒀는데, 여기서 "my time is up" 부분은 바이든 반대캠프에서 주요한 공격 포인트로 썼다.
결국 1차 토론 이후 지지율이 10%나 하락하는 등 여러모로 1차 토론회의 최대 패배자가 되었다. 반면 바이든을 공격한 해리스는 샌더스와 워런을 제치고 20%를 기록하며 2등으로 급부상 했다. 하지만 1차 토론회 후 한 달이 지나며 다시 바이든 지지층이 결집하고, 해리스가 1차 토론회에서 보여준 강한 인상만큼 안정적인 정책적 대안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면서 다시 바이든이 압도적인 지지율 1위 자리를 굳혀나갔다. 그리고 2차 토론회에서 해리스가 급격히 무너져 결국 후보 사퇴에 이르게 됐다.
이미지 확대보기3차 토론회에서는 70년대에 발언한 "나는 (백인으로서) 노예제도나 인종 분리 제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때 흑인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얘기하면서 흑인 부모들을 사회복지사들이 도와줘야 한다든가 아이들에게 레코드 플레이어랑 텔레비전을 틀어줘야 한다는 좋게는 동문서답, 나쁘게는 인종차별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발언을 해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바이든이 본인의 주장을 제대로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지, 내용 자체는 사실 크게 문제 삼을 게 없는 발언이었다. 바이든의 발언은 그런 사회적 자산의 부재의 문제를 정부 기관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는 방안을 재시한 것 뿐이었다. 그런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흑인들에겐 '바이든의 토론회에서의 발언은 인종차별적이다!'라는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은 8년간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각종 수모를 당한 버락 오바마의 곁에서 그를 충실하게 보좌한 바이든에게 보내는 흑인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고, 이런 논란 이후로도 안정적인 흑인 지지율을 유지했다. 또 오바마가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8년 초에 바이든은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오바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의견 전달이 명료하고 명석하며 깨끗하고 잘 생긴 첫 주류사회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본인 딴에는 비꼬는 게 아니라 오바마에 대한 순수한 칭찬이랍시고 말한 거고 오바마 본인도 이 발언이 불쾌하지는 않다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오바마 외의 미국 흑인들은 말도 잘 못하고 멍청하고 더럽고 못 생겼다고 생각해 왔다는 본심이 나온 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2015년에 오바마 행정부, 유럽연합, 그리고 국제기구의 대변인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조 바이든은 부패 조사에 미지근한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었던 빅토르 쇼킨(Viktor Shokin)은 반부패 조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실제로도 반부패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영국의 자체 조사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일부 국가들과 IMF와 EBRD 모두 쇼킨을 비판했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부패 조사'를 진행할 새로운 검찰총장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반부패 문제는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유럽의 일부 국가들,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쇼킨의 해임을 권고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도 아니었으며, 우크라이나 교섭단체의 일원이었던 공화당 상원 의원들도 오바마 행정부에 우크라이나 반부패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행하라고 권고한 편지에 서명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그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이사로 있던 현지 에너지 회사 소유주를 수사망에 올려놨는데, 이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하면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을 수사하라며 우크라이나 측에 수사 압력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음으로써 민주당에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여겨지는 바이든의 압력 문제도 검증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는 본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서 "조 바이든은 해당 사안에 대해 '아들과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라고 발뺌했다가 자신이 아들과 에너지회사 경영진과 함께 찍힌 사진이 발견됐다"면서 바이든을 공격했지만, 조사 결과 해당 인물들은 에너지회사 경영진들이 아니었다. 즉,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은 거짓이며, 트럼프는 가짜 뉴스를 트윗한 것이다. 6월 4일 바이든이 차남 헌터 바이든의 로비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크라이나 검찰은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바이든은 고령인 데다가 말실수가 지나치게 잦아 인지능력 감퇴 논란이 있다. 2020년 대선 경선 출마 선언 당시 파티를 열었는데, 바이든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대선 후보라고 말해야 될 것을 상원의원 후보라고 했고 그 외에도 슈퍼 화요일을 슈퍼 목요일이라고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주를 잊어버리며, 아내와 여동생을 순간적으로 헷갈리고, 오바마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등 여러 가지가 지적됐다. 원래부터 실언이 잦고 말실수가 많기로 유명하긴 했지만 2020년 대선 경선 참여를 전후로 너무 심해지지 않으냐는 것이 골자이고 트럼프도 이를 선거전에서 충분히 활용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연설 중에 "가난한 아이들도 백인 아이들만큼 똑똑하고 재능이 있을 수 있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다. 해당 발언은 여러 가지로 비판받았는데, 첫째, 가난함은 인종이 될 수 없는데 백인과 가난함을 비교했다는 점과, 둘째, 은연 중에 백인 외의 인종은 똑똑하지 않다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드러난 점과, 셋째, 푸어 화이트 계층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발언에 대해 사람들은 '가난한 어린이로서, 이 연설을 보고나서 나도 굳은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언젠가, 백인 어린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반응한 바 있다.
또한 앞뒤 맥락 없이 자신의 다리털이 금색이고, 주변의 어린이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더니, 어린이들이 자신의 다리 위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당 발언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자기 다리털 얘기를 왜 하는거냐", "이상하다", "지금 주변의 흑인 아이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거 아니냐", "역겹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로 인해 대놓고 치매(Dementia)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재밌게도, 정적들의 과도하고 크게 부풀려진 정신 건강 공격에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는 분석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조 바이든이 2012년 대선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웃으며 공화당의 기린아였던 폴 라이언을 완벽히 언변으로 제압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고령의 나이를 숨길 수 없는 노쇠함이 눈에 띄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치매’를 운운할 정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결국, 바이든의 노쇠함을 정적들이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면서 유권자들의 기대감치가 현저하게 낮아진 상황에서 버니 샌더스와의 1:1 토론회, 민주당 전당 대회 연설, CNN의 타운홀 등 굵직한 이벤트들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큰 이득을 보았다.
물론 대선 토론 이후로도 말실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 코로나 사망자가 2억 명이라는 발언, 2012년 대선의 경쟁자였던 롬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재차 상원출마 발언을 하여 비난 받았다. 2020년 10월 26일 투표 홍보 공연인 ‘아이 윌 보트(I Will Vote)’에 부인과 화상으로 등장해 트럼프를 조지(조지 부시)라고 말하였다. 바이든이 조지라고 말하자 부인이 바이든에게 “트럼프”라고 속삭이는 장면이 TV 전파를 타기도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조 바이든이 어제 나를 조지라고 불렀다”며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 “가짜뉴스 카르텔은 이를 덮어주느라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스티브 게스트 신속대응국장은 트위터에 바이든의 말실수 영상을 올리며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을 조지 W 부시와 혼동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코로나 감염증을 ‘COVID-19’가 아닌 ‘COVID-9’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이자 전직 공화당 하원 의원이었던 난 헤의워스는 이 같은 바이든의 말실수들이 치매의 징후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말실수 논란 이외에도 2020년 경선 과정에서부터 쉽게 화를 참지 못 하는 성격으로 일반 시민들과 욕설이 포함된 설전을 벌여 자주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2019년 12월에는 일반 시민과 설전을 벌여 "거짓말쟁이" "늙어빠졌다" 등의 말을 하였고, 2020년 2월에는 여대생에게 거짓말 하는 개의 얼굴을 한 망아지 병사(a lying dog-faced pony soldier)라는 표현을 쓴 바도 있다. 2020년 3월에는 디트로이트 자동차 노동자가 "당신은 수정헌법 2조를 끝장내려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걸자, 조 바이든이 이를 부정하면서 설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조 바이든은 "You're full of shit"이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화난 노동자가 "당신은 나를 위해 일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조 바이든은 "난 널 위해 일하지 않아."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게다가 해당 설전 과정에서 AR-15을 AR-14이라고 지칭한다든가, Machine gun과 Semi automatic rifle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당 영상을 본 사람들은 "조 바이든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주요 현안에 대해 어떻게 이토록 무지할 수 있는가", "조 바이든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것 아닌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폭스 뉴스가 이걸 가지고 바이든을 공격하기 위해 노동자 본인을 초청하고 "바이든의 언사가 적절 했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가 한 답변은 "뭐 그 정도는 평소에 저를 비롯해서 제 주변 친구들도 다 하는 수준의 욕설인대요 뭘" 이라는 답변을 해서 얼마안가 이슈는 묻혔다. 물론 바이든의 정치인으로서의 답변이 적절했는가를 따지면 부적절한 말실수이자 언사로 볼 수 있지만, 바이든 본인의 이미지가 "바른 말만 하는 차분한 모범생 이미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정치인이고, 이런 말실수를 하는 것도 이미 수십년 동안 해온 탓인지 별다른 이슈가 되진 않았다.
조 바이든 역시 성추문에 휘말린 적이 있다. 여성의 가슴 부근, 어깨를 문지르거나, 머리 냄새를 킁킁 맡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다. 이로 인해 Creepy Joe Biden(섬뜩한 조 바이든)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15년 2월에는 카터의 국방장관 취임식 도중에 장관의 아내를 취임선서중인 연단 옆으로 불러,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귓속말을 하는 등의 성추행으로 보일법한 부적절한 스킨십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장관이 몇 차례 돌아봐도 신경 쓰지 않고 30초 가까이 이어가던 스킨십은, 장관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서야 그쳤다. 바로 전 달에도 취임선서식 자리에서 상원의원의 딸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퍼부어 논란이 된 걸 보면 본인의 행동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2019년 4월에도 성추행 논란이 터졌다. 각종 공식 석상에서 참석자의 신체를 강하게 만지는 모습들이 여럿 공개됐다. 이후 피해를 밝힌 사람의 수가 더 늘어 7명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조 바이든은 "자신은 상대방 성별과 상관없이 신체접촉을 통해 친근감을 보였을 뿐이다."라는 해명 영상을 올렸다.
그러나 1992년부터 1993년 8월까지 델라웨어 주 연방 상원의원 시절 바이든 의원실에서 일했다고 주장한 타라 리드가 바이든이 자신에게 과거 성폭력을 가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1993년 봄 상원 의원실에서 리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벽에 붙여놓고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는 것. 그녀는 "가방을 주려고 갔더니 갑자기 키스를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갈까?"라고 했다고 했다. "당황한 나머지 바이든 의원을 손으로 밀쳐냈더니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걸 들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하고는 나갔다."고 회고했다. 리드의 친구는 리드로부터 당시 그 같은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고, 리드의 또 다른 친구는 리드가 그 같은 얘기를 수년에 걸쳐 얘기했다고 말했다. 리드는 바이든을 성폭력 혐의로 2020년 4월 9일 워싱턴 DC 경찰에 고소했다. 바이든 측은 이를 '거짓 주장'이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나아가 성추행을 주장한 여성의 전 남편이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실에서 성적 괴롭힘(harassment)을 당했다'는 얘기를 아내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1996년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의혹 제기와 함께 타라 리드의 2017년 바이든의 성폭력 퇴치를 위한 노력(여성폭력법 입법 등)에 대한 찬사 트윗 및 버니 샌더스 지지 경력이 밝혀졌는데, 타라 리드는 "자신의 성폭력 문제 제기는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와 상관이 없다."며 두 사안의 연계를 부정했다. 5월 1일 조 바이든은 MSNBC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타라 리드의 성폭력 피해 주장을 부정했고, 이런 식의 성폭력 케이스엔 투명성이 중요하다며 리드가 상원에 정식적으로 고발했다고 주장하는 성폭력 관련 문제제기를 상원의 기록 보관소에서 찾아 공개해도 좋다고 발표를 했지만 상원 사무처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거부했다. 타라 리드는 폭스뉴스에 출연하겠다고 했다가 협박을 받고 있다며 출연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한편 타라 리드의 1996년 이혼 재판 기록이 그가 바이든의 사무실에서 겪었다고 주장하는 성추행 관련 문제가 언급되는 유일한 공식 문서인데, 당시 타라 리드의 남편이었던 테오도르 드로넨이 제기한 이혼 소송 재판 기록의 일부로 "리드가 바이든 상원의원실과 합의를 하고 나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녀가 여러 차례 바이든 상원의원실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관련한 문제를 얘기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남겼고, 그녀는 여전히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고 민감하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단, 합의 내용이 성추문 관련인지 위에 언급된 수표 사기 기소에 관련한 일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진 않은 상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바이든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5차례나 입영을 연기한 끝에 건강상의 이유로 베트남전 복무 의무를 면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델라웨어주립대 학부생 시절과 시라큐스대학 로스쿨에 재학하던 당시 5차례 입영을 연기한 끝에 25세 때인 1968년 4월 건강검진을 받고 천식 병력을 인정받아 병역 의무를 면제 받았다. 당시 그는 1-Y 등급의 선발징병(Selection Service) 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국가 비상사태에만 군에 동원되는 등급이다. 바이든은 훗날 왜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방탄조끼나 (당시 시위대가 즐겨 입던) 홀치기염색을 한 티셔츠에 열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거리에서 행진했다. 나는 출마했고 29세 나이에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돼 베트남 전쟁 중단에 보탬이 된 한 표가 됐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베트남전에 참여하지도 않고 반대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미국 상원으로 당선되어 전쟁 중단에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자화자찬했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 가족관계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첫 아내였던 네일리어 헌터(1942~1972)는 장녀인 나오미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77년에 결혼한 질 제이콥스는 그가 부통령이 되자 미국의 세컨드 레이디(부통령의 부인)가 되었다.
장남 보 바이든(Joseph Robinette "Beau" Biden III, 1969~2015)은 민주당원으로 델라웨어 주의 주 법무장관이었으며, 계급은 소령이었다. 아버지가 부통령인 당시에도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무공 훈장도 받았다. 이후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까지 역임하여 승승장구 하는 듯하였으나 2015년 5월 30일에 뇌종양 투병 끝에 숨졌다. 조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학벌, 배경, 환경, 인품, 경력, 사생활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앞날이 탄탄해보였지만 안타깝게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차남 헌터 바이든(Robert Hunter Biden, 1970~)은 변호사다. 아내 캐슬린과 결혼하여 세 딸을 두고 있었으나 형 보 바이든의 미망인인 할리 바이든(Hallie Biden)과 형의 사망 5개월 이후부터 열애를 하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조 바이든과 질 제이콥스는 이에 대하여 관계에 찬성한다는 성명을 냈고, 원래 아내 캐슬린과는 2015년 10월부터 별거를 했다. 지극히 개인사이지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할리 바이든과 약 2년간 동거하고 결별한 후 2019년 멜리사 코언과 결혼했다.
장녀 나오미 바이든(Naomi Biden)은 1972년 불과 1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차녀 애슐리 바이든(Ashley Biden, 1981~)은 질 제이콥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직업은 사회복지사이며 비영리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필라델피아의 외과의사인 하워드 크레인(Howard Krein)과 결혼했다.
조 바이든은 매년 12월 18일 전처와 장녀를 추모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안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기 때문에 본인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며 대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성향
바이든은 확고한 총기규제론자다. 권총, 산탄총, 사냥용 총기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허용할 수 있지만 AR-15과 같은 군용 총기 등은 민간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고화력이기에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과거의 발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총기에 대한 지식은 빈약한 듯 보인다. 2020년 3월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노동자와의 논쟁에서는 반자동소총과 자동소총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AR-15을 두고 AR-14이라고 부르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철도 동호인들에겐 다른 의미로 유명하다. 36년 동안 집이 있는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워싱턴 D.C.로 출퇴근하는 동안 암트랙 열차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차를 많이 타다 보니 윌밍턴 역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조 바이든 주니어 역'으로도 불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셀라 익스프레스를 고정으로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미국 전국 고속철도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부통령에 재직 중이었음에도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엉망인 탓에 맏아들 보 바이든이 뇌종양으로 투병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보 바이든은 결국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데다 한화로 무려 수억 원의 치료비가 나와서 집을 팔려고 했으나, 사정을 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내가 돈 빌려줄 테니 팔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바이든과 보 바이든 모두 중간에 민간 분야에서 일한 경력 없이 평생 공직에만 몸담아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Law&Order: SVU에 본인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부통령 임기 막바지인 2016년에 방송된 시즌 18 2화 Making a Rapist인데, 이 에피소드의 앞부분에서 올리비아 벤슨과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이었음. 이 장면은 피해자에게서 채취해놓고도 검사되지 않은 채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전국 20만 건의 강간 키트를 일제히 검사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는 미국 내 성폭력 미해결 사건의 강간 키트에 대한 전수 검사를 요구하는 성폭력 진상규명 운동의 일환으로, 2018년에 올리비아 벤슨 역의 배우 마리스카 하지테이가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한 HBO 다큐멘터리 I Am Evidence에서도 함께 지지자로 등장했다. 정작 바이든 부통령이 출연한 해당 에피소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 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으서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것은 다행히 트럼프 역시 70이 넘은 고령이라는 점 때문에 가려있었던 부분이나 바이든이 고령이기 때문에 재선에 도전하지는 못 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다. 만 78세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게 되며 연임에 성공한다면 만 86세에 퇴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의 연령과 상태를 볼 때 사실상 부통령 예정자 카멀라 해리스가 차기 대권과 실권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존 매케인과는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관계였다. 2018년에 매케인이 사망할 때 남긴 유언 중 하나도 바이든에게 정계에서 계속 남아 있어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가 매케인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매케인이 사망한 후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저는 민주당원이지만 매케인을 좋아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해 30분 동안 추도사를 하며 애도했다.
종교는 가톨릭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나 카메라 앞에서 십자성호를 긋는 모습도 자주 보이지만 낙태 찬성론자이기 때문에 가톨릭 진영에서는 차라리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등 오히려 바이든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도 있다.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바이든의 영성체를 금지한 바 있는데, 바이든은 이를 무릅쓰고 미사에 참례했다가 아예 사제 면전에서 영성체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