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파상적인 경제 제재를 가했으나 러시아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 악화와 식량난으로 인해 제재를 가한 쪽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론이 비등하다. G7은 러시아 제재 역풍론을 잠재우면서 우크라이나전 장기화에 따른 세계 각국의 피로 증후군을 달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면 국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올라 각국의 고물가 사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인도 등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챙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러시아에 경제적 압박을 가해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조기에 끝나도록 하려는 서방의 전략은 일단 실패했다. 그렇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방은 초반 전략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정교하게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포위망을 좁히려 한다.
미국이 주도한 금융 제재로 러시아는 1918년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러시아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갚을 수단이 없어 디폴트 사태를 맞았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이미 국제 채권 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지만, 향후 몇 년 동안 국제 채권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G7이 주도할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러시아의 원유 수출을 허용하되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공급난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을 막으려는 게 이 제재의 취지이다. G7은 앞으로 실무자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지금까지는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경제 고립에 따른 인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루블화는 최근 7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아 주요 화폐 중 최강세를 보인다. 휘발유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수입이 한 달에 200억 달러에 달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1~5월 러시아 경상수지 흑자는 110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배 이상 많다.
세계 밀 수출 1위인 러시아는 올해에도 작황이 좋아 곡물 수출 수입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밀 8700만t을 비롯해 1억3000만t의 곡물을 수확할 것으로 국제 기관이 예측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수출로 벌어들인 돈 8조 루블(약 194조 원)을 경기 부양 자금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Rosstat)은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7.8% 감소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에 따른 기술 고립, 원자재와 부품 수입 난, 에너지 저가 수출, 국제 금융 시장 접근 불가 등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깊은 내상을 입어 장기 제로 또는 마이너스 성장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