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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푸틴의 러시아 ‘전쟁+이민+저출산' 퍼펙트스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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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푸틴의 러시아 ‘전쟁+이민+저출산' 퍼펙트스톰 위기



러시아의 출산율 추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체제가 지난 1991년 붕괴된 것을 계기로 출산율이 급락한 뒤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세계은행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의 출산율 추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체제가 지난 1991년 붕괴된 것을 계기로 출산율이 급락한 뒤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세계은행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소련 시절 시행했던 출산장려 제도, 즉 자녀를 10명까지 낳으면 국가에서 영웅으로 호칭하고 포상하는 ‘모성영웅(Mother Heroine)’ 훈장을 지난 8월 부활시켰다.

모성영웅 훈장이란 다산을 장려하기 위해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 기른 모든 어머니에게 하사하는 훈장. 2차 세계대전 시절 소련과 독일간 전쟁 막바지로 전쟁의 여파로 경제활동 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1944년부터 시행하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중단된 바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조치는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를 부활시키는, 즉 ‘병주고 약주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 가운데 전장에서 러시아 국민이 ‘지금 현재’ 목숨을 잃고 있을뿐 아니라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피하거나 이민하는 국민이 증가하면서 안그래도 빨간불이 켜졌던 저출산 문제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즉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는 ‘퍼펙트스톰’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임여성 급감+세계 최고 수준 사망률+전쟁 동원령


전세계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 러시아가 전세계 10위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유엔이미지 확대보기
전세계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 러시아가 전세계 10위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유엔


러시아의 저출산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1991년 12월 소련을 구성하는 주요 공화국들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정상들이 벨라루스에서 모여 소련 해체를 선언하면서 소련 체제가 공식적으로 붕괴된 뒤부터 러시아의 출산율은 급격히 하락세를 보인 끝에 2000년 즈음 1.2명 아래로 떨어졌다.

그 이후 완만하게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으나 지난 2018년부터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서 2020년 기준 여전히 1.6명에 못미치는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산율이 인구를 현상유지하는데 필요한 출산율의 수준(인구대체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인구는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선진국의 경우 인구대체수준은 2.1명으로 간주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러시아의 인구는 1억4510만명 정도로 연초 대비 50만명 가까이 감소했고 소련이 붕괴된 지난 1991년의 1억4830만명과 비교하면 320만명가량 줄어든 상황이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은 모성영웅 훈장 부활을 비롯한 강도 높은 출산 장려 정책으로 오는 2030년부터 인구 감소 추세를 반전시키겠는 것.

그러나 블룸버그는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러시아 정부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스스로도 이같은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경제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이사코프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가임 여성 인구가 이미 3분의 1이나 감소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동원령까지 내려지면서 러시아가 인구학적으로 대변동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사망률에다 인구 노령화, 고급인재의 유출을 비롯한 이민자 증가 문제까지 겹치면서 인구 대변동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동원령 여파, 내년 출생아 ‘사상 최저’ 전망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하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내린 부분 동원령은 출산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인구학 전문가인 이고리 예프레모프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앞으로 수개월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작전이 계속된다면 러시아의 내년 기준 출생아 수는 120만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이대로 된다면 이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징병이 계속 이뤄지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동원령 이후 러시아 떠난 국민 25만명


러시아 언론매체 노바야 가제타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30만명 규모의 동원령을 지난달 21일(이하 현지시간) 내린 뒤 러시아를 탈출한 국민은 26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물론 전쟁이 동원되는 일을 피하기 위한 것이어서 이 중 대부분은 젊은 나이의 남성이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그 사이 시간이 흐른 점을 감안하면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한 국민은 훨씬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매체는 최근 별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지원한 러시아의 유력 독립언론으로 이 매체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푸틴 정권의 독재에 맞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이래 현재까지 이스라엘로 피신한 유대계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을 통틀어 수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