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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러에 제한적 승리 전략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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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러에 제한적 승리 전략 펼쳐야"

나토 동진·칩스법 시행 통한 완전한 승리 전략 추구하다 러의 우크라 침공 초래
미국, 현실주의에 입각해 중·러에 명분·숨통 열어주면 글로벌 불안정성 초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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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
최근 미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파산에 이어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유동성 위기 악화 등 글로벌 금융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협과 중국의 전제적 자본주의 확산을 통한 패권 도전에 맞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 자본주의 진영의 전략이 완전한 승리(a full victory)에서 제한적 승리(a limited victory)로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오늘날 글로벌 물가 상승이, 미국이 러시아와 접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시켜 러시아를 지정학적으로 원천 봉쇄하기 위한 완전한 승리 전략을 추진한 데서 말미암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東進)에 맞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과 서유럽을 겨냥해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 제한에 나서면서 물가 상승이 시작된 것이다.

나토의 동진이라는 미국의 완전한 승리 전략이 초래한 후폭풍은 엄청나다. 러시아산 원유 공급 감소로 촉발된 물가 상승이 2008~2009년 글로벌 침체 후 양적 완화와 공적 자금 투입 등 미 금융정책의 부작용과 겹쳐 최근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전 세계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우크라이나와 무관한 많은 나라의 기업과 은행이 고금리로 인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패권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반도체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할 목적으로 지난해 만든 뒤 최근 시행 방안을 공개한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도 완전한 승리 전략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이 미국의 기술 봉쇄를 우회해 비메모리 반도체 1위인 TSMC를 보유한 대만 침공에 나설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고조 우려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의 미 해군 고위 장성들에게서 많이 나온다. 중국 해군의 움직임에서 이전보다 높은 긴장감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칩스법의 시행 방안 공개에 이어 관련 지식재산권과 기술의 사용까지 금지하자 중국이 TSMC의 기술 확보가 더 절실해진 만큼 대만 침공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글로벌 불안정성을 고조시키는 완전한 승리 전략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 주류 가치와 규범의 합으로서의 정치 질서(political order)와는 거리가 멀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출범 이후 정치 질서를 양극화 심화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질서(Neoliberal Order)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기초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신뉴딜 질서(‘New’ New Deal Order)로 이행시키는 데 힘써 왔다.
문제는 미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6%를 차지하는 양극화 해소라는 신뉴딜 질서의 중심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안정성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도전과 러시아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외교 전략으로서 완전한 승리를 위한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으로 제한적 승리를 지향하는 현실주의(realism)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차 냉전 때 미국의 대소련 전략이었던 ‘봉쇄(containment)’를 기획한 전략가 조지 F. 케넌은 “완전한 승리의 추구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1차 냉전에서의 승리를 위한 정치 질서로서 시장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적극적인 규제와 재정·금융 정책을 추진하는 뉴딜 질서(New Deal Order)를 채택하고 외교 전략으로서 제한적 승리를 목표로 한 봉쇄를 추구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토의 동진과 칩스법 모두 자유주의 패권적 성격이 강하다. 나토의 동진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해 미국을 압박하려 했던 소련의 전략에 비교될 만큼 미국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원천 봉쇄하기 위한 완전한 승리 전략이라면, 칩스법은 미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뉴딜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중국의 첨단 기술 확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완전한 승리 전략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양극화 해소를 넘어 기회의 균등과 소수 특권층의 혜택 폐지를 위한 신뉴딜 질서로 성공적으로 이행함으로써 이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중·러를 상대로 한 외교 전략과 경제 전략 모두 제한적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글로벌 안보와 경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의 군사·경제 패권 도전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협을 성공적으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칩스법의 시행 방안 공개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재세계화(re-globalization)부터 제한적 승리를 거두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만약 반도체 등 첨단 기술들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기 위해 주요 동맹들이 참여하는 비공식 경제 나토와 각 기술별 소자 연합의 구축을 통한 재세계화가 완전한 승리를 지향할 경우 중국에 의한 글로벌 불안정성이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벌 금융 불안정성의 심화는 미국에 정치 질서와 외교 전략의 일치를 요구한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30년간 미국의 정치 질서는 경제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신자유주의 질서였고, 외교 전략도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군사 개입을 통한 정권 교체도 불사하는 자유주의 패권이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신뉴딜 질서를 지향하는 만큼 외교·경제 전략도 제한적 승리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정치 질서와 외교 전략과 경제 전략을 일치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야 할 퍼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거시경제 안정성과 양극화 해소, 기후변화 등 글로벌 공통 현안들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기여 증대 등을 지향하는 신뉴딜 질서와 절제·균형의 현실주의에 입각해 중·러 두 강국을 상대로 추진할 만한 최고의 제한적 승리 전략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가 지난해 침공 이후 점령한 동부 지방을 비롯한 모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다시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점을 중심으로 평화 협상을 갖는 것이 최고의 제한적 승리 전략이다. 하지만 이 합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조약에 더해 미국과 나토가 참여한 4자 조약으로 이중 보장을 할 때 러시아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 현 글로벌 경제의 규범에 맞는 혁신과 투자를 계속하면 기술 강국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제한적 승리 전략일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뭘 어떻게 해도 미국의 완전한 승리 전략에 따른 봉쇄로 인해 기술 강국이 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면 대만 침공을 넘어선 글로벌 불안정성을 야기할지 모른다.

관건은 재세계화와 관련한 제한적 승리 전략의 방향이다. 그것은 중국이 해킹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의 첨단 기술을 훔치거나 편법에 의한 기술 이전을 받는 식으로 반도체 등 주요 첨단 산업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봉쇄하되, 중국 기업들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 기업들의 중국 공장들이 중간 기술 수준까지의 메모리와 비메모리 칩을 만드는 것은 막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미국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 한국 등 동맹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공장들이 중간 기술 수준의 칩까지는 생산할 수 있도록 제조 장비와 시설을 개선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현재 미국은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중국에 투자하지 못하게 한 데 이어 주요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은 물론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의 지재권과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재세계화의 방향을 중국에서 중간 기술 수준의 칩까지는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제한적 승리로 잡지 않으면 세계 경제는 엄청난 불안정성에 휩싸일 우려가 크다. 중국으로서는 반도체 불임국 전락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에 따라 대만 침공에 나서거나 외국 칩 수입 중단 등의 맞대응에 나설 수 있고, 그럴 경우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 의존해온 많은 기업들이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칩스법 시행 방안 공개, 제조 장비와 첨단 제품의 대중 수출 금지, 그리고 관련 미 지재권과 기술 사용 금지 등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함에 따라 벌써 중국의 반도체 산업 곳곳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다. 부품과 장비 부족으로 생산 중단에 들어간 반도체 공장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재세계화에 맞서 어떤 반격 카드를 꺼내 들지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진핑이 최근 3연임 후 첫 방문지로 3월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해 이튿날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것 자체가 반격 카드다. 중국의 첨단 기술 패권 확보 저지를 위한 미국의 재세계화로 인해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나토의 동진에 맞서 침공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유럽의 군사·경제 지원으로 인해 고전해온 푸틴을 만나 중·러가 연합해 미국에 맞설 것임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 연합 구축 시도는 미국이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재세계화를 본격화하고 있는 데서 말미암는다. 만약 재세계화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사(枯死)시키지 않고 중국 기업들이 중간 수준의 반도체 기술까지는 확보해 제품 생산에 활용하는 것을 막지 않는 등 제한적 승리를 목표로 추진됐다면, 시진핑이 푸틴과 함께 대미 반격에 나서겠다는 결심까지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는 시진핑-푸틴의 반미 연합 구축으로 인해 미국이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과 러시아와의 우크라이나전 전략을 완전한 승리에서 제한적 승리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중·러의 연합 도발로 인한 글로벌 불안정성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 있다. 중·러 중 한 나라만 도발해도 글로벌 안정성이 위협받는데 두 나라가 함께 도발할 경우 말 그대로 글로벌 불안정성이 극도로 악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재세계화를 제한적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추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처럼 중국이 단독이건 러시아와 연합해서건 도발함에 따른 세계 안보와 경제의 불안정성을 예방하는 데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반도체 기술의 혁신을 위한 것이다. 시장이 기술 혁신을 낳는다. 거대한 중국 시장이 살아있을 때 미국과 한국, 대만 등 동맹국 기업들이 대중 수출 이익으로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오늘날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1차 냉전 때와 비교해 쇠퇴한 반면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구소련의 국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구소련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고수해 세계 경제에 깊숙이 통합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중국은 전제주의 자본주의를 금융 지원을 미끼로 많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로 확산시키면서 이들과 경제적 통합을 해왔다.

마지막 이유는 중국과의 2차 냉전이 1차 냉전보다 길게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것이다. 완전한 승리 전략과 제한적 승리 전략은 각각 단기전과 지구전에 맞다. 중국은 2014년에 구매력 기준 국민총생산(GDP) 세계 1위를 차지한 강국이다. 따라서 미국은 2차 냉전의 승리까지 1차 냉전의 45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전에 적합한 제한적 승리 전략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러 지정학적 대결과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세계 질서 변화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넘어서 바이든 행정부가 중·러의 전제주의 자본주의 연합에 맞서 글로벌 안정성을 유지해 내면서 제한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재세계화 지원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세계 및 역내 전략을 논의하기 어렵고 바이든도 그럴 여지를 안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재세계화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기시다 정권 이상의 지원 전략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지난 1월 13일 미·일 정상회담과 달리 재세계화 동참과 우크라이나 지원 등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게 돼 한국이 미국의 전략 동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재세계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는 칩스법의 시행 방안에 보조금 조건으로 기술 공개와 이익 공유, 시설 접근이 포함된 데 대한 관련 부처들과 업계 반응이 비판 일색이었던 데서 말미암는다. 사실 윤 정부가 미국의 재세계화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세계화와 관련해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 왔다면 전체 그림을 보고 칩스법에 대해 업계와 함께 균형 잡힌 평가로 대응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반도체 전쟁을 주도하는 전략가들은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 기술 공개를 요구하더라도 그 기술이 첨단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삼성전자와 TSMC가 한국과 대만에 있는 생산시설을 확장해서 첨단 제품을 만들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시행 방안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기술 공개 요구가 기술 절취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안보와 관련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과의 정상회담에서 제시할, 재세계화의 성공을 위한 제한적 승리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빈손으로 바이든을 만나 봤자 한·미·일 협력에서 한국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제3자 변제 결단에 기시다가 성의를 안 보인 이유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 동참 약속으로 바이든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는 자신감임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에 맞서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에 대한 미국의 묵인 등 한·미 간 높은 수준의 핵공유 체제 구축을 위해서라도 4월 한·미 정상회담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지원하는 성과를 내야만 한다.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과 우크라이나 지원,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지원 등 바이든 행정부가 절실하게 바라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