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지시간 21일(현지시간) 최대 격전지인 동부 바흐무트를 함락시켰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일 일정에 참석,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러시아군은 바흐무트에 있다"면서도 "오늘 바흐무트는 러시아에 점령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억7천500만 달러(약 4천98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지원을 발표하고 전투기 훈련 지원을 약속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F-16 전투기를 제공받을 것을 확신한다며,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물리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서는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며, 전장에서 보다 강력한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훈련을 제공해주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서방국들에 F-16과 같은 신형 전투기를 요청해 왔으며, 미온적이던 서방 국가들이 최근 국제 연합을 통한 지원으로 돌아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 대한 미국산 F-16 조종 훈련을 승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작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제시한 러시아군 철수와 정의 회복, 핵 안전과 식량안보, 에너지 안보 등 10개 항의 협상 조건과 관련해 "이 평화 공식은 합리성의 명백한 표현"이라며 G7 정상의 지지를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 회담에 앞서서는 "우크라이나 국방력 강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다음 단계의 군사지원 내용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났다.
그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안보가 곧 우리의 안보"라며 "G7은 우크라이나 지지에 단결돼있다"고 역설했다. 수낵 총리는 특히 "우크라이나가 향후 필요로 하는 공군력을 제공할 것"이라며 "조종사 훈련은 올여름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영국과 네덜란드가 국제 연합을 구축해 F-16 조달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15개월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기록되고 있는 바흐무트 전투가 일단 러시아의 판정승으로 기운 듯한 모습이다. 러시아의 자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 바흐무트 함락을 부인하고 나선 데다, 조만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태세인 만큼 향후 전세가 여전히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은 바흐무트 함락을 부인한 것"이라고 정정하는 입장을 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점령 주장에 대해 부인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일일 전황 업데이트를 통해 "바흐무트에서 전투를 지속 중"이라고 밝히며 방어 의지를 재확인했다. 게다가 이날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주변 일부를 에워싸고 전투를 지속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우리 군이 바흐무트를 바흐무트 교외 측면에서 진격 중이고, 적들이 이 도시에 머무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보고서에서 "바흐무트 전역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프리고진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ISW는 "아직 남아있던 바흐무트 동부의 시내 몇몇 구역은 전술적으로나, 작전 측면에서도 중요하지 않다"며 "이곳이 점령돼도 러시아군이 공격을 지속하거나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방어하는 데에 있어 특별한 이점이 있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장장 10개월간 이어진 참혹한 바흐무트 전투에서 우크라이나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물량 공세를 펼친 러시아 측의 병력 손실이 더 컸다는 점도 향후 전황 분석에서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로 지적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