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종료 예정인 유예 시한 일단 연장…중국 '디리스킹' 험로 예고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한 것을 계기로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그 공백을 메우지 말아 달라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으나 일단 한국 업체들을 별도로 규제하지 않기로 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이 지난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 및 대만 기업에 대한 미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가 ‘당분간’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별도의 장비 반입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일단 기존의 수출통제 유예 종료 시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WSJ은 상무부의 이 결정은 세계 경제가 고도로 연결된 상황에서 중국의 첨단 산업을 고립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은 "미국과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과의 비즈니스를 제한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저항해왔고, 특히 중국이 가장 큰 수출 시장인 한국에서 가장 강한 비판이 나왔다”고 전했다.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이나 일본, 네덜란드가 만든 일부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기에 미국이 이들 기업의 중국 공장을 규제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는 자국산 반도체 장비가 중국에서 군사용 등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수출통제를 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동참하기로 했었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 및 과학 법(칩스 법)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나 보조금을 지원받는 미국과 외국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로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 ‘가드레일’ 조항도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공장을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받은 회사가 이 가드레일 조항을 위반하면 즉각 보조금을 회수한다. 또 대미 투자금의 25%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도 더는 주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한국 기업이 중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현재보다 두 배로 늘려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전달한 의견에서 “가드레일 조항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장비 수출을 금지하자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중국 내 판매를 막았다. 미국은 마이크론 규제에 따른 중국 내 반도체 부족분을 한국 기업들이 메우지 말아 달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압박을 멈춘 것은 절대 아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투자 규제를 추진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려고 한다. 미국은 특히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위험 제거)이 결국에는 동맹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포위 전략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적극 가담해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폴 로젠 재무부 투자 안보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31일 미국 상원 은행주택도시위원회 청문회에서 첨단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분야에서 미국 자본과 전문 기술이 중국에 흘러가지 않도록 규제 범위가 넓지 않은 맞춤형(tailored and narrow)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동맹국, 협력 국가들과 활발한 대화를 해왔다"고 말했다. 미 의회는 미국 정부에 중국에 대한 보복 조처를 마련하라고 요구하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의 수혜자가 되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