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간) 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 뉴델리로 떠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 왔다. 반면 국경 분쟁을 겪은 인도와 중국 사이는 앙숙이다.
적의 적은 곧 친구다. 중국을 견제해온 미국으로선 가장 절실하게 손잡고 싶은 상대가 인도다. 미국은 일본·호주와 함께 인도를 끌어들여 쿼드(Quad)를 만들어 중국의 바다를 에워싸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중국의 뒷마당에서 대놓고 중국을 견제할 발판을 마련하려 든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은 차분한 분위기다. 일단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시 주석은 중국 북동부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큰 무대를 외면하고 애써 변방에 머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뉴델리에서 시 주석을 만나기를 희망했으나 무산됐다. 중국은 시 주석 대신 리창 총리를 보냈다. 중국에서 주석과 총리의 차이는 크다.
미국과 중국의 거리만큼이나 이번 G20 정상회의는 각국 지도자들의 서로 다른 속내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전과 달리 합의문 발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이견
정상회의는 양자 혹은 다자 간의 형식을 떠나 합의문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실무자들이 사전에 모여 서로 이마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한다. 이번 G20 정상회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커다란 걸림돌이 하나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중국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닛케이의 지적처럼 현재 분위기로는 정상회의를 마친 후 발표문을 내놓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9일 인도 남부 벵갈루루에서 G20 디지털 경제장관 회의가 열렸다. 인도의 바이슈나우 전자정보기술부 장관은 회의 후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개념과 적용이 합의됐다"고 강조했지만 공동성명은 채택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참가국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난에 반대하면서 "G20의 임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도 러시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대신 공표한 '성과 문서'에는 디지털 기술 개발 및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한 협력 등 의견 일치를 본 항목들만 나열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관해서는 의장국의 재량으로 정리하는 ‘의장 총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회의에서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러시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러시아는 이에 일일이 반박했다.
흔들리는 G20
G20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는 선진국과 주요 신흥국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 경제를 둘러싼 현안을 논의하는 포럼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 이상 만장일치의 결과물을 낼 수 없었고, 국제 협력의 틀로서의 중요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 같은 해 인도네시아 개최를 포함한 G20 장관급 회의는 공동성명 발표를 계속 미루어 왔다. 올해 의장직을 맡고 있는 인도는 지금까지 19번의 주요 회의에서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주요 7개국(G7)은 이전 러시아를 포함한 'G8'이었으나 2014년 크림반도를 일방적으로 편입한 러시아와 서방국의 대립으로 러시아를 제외시켰다.
그러나 G20의 분위기는 G7과 사뭇 다르다. 현 G20 의장국인 인도는 물론 내년 의장국인 브라질도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인도와 브라질은 중국·러시아와 함께 브릭스 회원국이다.
머나먼 평화의 길
2022년 11월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서방 국가들과 중국·러시아 및 중립을 유지하는 신흥국들의 의견 차이로 정상들의 선언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의장직을 맡은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의 국가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다른 견해와 평가도 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 외교부의 한 고위 관리는 당시 지도자들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인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인도가 의장직을 새로 맡았지만 올해 2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심각한 의견 대립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할 수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 국가와 명백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이 두 나라가 뉴델리에서 우크라이나 문제가 포함된 공동성명에 찬성할 가능성은 없다.
교토대학 대학원의 스즈키 모토후미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전체적으로 합의를 도출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마찬가지로 9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의장국인 인도는 정상들의 선언문을 이끌어내기를 바라고 있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2008년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회의 이후 G20 정상회의는 항상 지도자 선언을 채택해 왔었다. 세계는 우크라이나 문제 말고도 골칫거리가 산적해 있다.
치솟는 식량 및 에너지 가격, 기후변화 등 머리를 맞대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서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니 지구촌의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