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출 중단 발표가 전해진 지난 21일, 유럽 경질유 지표인 미국 인터콘티넨탈거래소(ICE) 경질유 선물은 한때 전일 대비 5% 상승한 1톤당 1,014.7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월 말 이후 약 8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미국 지표인 뉴욕상업거래소(NYMEX) 경유 선물도 5% 오른 갤런당 3.4달러 후반을 기록했다.
영국 산업단체 에너지 인스티튜트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러시아는 석유제품 수출량 기준 세계 2위 국가로, 전체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산 석유제품의 대부분은 경유로, 이는 자동차 디젤 엔진용 연료 외에도 농기계 연료와 난방용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초가을부터 겨울철에 경유 수요가 증가하기 쉽다.
겨울철 수요 시기가 다가오면서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공급 부족 우려를 낳았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해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리스크 재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2년 5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은 22년 12월부터 원유를, 올해 2월부터 석유제품 수입금지 조치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겨울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출 중단은 공급 부족 우려를 낳았다. 이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리스크 재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2년 5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은 2022년 12월부터 원유 수입을 금지하고, 올해 2월부터 석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퇴출된 러시아가 이번 수출 중단 조치를 통해 유가 상승을 촉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방 국가들의 대러 제재에 동조하지 않는 '제3세계'로의 수출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의 해상운송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가 아프리카-중동 국가와 터키, 브라질, 중국 등 '제3세계'로 수출한 석유제품은 2023년 2~8월 7개월간 일평균 124만 배럴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4배 증가한 수치이다.
특히 브라질과 아프리카 국가로의 수출 증가폭이 컸다. 고유가가 석유제품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서방의 제재로 '저평가'된 러시아산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2월 이후 유럽향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96% 감소했지만, 러시아 전체 수출량은 같은 기간 7% 증가하며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였다. 유럽과 미국향 감소분을 제3세계향 증가로 충분히 만회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석유제품 수출 재개 시점을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수입을 늘려온 제3극 국가들도 다른 경로를 통해 조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의 경쟁을 심화시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시장을 흔들고 있다. 지난 9월 OPEC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해 연말까지 감산을 이어가기로 했다. 러시아는 유럽을 대신해 중국과 인도로 수출을 늘리며 일정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경유 수급이 타이트해지면 원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라쿠텐증권 경제연구소의 요시다 테츠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의 수출 중단 조치로 원유 공급이 감소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한층 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 원유 지표인 WTI(서부텍사스산원유) 원유 선물 가격은 19일 한때 배럴당 93달러대 후반으로 약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연내 원유 가격이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석유 수출 중단에는 러시아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가격을 올려 서방을 흔들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러시아 국내 사정을 우선시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정유소 정비 등으로 제품 부족과 가격 상승이 심화되고 있었다. 곡물 수확을 위한 경유 등 연료 부족으로 생산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국민들의 불만을 방치하면 푸틴 대통령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 페스코프 대통령 대변인은 22일 석유제품의 일시적 수출 중단 조치에 대해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국내 시장 대응을 우선시할 것임을 강조했다.
러시아 재정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 재무부가 9월 발표한 1~8월 재정수지는 2조3600억 루블(약 32조756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석유제품 수출 중단을 지속하면 외화 수입이 줄어들어 재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부족이 완화되면 해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프리카 국가 등 신흥국에게는 치명적이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에 설령 수출 중단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그 영향은 크다. 아프리카는 석유뿐 아니라 밀 등 식량 분야에서도 러시아산 수입을 늘리고 있다. 이번 갑작스러운 수출 중단은 러시아 의존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