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자칫 인류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군사 분야에서 AI 규제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는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 등을 포함한 45개국과 함께 AI의 군사적 이용을 책임감 있게 한다는 취지의 정치적 선언 이행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AI 규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물밑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AI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엔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AI 관련 공동선언이나 합의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AI 규제의 틀을 선점할 경우 일종의 ‘모범답안’으로 글로벌 AI 산업의 향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지난해 3월 AI 규제 백서를 발간했으며, 올해 3월에는 AI 및 데이터 보호 가이드를 개정했다. 이들은 AI 분야별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규제를 추진한다는 내용과 직무성과 거버넌스 투명성 및 적법성 등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영국은 지난 1일 AI 정상회담을 통해 G7을 포함한 세계 28개국으로부터 안전한 AI를 위해 협력하겠다는 ‘블레츨리 선언’을 끌어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AI 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 최초로 AI 안전 연구소를 설립해 새로운 형태의 기술 능력을 시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수낵 총리의 발언이 AI 안전성과 관련해 영국이 선도국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기업들이 국가 안보, 경제, 공중 보건 등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AI 모델을 시험할 때 연방정부에 통지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정부는 AI로 만든 콘텐츠를 식별하기 위한 워터마킹 등 콘텐츠 인증 방침도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은 영국이 개최하는 G7 AI 정상회의 이틀 전에 서명됨으로써 이목을 끌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우리가 국내에서 취하고 있는 조치가 국제적 조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도 AI 규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유럽의회는 지난 6월 14일 찬성 499표, 반대 28표, 기권 93표로 AI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초안이 공개된 이 법안은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도를 단계별로 나누고, 해당 기업에 관련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를 위반한 기업은 최대 3300만 달러(약 437억원) 또는 해당 기업의 연간 글로벌 매출의 6%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EU는 올해 안에 주요 기관의 합의를 마칠 계획이다.
닛케이 신문은 “미국은 빅테크 기업 대표들이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과 회동하는 등 AI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관이 같이 움직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EU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엄격한 규제를 도입해 다른 나라로 파급효과가 번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미국의 AI 규제가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미국 기업이고, 이들의 주 활동 무대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규제 강도는 EU가 가장 구체적이고 엄격한 상황이다. 다만, EU의 경우 회원국 및 관련 부처들의 최종 협의가 남아있는데다, 실제 AI 규제 법안의 발효 또한 2년의 유예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실질적으로는 오는 2026년부터 발효될 예정이어서 당장 AI 규제의 주도권을 잡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