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EV 시장은 2023년까지 순조롭게 성장했지만, 2024년에 EU 국가의 보조금 축소, 충전소 부족, 비싼 차량 가격 등으로 정체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에서 EV 차량 판매는 2020년 138만 대, 2021년 230만 대, 2022년 260만 대로 꾸준히 늘었다. 2022년에 유럽에서 판매된 EV가 전체 차량 판매량의 약 14%를 차지했다.
하지만, IEA는 2024년 유럽에서 EV 차량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또한, 글로벌 EV 판매량도 2023년에는 대략 1400만 대로 예상하면서 2024년에는 이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회(ACEA)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국의 2023년 9월까지 신차 판매 대수는 794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9% 증가했다. 반도체 공급제약이 완화된 것 등 신차시장 자체는 회복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실적에 근거하면, 2023년의 신차 판매 대수는 4년 만에 1000만대를 넘을 전망이다
동력원별로 판매량을 확인하면 신차 중 1위는 휘발유차(288만대)로 전체의 36.2%를 차지했다. 하이브리드차(HV)가 25.2%, 디젤차(14.1%), EV(14%)순이다. EV 신차등록 대수는 111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55.2% 늘어나 호조였다.
이미 EU 27개국 EV 시장 규모는 연간 150만대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도 200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28.8% 증가했다.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자동차 메이커 각사가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강화한 것이 판매 증대의 주된 이유다. 연간 전체 EV 판매량은 270만대 수준이 될 것 같다.
이 데이터만 보면 유럽의 EV 시장은 순조롭게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 회사들은 신중한 자세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VW)은 11월 1일 중동부 유럽에서 가동을 예정했던 메가팩토리(배터리) 건설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원래 VW는 2021년 7월에 2030년까지 유럽 지역 내에서 메가팩토리를 6곳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이 가운데 1곳을 중동부 유럽에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럽 지역 내에서의 EV 수요가 예상보다 하락하고 있어 VW는 이곳에서 메가팩토리 건설 계획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VW는 9월에도 독일 동부 작센주에 있는 두 공장에서 10월 약 2주간 EV를 감산한다고 발표했다. 종업원의 정리를 진행하는 등 수요 감소를 이유로 EV 생산 축소를 상당히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EV 수요가 완성차 메이커의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약해지는 이유는 우선, 정부 지원금의 축소를 꼽을 수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V) 구입 시 보조금을 제공하거나 세제 혜택을 제공했지만, 재정 압박으로 단계적으로 중단됐고, 이로 인해 EV 수요가 압박을 받았다.
인센티브의 중단은 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가격 인상과 같다. 원래 EV는 기존의 가솔린 차량이나 디젤 차량에 비하면 차체 가격이 높다. 게다가 유럽 중은(ECB)이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에 자동차 구매 대출의 금리도 높아졌다. EV를 구입하기 위한 부담이 무거워지면 수요가 식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EV 보급을 위해서는 충전 포인트의 설치가 필수적인데, 현재 유럽에서는 충전 포인트의 설치가 늦어 EV의 보급이 제한되고 있다.
독일 연방 네트워크청에 따르면, 독일 국내 충전 포인트는 8월 1일 시점에 10만 1421기였다. 올 상반기에 1만 3302기도 늘었다고는 해도, 급속 충전이 가능한 포인트는 1만9859기에 그치고 있어, EV의 한층 더 보급을 도모하기에는 불충분한 수준이다.
EV의 보급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독일조차 이 상황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의 경우 충전 포인트 건설이 더욱 늦어져 EV의 보급이 진행되기 어렵다. EU는 충전소 확대를 촉구하고 있지만, 재정이 빡빡한 데 충전소 확대에만 재정을 투입할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저렴한 EV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EV는 기존 내연차에 비해 차량 가격이 비싸다. 따라서, EV 보급을 위해서는 저가 EV의 공급이 확대되어야 하지만, 배터리 가격이 아직 높아 저가 EV의 생산이 어려운 실정이다.
EU는 유럽 내에 배터리 생산을 촉구하기 위해 각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EU는 앞으로 배터리의 메가팩토리가 서서히 가동되기 때문에 배터리 가격이 공급면에서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VW가 메가팩토리 건설을 연기한 것처럼 수요가 수반되지 않으면 배터리 공급도 늘지 않는다.
넷째는 중국의 EV 진출 확대다. 저렴한 EV를 앞세워 유럽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쟁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역내에서 보급이 지연된 중저가 가격대 EV를 중국제 EV가 석권하는 것을 EU는 두려워하고 있다. 경쟁 압박에 직면해 있다.
현재 EU의 신차시장에서 중국제 EV의 존재감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ACEA에 따르면 EU의 신차등록에 차지하는 중국차 비율은 2022년 시점에서 1.3%로 전년보다 0.9%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EV 시장으로 한정하면 3.7%로 올라 전년보다 2.0%포인트 상승하고 있다. 이에 EU는 중국 EV의 수입 규제에 나서려고 한다. 특히, 중국제 EV는 중저가에 강점을 갖는데 EU 제조업체가 중저가 EV를 출시하지 못하면서, 중국 중저가 EV 수입을 규제할 경우, 수요층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줘서 판매량이 줄 수 있다.
다섯째는 EV의 보급을 위해서는 중고차 시장의 발전이 필요한데, 현재로는 EV 중고차 시장이 발전하지 않아, EV의 시장 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럽 자동차 협회(ACEA)에 따르면, 2022년 유럽의 EV 중고차 판매량이 8만 3000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0.9%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EV 중고차 시장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EV 중고차의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의 구매를 억제하는 데다, EV의 출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고차 시장에 나올 만한 EV가 아직 많지 않아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2024년 유럽의 EV 시장은 2023년 정도의 활황을 유지할 수 없다고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이런 우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유럽 시장에서 EV 차량의 보급 확대는 약속된 미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