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내년 몇 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에 투자자들이 1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미 달러화를 내다 팔고 있다고 24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했다.
40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미국 3대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에 따르면, 자산 매니저들은 이번 달 1.6%의 미청산 달러 포지션을 매도할 예정이며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월간 최대 유출 규모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이번 달 3일, 미국의 고용보고서 발표가 예상보다 부진하자 자산 매니저들이 매일 상당한 규모의 달러를 팔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자산운용사들의 달러 매도세가 미국 자산에 대한 노출 축소라는 장기 추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매크로 전략 책임자인 마이클 메칼프(Michael Metcalfe)는 "지난 2주간의 (달러 매도) 흐름은 달러 수요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며 최근 매도세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유난히 큰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기준 금리를 실제 인하하기 시작하면 그만큼의 달러 보유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지금 같은 보유 달러의 급격한 약세는 단 6차례뿐이었다.
가장 최근 사례가 바로 지난해 11월에 일어났다. 올해 1월 말까지 몇 개월 사이 6개 통화 바스켓으로 구성된 달러 인덱스는 약 10% 정도 떨어졌다.
메칼프는 최근 달러의 약세 흐름에도 불구하고 자산운용사들은 다른 통화에 비해 여전히 달러 비중이 높다며, 이는 앞으로 달러 약세가 더 진행될 소지가 있음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미국 달러화는 지난해 연준의 금리 인상에 힘입어 큰 폭의 강세를 보여왔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해 9월 말까지 무려 19%나 상승하며 강세 포지션을 취한 매크로 헤지펀드에 큰 수익을 안겨주다가 4분기 급격히 약세로 전환됐다.
올해 들어 견고한 경제성장 데이터가 나오면서 연준의 기준금리는 16년 만에 최고치에 올라갔고, 그런 고금리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에 달러 인덱스는 7월과 10월 사이 다시 7% 이상 급등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동안 다시 달러 강세 분위기는 바뀌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0월에 예상보다 더 하락한 3.2퍼센트를 기록했고, 투자자들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근 달러 약세로 달러 인덱스는 거의 올해 초 수준에 머물고 있고, 금리 선물 시장은 현재 내년 9월까지 0.5% 포인트 이상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46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BNY 멜론의 외환 전략가인 게오프 유(Geoff Yu)는 지난 20일 동안 투자자 고객들이 일본 엔화, 캐나다 달러 그리고 여러 라틴 아메리카 통화 매수 선호로 바뀌면서 올 들어 가장 빠른 속도로 달러를 팔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매도 압력 상승은 일본 재무성에는 희소식이 될 것이다.
엔화가 이달 초 달러 대비 33년 만에 최저치에 근접해 거래되면서 수입품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면서 통화 당국은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올해 엔화가 달러 대비 12% 정도 하락한 반면, 11월 들어 엔화가 1.5% 정도 강세를 보이면서 약간 엔화 약세가 완화되기도 했다.
일본중앙은행이 내년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철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서 우세한 가운데 엔화 강세 흐름은 계속될 수도 있다.
미국 달러 약세는 신흥 시장들에게도 안도감을 주고 있다. 달러 약세는 달러로 표시된 채권 상환이 더 용이해지고, 올해 대규모의 외화 채권을 발행한 개발도상국에 투자자들을 다시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롬바르드 오디에 투자운용사의 매크로 멀티 자산 책임자인 플로리안 일포는 "신흥시장 주식과 원료에 대해 비중 확대를 하고 있다"라며 "달러 약세 환경이 일부 미국 주식의 고평가된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MSCI의 신흥시장 주가지수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3% 상승한 반면, 미국의 S&P500 지수는 거의 19% 상승했다.
자산운용사 아문디의 멀티 자산 전략 책임자인 프란체스코 산드리니는 2024년 부분적으로 미중 관계의 긴장 완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안전한 피난처로서의 달러 필요성이 그만큼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시장 사이의 통상적인 로테이션 과정에 무엇인가 부서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멕시코, 브라질 주식에 대한 선호는 부분적으로 이들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달러 약세의 길에 현재 남은 장애물은 지정학적 우려인 듯하다.
이진충 글로벌이코노믹 국제경제 수석저널리스트 jin2000kr@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