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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시진핑과 융중대(隆中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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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시진핑과 융중대(隆中對)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삼국지는 융중대(隆中對)를 기점으로 흐름이 바뀐다. 유비가 융중에서 제갈량을 만난 후 삼국 이야기는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융중대의 핵심은 천하삼분지계였다. 제갈량은 융중에 초가를 짓고 10년이나 은둔해 있었다. 그에게 빈털터리 유비가 찾아왔다. 세 차례나 따돌렸지만 유비는 집요했다. 결국 그와 마주 앉은 제갈량은 유비에게 가슴 깊이 묻어둔 원대한 뜻을 펼쳐 보였다. 천하삼분지계로 더 잘 알려진 융중대다. 제갈량은 누운 채 천하를 헤아리고 있었다.
원소를 무너뜨린 조조는 천자를 끼고 중원을 장악했다. 수군으로 양자강을 막아선 손권은 강동의 비옥한 땅을 차지했다. 형주와 익주마저 이미 주인이 있었다. 제갈량이 앞으로 섬겨야 할 유비는 '깡통 계좌'였다. 그는 먼저 형주와 익주를 취하라고 일렀다.

험준한 지세에 의지하면 업신여김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손권과는 동맹을 맺으라고 권했다. 솥발처럼 단단한 삼국 형세를 만든 후 힘을 키워 천하를 도모하는 순서를 밟는 계책이었다. 지상전에 익숙한 북쪽 군대는 수전에 약하다. 3대째 강동을 다스리고 있는 손권이 큰소리치는 이유도 양자강의 물살 때문이었다. 주유 같은 뛰어난 인재를 가진 그는 군량미도 든든했다.

제갈량은 손권과 동맹을 맺어야 능히 조조를 상대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조조는 동탁의 난 이후 바람처럼 일어난 호걸들을 하나하나 제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인 구상을 갖춰나갔다. 제갈량은 함부로 그와 맞서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한(漢) 왕실에 뿌리를 둔 유비는 당연히 조조를 치고 싶겠지만 시운에 의지한 채 약함으로 강함을 상대하면 필패라고 단단히 일렀다. 병법서를 쓴 손자는 “군주는 노여움으로 군사를 일으켜선 안 되고, 장수는 분노로 전쟁을 시작하면 반드시 패한다”고 썼다.

제갈량의 융중대는 결국 섣불리 나서지 말고 착실히 힘을 기르라는 계책이었다. 1800년 후 덩샤오핑은 이를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네 글자로 바꿨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핵심인 천하삼분지계는 그대로 이어졌다. 덩샤오핑 당시 중국의 형세가 유비라면 조조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를 쥐락펴락해온 강자다. 유럽을 손권에 대비하면 어떨까. 새롭게 부상한 중국은 막 일어난 유비에 견줄 만하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는 덩샤오핑의 유지는 20년 가까이 지켜졌다.
그러나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이 ‘중국몽’을 말하는 순간 그 꿈은 산산조각 났다. 시진핑은 유럽이 아닌 푸틴과 김정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택이 아닌 떠밀림이었지만. 오히려 자초한 일일 수 있다. 삼분지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쪽은 유럽이다.

유럽의 통계 기구 유로스타에 따르면 올 1분기 유럽연합(EU)은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를 늘린 반면 대중국 적자는 줄였다. 대중 무역적자는 625억 유로(약 92조원)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8% 줄어든 수치다. 반면 EU의 1분기 대미 무역흑자는 436억 유로(약 64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7% 늘어났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미국이 많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고,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 보조금을 준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렸다. 사면초가 상황인데도 시진핑은 굳이 이념에 매달린다. 덩샤오핑은 이미 40여 년 전 흑백 가리지 않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되겠다며 실용 노선을 택했다.

그런데도 시진핑은 유독 붉은 색깔만 고집한다. 그러는 사이 중국 경제는 추락 위기를 맞고, 동맹 대상은 멀어져 갔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