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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국과 유럽 간 갈등 속 유엔 마약회의에서 중재자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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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국과 유럽 간 갈등 속 유엔 마약회의에서 중재자로 부상

트럼프 행정부, 전통적 동맹국들과 의견 충돌 빚어
미국-유럽-캐나다 분열 속 일본의 외교적 역할 강화
비엔나에 있는 유엔 본부는 3월에 개최된 긴장감 넘치는 마약 회의의 장소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비엔나에 있는 유엔 본부는 3월에 개최된 긴장감 넘치는 마약 회의의 장소이다. 사진=로이터
유엔 마약위원회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 캐나다 등 전통적 동맹국 간의 깊은 분열이 표면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중재자 역할을 맡으며 외교적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비엔나에서 최근 개최된 5일간의 유엔 마약위원회 회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과 유럽 국가들의 온건한 접근법 사이의 뚜렷한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임명한 국무부 고위 관리 카트라이트 웨이랜드는 개회 연설에서 "미국이 이곳에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는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진실은 덜 낙관적이다"라며 "이 회의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웨이랜드는 미국 내 펜타닐 확산의 주범으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명시적으로 지목했으며, 이에 중국 대표는 즉각 반박하며 미국의 마약 교육 부족이 펜타닐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맞받아쳤다. 다음 날 캐나다 대표단은 마약 통제를 위한 자국의 노력을 강조하는 등 동맹국 간 이례적인 공방이 벌어졌다.

통상 유엔 회의에서는 동맹국들이 사전에 입장을 조율하고, 공식 성명에 대해 서로 반박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균열이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여러 관측통들은 양국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회의에서는 또 다른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했다. 제안된 7개의 결의안이 모두 표결에 부쳐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약위원회의 결의안은 투표 없이 합의에 의해 채택되며, 당사자들은 강력한 반대가 없을 때까지 제안을 수정하는 것이 관례다.

미국은 이번 결의안 모두에 반대표를 던지며 마약 단속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러한 입장은 경미한 약물 사용의 합법화에 대해 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국가들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이란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 같은 입장에 서서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7개 결의안 모두 과반수 득표로 통과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이 한 가지 측면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연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결의안에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했을 때, 중국 대표는 그러한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유럽 간 갈등 상황을 주시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국제적 갈등 속에서 일본의 입장은 더욱 주목받았다. 마약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중간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회원국들이 결의안 채택 시 일본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의 영향력 증가는 일본 단체들이 비엔나 유엔 사무소에 평화의 종을 기증한 지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약위원회 회의 기간 중 개최된 이 행사에는 외교관을 포함해 약 200명이 참석했는데, 이는 예상보다 5배나 많은 인원이었다.

비엔나 주재 일본 유엔 대표부 제1서기관 오이 쓰네히로는 "새로운 국제 정세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간 분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외교 노선이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시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 같은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국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약위원회 회의에서 드러난 국제적 역학 관계 변화는 앞으로의 다자간 협상에서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