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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유럽 투자자, 미국서 발 빼나...총 9조 달러 향방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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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유럽 투자자, 미국서 발 빼나...총 9조 달러 향방 관심

트럼프 관세·경제 안보 부상에 美 편중 투자 '경고등'
'미국 의존 탈피'...유럽 방산·기술주 재평가 움직임
유럽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경제 안보 문제 부상이 미국에 집중됐던 기존 투자 전략에 경고등을 켰기 때문이다. 9조 달러 규모 자금의 'U턴'이 시작될지 주목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경제 안보 문제 부상이 미국에 집중됐던 기존 투자 전략에 경고등을 켰기 때문이다. 9조 달러 규모 자금의 'U턴'이 시작될지 주목된다. 사진=로이터
유럽 투자자들이 미국에 편중됐던 자산 배분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닛케이가 지난달 30(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유액이 5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9조 달러(12824조 원) 규모의 미국 주식이 그 중심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경제 불확실성 여파로 일부 자금이 유럽으로 회귀하며 현지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 의존 탈피'를 주제로 유럽의 국방 및 경제 안보 관련 기업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의 세부 내용을 공표한 지난 42일 이후 유럽 투자자들은 본격적으로 운용 전략 재검토에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계열의 자산운용사 DWS는 유럽 주식에 대한 투자 평가를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 조정했다.

2주 새 93억 달러 유입...유럽으로 '돈의 역회전'


DWS의 빈첸초 베다 최고투자책임자(CIO)"자금의 역회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조사회사 EPFR에 따르면, 지난달 23일까지 2주 동안 미국 주식 펀드에서는 65억 달러(92618억 원)의 자금이 유출된 반면, 유럽 주식 펀드에는 93억 달러(132515억 원)가 순유입됐다.

미국 재무부 통계를 보면 20252월 기준 미국 외 거주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총 18조 달러(25655조 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인 9조 달러(12824조 원)를 유럽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최근 5년 새 두 배로 증가한 규모다. 과거 유럽 주식의 운용 성과가 미국 주식에 비해 부진했고,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주들이 미국에 집중되면서 자금의 미국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미국 편중' 투자에 대한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기업과 소비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달러 약세와 유럽 통화 강세 추세는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투자자들의 운용 성과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대형 운용사 아문디의 뱅상 모르티에 그룹 CIO"경제 정책 예측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미국 자산을 비중 확대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자립' 내건 유럽...방산·기술 투자 '봇물'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유럽에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이라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경쟁 조건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유럽 스스로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시급히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대표적인 분야가 방위력 강화다. 독일에서는 이르면 5월 출범할 메르츠 연립 정부가 국방비 등에 약 1조 유로(16211100억 원)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EU 차원에서도 이미 지난 3'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시장 자금도 관련 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독일의 전차·탄약 제조업체 라인메탈의 주가는 2024년 말 대비 2.2배 상승했으며, 스웨덴의 전투기 개발·제조사 사브의 주가는 80% 급등해 미국의 동종 업계를 능가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을 위해서는 유럽 기업 자체의 경쟁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뒤처졌다는 위기감이 유럽 내에 크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해 9AI 활용 방안 등을 포함한 유럽 산업 강화 전략을 담은 '드라기 보고서'를 내놓았다. 민간 차원에서는 미국산 소프트웨어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로스택(Eurostack)'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유럽의 100개가 넘는 기업 및 단체가 공동으로 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게 '유로스택' 추진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영국 운용사 M&G 인베스트먼츠의 파비아나 페델리 CIO"미국의 관세 정책이 드라기 보고서에서 제시된 경쟁력 강화 방안의 실현을 가속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유럽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기대로 자금은 역내 대표 기술 기업으로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의 주가는 2024년 말 대비 5% 상승하며, 같은 기간 각각 7%, 19% 하락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의 주가 흐름을 앞질렀다.

"자금 회귀 장기화될 수도"...9조 달러 향방 주목


유럽 경기는 아직 회복 과정에 있고,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기 하방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역내 방위력 강화를 위해 유럽 각국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단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유럽은 과거 여러 위기를 거치며 통합을 심화한 경험이 있다. 유럽 각국의 정책적 의지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준다면, 미국에서 유럽으로의 자금 회귀 흐름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미국 주식 시장에 쌓여 있는 '9조 달러'(12824조 원)라는 거대한 자금 더미의 향방은 앞으로 유럽 주식 시장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경제 경쟁력까지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