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탈세 공모' 유죄 인정 후 또 범행... 美 법무부 "기존 합의 위반"
내부 고발자 10년간 증거 제공... UBS "과거 문제 조속 해결"
내부 고발자 10년간 증거 제공... UBS "과거 문제 조속 해결"

로이터통신,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크레디트 스위스 서비스 AG는 지난 5일(현지시각)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 지방 법원에서 허위 소득세 신고서 작성 방조·조력 공모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즉시 형을 선고받았다. 미 법무부는 이번 유죄 인정이, CS가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 회피를 돕기 위해 싱가포르 등지에서 계좌를 관리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CS 은행원들이 기록 위조, 허위 기부 서류 처리, 10억 달러(약 1조 3890억 원)를 웃도는 미신고 계좌 운용 등의 사기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해당 행위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는 또한 "이를 통해 크레디트 스위스 AG는 새로운 범죄를 저질렀으며 2014년 5월 미국 정부와 맺은 유죄 인정 합의를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CS는 2014년에도 유사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당시 역대 최대인 26억 달러(약 3조 6114억 원)의 벌금을 낸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역외 계좌들 때문에 미국이 입은 조세 손실은 7100만 달러(약 986억 원)를 웃돌며, CS가 이들 계좌에서 얻은 수익은 1억 860만 달러(약 1507억 원)를 넘었다고 법원 제출 서류에 나와 있다.
이번 유죄 인정과 벌금 부과 외에도, 크레디트 스위스 서비스 AG는 법무부와 불기소 합의(NPA)를 맺었다. 이 합의에 따라 CS와 현재 모회사인 UBS는 진행 중인 조사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앞으로 발견될 수 있는 미국 관련 계좌 정보를 당국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법무부는 "이번 합의가 관련 개인에게 면책을 주지는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이번 합의는 2023년 미 상원 재무위원회가 CS가 2014년 합의를 어기고 부유층 미국인들의 탈세를 계속 도우며 정부로부터 7억 달러(약 9719억 원)를 웃도는 금액을 숨겼다고 밝힌 지 약 2년 만에 이루어졌다.
◇ 결정적 역할 한 내부 고발자들
내부 고발자들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 이들을 대리한 제프리 나이먼 변호사는 성명에서 "의뢰인들이 CS의 꾸준한 위법 행위를 발견하고 폭로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직 CS 은행원인 의뢰인들이 큰 개인적 위험과 스위스 당국의 기소 가능성을 무릅쓰고 수십 년간 숨겨진 미국 연관 계좌 소유주들의 이름, 사회보장번호, 여권 같은 상세 증거를 정부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또한 "계좌 명세서, 이메일 등 내부 문서와 은행원 이동 정보까지 넘겨 연방 요원들이 신속히 대응하도록 도왔다"고 덧붙였다.
나이먼 변호사는 "내부 고발자들은 거의 10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며 "오늘, 진실을 말하고 거대 금융 기관에 맞섰던 것을 마침내 인정받았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법원에 제출된 공소장에는 CS가 미국인 계좌 소유 사실을 숨기려고 은행 기록을 위조하고, 고객을 비미국인으로 허위 기재했으며, 스위스 변호사 명의 계좌 따위를 이용해 미신고 고객 자산을 관리하고, 세금 규정 준수 문서 없이 10억 달러(약 1조 3885억 원)를 웃도는 규모의 미국 계좌를 운용한 사실 등이 적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 로체스터 대학 교수 댄 호스키가 자산 소유권을 외국인 친척에게 넘긴 뒤에도 실제 통제권을 쥐고 세금을 내지 않도록 도운 정황이 들어 있다. 호스키는 2억 달러(약 2777억 원) 계좌 은닉 혐의 등으로 2017년 7개월 징역형과 1억 달러(약 1388억 원) 벌금을 선고받았다.
◇ 모회사 UBS·美 상원의원 반응
한편, 2023년 CS를 인수한 모회사 UBS는 성명을 내어 "(UBS는) 이번 위법 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탈세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UBS는 CS 인수 당시 이 문제를 우발 부채로 회계 처리했으며, 이번 합의에 따라 2025년 2분기 재무제표에 해당 부채 일부 해소에 따른 이익(credit)과 합의 관련 비용(charge)을 함께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민주당, 오리건주)은 성명에서 "이번 합의는 CS가 기존 합의를 어기고 부유한 미국인들이 7억 달러(약 9719억 원)를 웃도는 자산을 숨기도록 계속 도왔다는 내 조사 결과를 완전히 입증한다"며 "초부유층과 스위스 은행가들이 역외 탈세 계획을 마음대로 짜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